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햇살이 아직은 한낮의 모래 위 돌을 뜨거운 찜 돌로 만들 만큼 뜨겁다. 벼도 익혀야 하고 과일도 익혀야 하고 땅속의 감자와 고구마도 익혀야 한다.
개미의 먹이도 아직은 못 미치게 저장되니까, 베짱이의 노래도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은어의 등줄기가 검게 새겨지지 않았으니까. 아이들의 참외 서리나 수박 서리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아직은 내리쪼여야 하나 보지.
숙명적 가난을 벗으려 몸부림치시는 ‘어머이’와 ‘아버이’를 따라나섰다. ‘갱변:(강변)’의 자갈밭에 하늘을 이고 자개 돌을 요 삼아 앉았다.
삼베 중의 적삼에 짚신 신고, 지게에 얹힌 싸리 바지게엔 수 없는 삽질로 뜨인 모래 자갈이 조금씩 차올랐다. 아버지의 햇볕에 그을리신 얼굴 이마의 주름이 밭이랑 같은데, 양쪽 볼에 패인 기둥 주름에 떠받혀 인고의 세월을 새겨가고 있다. 다만, 대를 이어 물려받은 코 뿌리가 이를 지탱할 뿐이다. 심줄만 튀어나온 통뼈의 팔뚝엔 주먹만이 묵직하게 달려있다. 삶의 선봉에 선 입은 평온한 한일자일 수 없어 어금니를 깨물어서 송곳니가 튀고, 주먹은 야위어서 뼈마디가 튄다. 철부지의 눈에 비친 ‘아버이’.
아들의 눈망울에 비친 당신들을 볼 수 없는 ‘어머이’는 살붙이 아들이 미끄러져 구덩이에 떨어질세라 연신 움직이신다.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