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방 일

외통궤적 2008. 4. 2.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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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3.000730  제방일

내 철들기 전. 아직 어머니 품을 떠날 수 없었든 아주 어린 시절이었다.

시월의 햇살이 아직은 한낮의 모래 위 돌을 뜨거운 찜 돌로 만들 만큼 뜨겁다. 벼도 익혀야 하고 과일도 익혀야 하고 땅속의 감자와 고구마도 익혀야 한다.

개미의 먹이도 아직은 못 미치게 저장되니까, 베짱이의 노래도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은어의 등줄기가 검게 새겨지지 않았으니까. 아이들의 참외 서리나 수박 서리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아직은 내리쪼여야 하나 보지.

숙명적 가난을 벗으려 몸부림치시는 ‘어머이’와 ‘아버이’를 따라나섰다. ‘갱변:(강변)’의 자갈밭에 하늘을 이고 자개 돌을 요 삼아 앉았다.

삼베 중의 적삼에 짚신 신고, 지게에 얹힌 싸리 바지게엔 수 없는 삽질로 뜨인 모래 자갈이 조금씩 차올랐다. 아버지의 햇볕에 그을리신 얼굴 이마의 주름이 밭이랑 같은데, 양쪽 볼에 패인 기둥 주름에 떠받혀 인고의 세월을 새겨가고 있다. 다만, 대를 이어 물려받은 코 뿌리가 이를 지탱할 뿐이다. 심줄만 튀어나온 통뼈의 팔뚝엔 주먹만이 묵직하게 달려있다. 삶의 선봉에 선 입은 평온한 한일자일 수 없어 어금니를 깨물어서 송곳니가 튀고, 주먹은 야위어서 뼈마디가 튄다. 철부지의 눈에 비친 ‘아버이’.

아들의 눈망울에 비친 당신들을 볼 수 없는 ‘어머이’는 살붙이 아들이 미끄러져 구덩이에 떨어질세라 연신 움직이신다.

‘어머이’는 ‘아버이’의 흙짐이 가득히 채워질 때쯤에서야 함지를 ‘아버이’ 곁에 가져다 놓으신다.

이번엔 함지에 흙먼지가 일어난다. ‘아버이’는 ‘어머이’의 함지를 맞들어 이어드리고 나서 지게 밑에 꿇어앉으신다.



장마에 쓸려 없어진 제방을 쌓는 일이다. 돌망태를 만들고 흙을 모아 높이고, 그 위에 돌을 붙여 올라간다.

어버이 두 분은 몇 번이고 지고이고 나르면서 둑 위의 ‘하꼬(상자)’를 채우면 ‘십장’에게서 전표 한 장을 받는다. 하루 몇 장을 받는지, 몇 장이 모여서 얼마를 벌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렇게 해서 논 사고 밭 사면서 내가 있고 우리 형제가 있도록, 터전을 마련하셨다.

구월의 농한기를 시원한 냇가에서 고기잡이하시며 보내지 못하시고, 한가하게 성황당(城隍堂) 솔밭이나 정자나무 그늘에서 뉘 집 농사가 어떻고, 뉘 집 품앗이는 어떻게 되었고, 내년 봇도랑 치기는 언제 해야 하느냐는, 한가한 때를 보내시지 못하셨다.

어버이께서는 그 보와 그 내에 한의 둑을 쌓으셨다.

어버이여 편히 쉬소서./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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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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