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데라도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려고
대야에 물을 떠다 놓으면,
당신은 대야 안의
가는 물결이 되어서,
나의 얼굴 그림자를
불쌍한 아기처럼 얼러줍니다.
근심을 잊을까 하고
꽃동산에 거닐 때에,
당신은 꽃 사이를
스쳐오는 봄바람이 되어서,
시름없는 나의 마음에
꽃향기를 묻혀주고 갑니다.
당신을 기다리다 못하여
잠자리에 누웠더니,
당신은 고요한 어둔 빛이 되어서,
나의 잔 부끄럼을 살뜰히도 덮어줍니다.
어데라도 눈에 보이는 데마다
당신이 계시기에, 눈을 감고
구름 위와 바다 밑을 찾아보았습니다.
당신은 미소가 되어서 나의 마음에 숨었다가,
나의 감은 눈에 입 맞추고
‘네가 나를 보느냐.’
고 조롱합니다.
/한용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