섶 갓이 있으면서도 때맞춰 베어놓지 못해서 자주 생나무가 아궁이에 들어가게 된다. 마음으론 뻔히 알면서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안타까운 일이다.
품이 늘 달리는 우리 집 사정으로는 별 방도가 없는 것이다. 훗날 머슴이 있을 때까지는 그랬다. 소여물을 끓이면서도 할머니는 아무 말씀이 없으시고, 어머니가 땔감 불평을 하셔도 아버지는 아무 대답이 없으시다. 마른나무와 생나무가 섞여야 타는데, 마른 섶 가리는 점점 작아져서 종 내는 마당 한구석을 훤히 드러내 놓고 말 때가 곧 닫칠 것 같아서 불안하시다.
이런 막판 때가 와야 아버지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겨울에는 몹시 추운 날, 봄가을은 논밭의 품앗이가 없는 날을 잡아서 나무하러 가신다.
그도 그럴 것이, 날씨 좋은 날은 우리 일이다, 남의 일이다, 동네 대 소사가 끼이고 친인척 대소사가 버티고, 이래저래 우리 집의 날은 궂은날뿐이니 그만도 다행이다.
겨울은 방학 때가 되게 마련인데 사정이 이러니 내가 빠질 수 없다.
해져서 등만 남은 양말, 양말목이 그나마 양말임을 알아볼 수 있게 하는 성한 곳 없는 양말, 온통 덕지덕지 기운 양말을 발싸개 위에 덧신은 다음, 짚신을 신고 들메 매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아버지의 행장이시다.
수건을 두르고 귀를 가리면 이것으로 그만이다. 난 할머니의 당부대로 깃은 반드시 세 개가 되도록 옷을 끼어 입는다. 찰떡을 담은 도시락을 허리춤에 차고 아버지를 따라나선다.
소 목에다가 우 차(수레)의 멍에를 메우면 비로써 움직인다. 해뜨기 전이다. 걸음을 걸을 수 없을 정도로 껴입은 나는 애초부터 바람을 등지고 달구지에 올라타고, 아버지는 동네를 벗어나서야 타신다.
철들고부터 있어 온 아버지와의 동행은 어머니의 배려인 것 같다. 아버지의 건강이 늘 걱정되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나나마 동행시키지 않으면 마음이 내키지 않는 어른들의 세심한 배려이다.
동네를 몇 개나 지나고 물도 건너고, 한나절쯤 돼서야 푸른 솔잎 사이로 지나는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해가 나무숲에 가려서 동서남북을 가릴 수 없다. 인적이 없으니, 태고에 머문 듯, 울울(鬱鬱) 창창(蒼蒼) 나뭇가지 사이로 이따금 높은 봉우리가 보일 뿐이다.
나무는 지천으로 깔려있다. 솔가지도 촘촘히 내 키에 와 닿는다. 내겐 나뭇등걸 줍는 일이 지웠다. 발로 차면 나뭇등걸이 뿌리 빠지는 썩은 나뭇등걸을 줍는 일이다.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쉬운 일이고 뿌리 빠지는 재미가 있어서 마냥 차고, 굴러서 뽑아내다 보니, 달구지 있는 곳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우 차 세워둔 곳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나왔는지, 아니면 우 차가 어디로 옮겨졌는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는다. 그러니 마음은 점점 급해지고 겁이 나기 시작하는데, 아직은 아버지를 부를 때가 이르다고만 스스로 위안하며 찾아보지만 못 찾는다.
아무리 허둥대도 찾을 수 없으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나를 두고 떠나지는 않았는지, 하여 더욱 조급해진다. 도무지 가늠이 안 되고 그저 가슴만 두근거린다.
이때 멀리서 들려오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 음성은 내 자존심을 살리는 은혜의 소리였다. 의젓이 대답은 했지만, 눈은 뜨거웠다. 한참을 걸어서 갔다. 아마 내가 찾아 나선 방향은 우 차가 있는 곳으로 가까이 가는 방향이 아니라 그 반대 방향이었나 보다.
세상만사 이렇듯, 원점의 중요함을 일깨우는 아버지의 사려 깊은 도움 나들이였다. 무슨 표지라도 해가면서 움직였어야 한다는 작은 지혜, 밀림을 헤쳐가야 하는 앞길에 꼭 필요한 작은 체험을 아들에게 남겨 주셨다.
지금 돌이키면 그때 그 소리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었다. 그 부름은 승화된 외마디 사랑 노래였다.
지금도 내 위치는 어디쯤인지, 늘 원점에서 가늠해야 함은 여전하다. 생의 나침반을 아버지는 그때 내게 들려주셨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