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통궤적 2008. 4. 9. 22:25

글 찾기 ( 아래 목록 크릭 또는 왼쪽 분류목록 클릭)

외통궤적 외통인생 외통넋두리 외통프리즘 외통묵상 외통나들이 외통논어
외통인생론노트 외통역인생론 시두례 글두레 고사성어 탈무드 질병과 건강
생로병사비밀 회화그림 사진그래픽 조각조형 음악소리 자연경관 자연현상
영상종합 마술요술 연예체육 사적跡蹟迹 일반자료 생활 컴퓨터
1147.001012 메

‘실 고구마’처럼 한두 올이 혀끝에 남아서 씹히고, 풀뿌리이긴 하지만 연하고 사르르 녹는 메 맛을 본 후, 늘 그 정체를 알고 싶어서 밥상머리에서 할머니께 메를 물었고, 되물어 보곤 했다.

얼버무리시는 할머니가 메 캐러 가는 일만은 한사코 반대하시는 뜻을 뒤늦게 알기는 했다.

밭이랑의 보드라운 흙은 긴 겨울 동안 눈에 씻기고 바람에 날려가서 하얀 모래알만 가지런히 드러내고, 대지의 훈기를 싸안은 쑥 순이 솜 같은 털을 하얗게 드러낼 때다.

아직은 귀뿌리가 시리지만 바람이 싫지 않은 이른 봄, 드디어 메 뿌리를 캐보려는 내 뜻을 이루는 날이 왔다.

누나를 졸라 누나의 보증으로 할머니의 허락을 받았다.

쇠스랑을 메고 조그만 다래끼를 차고 동네 밖 가까운 들판에 나아갔다.

별난 동생을 둔 누나는 할머니의 명에 따라, 나서기는 해도, 명색이 처녀인데 쇠스랑 멘 머슴애와 함께 걷는다는 것이 쑥스럽다.

어찌하랴! 그래도 나는 신난다. 머슴애 꼭지라고, 쇠스랑을 멨으니 어엿한 농군의 후예 아니런가.

빈 밭 한가운데를 내리찍어서 앞으로 당겼다. 하얀 메 뿌리가 흙 속에서 진주같이 선명하게 눈에 든다.

진주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메가 이 세상에서 제일 보배롭다. 다음 쇠스랑 질을 잊고 메만 줍고 있으려니 이번에는 누나와 머리를 마주 부닥쳐서 엉덩방아를 찧는, 나를 보고 스스로 할머니의 훈계를 대신한다.

메를 줍는 이가 쇠스랑으로 땅 파는 이와 뜻도 맞고 마음도 하나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메 캐려다 메 줍는 이의 머리를 찍어서 다치는 일이 흔하게 일어난다며, 그런 일이 없도록 여러 번 일러두신 할머니와 믿음직한 누나의 돌봄으로, 나의 메 뿌리의 소원을 풀렸다.

오늘까지 선명히 기억되는 그 일, ‘쇠스랑 밑의 머리’를 상상하는 조심성을 심어주신 할머니의 그 평범한 일깨움이 나를 오늘까지 온전하게 살아남게 했다. /외통-



'외통궤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알  (0) 2008.04.12
보막이  (1) 2008.04.11
매흙질  (0) 2008.04.09
상량  (0) 2008.04.08
복숭아꽃  (0) 2008.04.07
Posted by 외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