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녹은 물이 발자국에 고여 살얼음이 질 때쯤, 돼지 밥통 긁는 소리가 싸리 울타리 넘어 들려오는 때쯤 나는 책 싼 보따리 들고 동무네 집을 나선다.
살얼음을 피하려고 고개 숙이지만, 발은 디딜 자리를 찾지 못하고 허둥거린다. 부서지는 살얼음 소리는 밥 강정을 깨물 때 나는 소리 같다. 이 소리가 내 어금니를 즐겁게 한다. 그러니 가랑이가 찢어지도록 벌려서 하얀 발자국 얼음을 딛고 빠지면서라도 가야 한다. 어금니는 악다물어 갈리고 입가는 귀밑을 향하여 올라간다.
오늘만은 아니면 좋겠는데, 문을 열고 먼발치에서 보아하니 단출한 밥상을 앞에 두고 나를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이가 유난하게 희다. 흰죽 사발만이 가지런하고 간장 종지가 하나 있을 뿐이다. 모든 게 희다. 사발도 희고 죽도 희고 이도 희고 할머니의 머리조차 희다.
흰죽. 죽기보다 더 싫은 음식이다. 차라리 돌을 씹는 게 나을 것 같다. 아침밥 때마다 뭉쳐 주는 밥 강정과는 입안에서의 느낌이 너무나 다르다. 물은 물이라서 그냥 삼키면 되지만, 죽은 그냥 삼킬 수도 없고, 그렇다고 깨물자니 깨물리지도 않고 진저리 처진다.
웬만한 구리철사 줄도 끊어내는 이빨이 그냥 하릴없이 제 영역을 스치는 물체엔 짜증스러웠을 것이고, 볼은 볼 대로 힘을 쓸 겨를도 없이 지나치는 물체가 야속했을 것이고, 잇몸은 잇몸대로 아무 자극도 없으니 심심했고, 턱 아귀는 아귀대로 저항을 이기는 뻐근한 쾌감을 잃었으니, 모두가 허무(虛無)다.
아무 말 없이 연신 퍼 넣기만 한다. 먹는 것이 아니라 흘러 내려가는 것이다. 다만 두 눈썹 사이는 코 뿔을 향하여 계속 조금씩 좁혀져서 맞붙을 것 같다.
늘 들은 할머니의 말씀, 저녁 죽 삼 년이면 논 서 마지기가 된다!
거역할 수 없는 집안의 연중행사인 것을 어떻게 하랴. 아무도 예외일 수는 없다. 어렴풋이나마 느끼지만, 한때는 장리쌀도 얻어서 꾸려온 듯하다.
장리쌀. 무서운 장리쌀이란 무슨 뜻이지,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흰죽을 그저 먹어 주는 것만이 대수다.
내 키가 훌쩍 큰 뒤에야 알았지만, 장리쌀은 일 년에 5 할 이자 턱이 되는 나락이나 쌀을 현물로 빌린 대로 갚아야 하는 무서운 양식이다. 그래서 죽을 먹었다. 내가 자랑 할 수 있는 것, 식구들의 집안 일으키기 실화다.
그래서 우리 졸개가 다 장성할 무렵 우리는 부를 축적하진 못했어도 여러 마지기의 논이나마 마련할 수 있었다. 남이 부러워하는 동네의 모범사례 집안이 되었다.
이름하여 ‘괸 돌집.’/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