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량

외통궤적 2008. 4. 8.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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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4.001010 상량

정든 집이 사라졌다. 싸리나무울도 없어졌다. 집이 들어설 자리는 내 오금만큼이나 높여졌고 커다란 주춧돌들이 여러 줄로 나란히 놓였다. 울 밑의 늙고 병들은 복숭아나무는 밑동 채로 잘려서 마당 한구석에 누었고, 앵두나무와 배나무는 조막손처럼 잘려서 앞집 울 밑에 옮겨심어졌다.

우리의 모습이 바뀌고 허물을 벗는 날이다. 팔방이 훤히 트여 이웃집 담과 울타리가 한눈에 들어왔고 신작로와 맞닿아서 우리 집터는 운동장같이 넓고 넓다.

도목수는 흰 수건(手巾)을 머리에 띠고 있는가 하면 양팔 소매는 걷히고, 먹통과 자를 양손에 번갈아 들어가며 바삐 움직이고 있다. 바짓가랑이 정강에는 세 곳이나 동여매어진 것으로 보아도 오늘의 큰일을 짐작할 만하다.

모두가 도목수의 지시에 따라 잰걸음으로 오 간다.

기둥이 세워지고 짝 통 맞추어서 다듬은 들보들이 사방으로 이어지더니 흰 나무 재목들이 수직과 수평으로 선을 이루어 가면서 여러 개의 네모로 짜이고 있다.

마지막 들보를 맞추는 일이다. 기둥 위에 올라간 일꾼이 보의 한끝을 기둥 위의 패인 한 곳에 얹어서 큰 나무 메로 내려칠 때 자루에서 메가 빠지면서 밑에서 지켜보든 인부의 머리를 스치고 떨어졌다.

머리를 싸잡은 인부는 피를 흘리면서 어디론가 사라지며 작업은 저 절로 중단되면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구경나온 동네 사람들은 일시에 고요했다. 하나둘 한쪽으로 몰려가 앉더니 곧 술잔이 오갔다.

한 식경이 지나자, 머리를 싸맨 그 어른은 다시 나타났고 일은 곧 다시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서 상량 시간은 예정을 훨씬 넘겨서 이루어지고 작업은 늦게 끝이 났다.

어린 나에게도 이상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무슨 적지 않은 징후를 예감할 수 있었다. 이제 그 일이 우리 집과 내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는지, 또 우리 집에 무슨 앙화(殃禍)를 가져왔는지 물어보고 싶고 알고 싶다.

만약 그때 그런 일이 없었다면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 모든 걸 풀어줄 수 있는 묘책은 없는 것일까? 현대과학에서 이런 것을 밝히지는 못할까? 내가 왜 이런 것을 기억하고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하는지를, 또한 알고 싶다.

오늘, 이 시점에서 우리 집의 오늘을 알 수 없는 단절된 시공을, 그때 이미 암시하는 신의 계시였을까? 괴이(怪異)한 그날의 일이 평생을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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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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