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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두레 2012. 10. 13.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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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종로에서 만난

 

가을.

 

―그 떫은 햇살 때문에

 

손수레 위에 빠알간

 

감.

 

 

(하학길 달뜨게 한 紅枾)

 

 

소꿉 같은 널판 위에 앉은

 

가을

 

 

만나자 서너 발 앞서 횡단로 건너는

 

손짓.

 

 

―금빛 그 햇살 때문에

 

 

피 맑은 살 속 깊이 나이 든

 

하늘.

 

/조영서

 

 

 

   가을이라는 물건은 없다. 그것은 시간의 이름이니까. 감이 익어갈수록 가을이 오 는 줄

 

알고 그 감이 짓푸른 하늘에서 모두 사라질 즈음이면 이미 그 자리에 겨울이 와 있다. 어쩌

 

면 '가을'의 어원이 '간다'는 의미에서 온 것은 아닐까? 한 해가 다 간다는 의미에서 말이

 

다. 서울의 도심에서는 손수레에 감을 팔러 나온 이가 있으면 이미 가을이 깊어진 것이다.

 

 

   서울 종로에 어느 날 문득 감을 파는 좌판이 섰다. '소꿉'놀이처럼 다섯 알씩 정성스레

 

쌓아올린 감은 이내 잊었던 유년의 기억 속을 밝히는 등불이다. '하학길'의 허기진 눈길을

 

사로잡던 남의 집 담장 너머의 감들. 잠시 '떫은' 기억의 단층(斷層) 속에 갇힌 사이에 동행

 

은 이미 횡단보도 저편으로 가서 '손짓'을 하고 있다.

 

 

   그 손짓은 유년에서부터 '나'를 잡아당기고 현재에서부터도 잡아당긴다. 노경(老境)의

 

금빛 햇살 속으로 이끄는 손짓인 것이다. 미숙하고 떫은 햇살이 아닌, 맑은 피로서 완성하

 

는 노경을 예감하는 손짓이다. 청색(靑色) 가을 하늘 같은 노경을 동경한다.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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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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