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지 않음에 대하여
한 잔의 차를 마시며 지나치지 않음을 생각한다.
아침 신문도 우울했다.
지나친 속력과 지나친 욕심과 지나친 신념을 바라보며
우울한 아침, 한 잔의 차는 지나치지 않음을 생각게 한다.
손바닥 그득히 전해오는 지나치지 않은 찻잔의 온기
가까이 다가가야 맡을 수 있는 향기의 아름다움을 생각한다.
지나친 세상의 어지러움을 끓여 차 한 잔을 마시며
탁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세상의 빛깔과 어디 한 군데도 모나지 않은 세상살이의 맛을 생각한다./박상천(1955~ )
일등 말고 중간쯤이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일등, 세계 최고, 일류를 강조하는 세상이다. 본인은 아니었어도 자녀는 일등을 하라고 내몬다. 그러다가 화를 자초하기도 한다. 세속을 떠날 수 없는 범인(凡人)들에게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데 그들만이 살아남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서열이 있는 한 반드시 중간이 있고 꼴찌가 있는데 그들은 다 죽는다는 말 같아 아프다. 실은 모두가 일등이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각자의 생(生)인데 그들이 몇 등이라니 도대체 무슨 말인가. 그런 맥락에서 초등학교 졸업이 최종 학력인 김기덕 감독의 소식은 통쾌하다(일등상이 아닌 황금사자라는 상 이름은 얼마나 멋진가!).
시도 예술도 깊이 대신 번쩍번쩍 기교가 늘어간다. 이목을 끌기 위해서다. 대교약졸(大巧若拙·매우 교묘한 솜씨는 서투른 것같이 보인다)이라고 했던가. '찻잔의 온기' 같은 이 담담한 시의 풍경과 진술 속에서 평범함의 위안과 휴식을 구한다.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그림 김현지/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