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 고구마’처럼 한두 올이 혀끝에 남아서 씹히고, 풀뿌리이긴 하지만 연하고 사르르 녹는 메 맛을 본 후, 늘 그 정체를 알고 싶어서 밥상머리에서 할머니께 메를 물었고, 되물어 보곤 했다.
얼버무리시는 할머니가 메 캐러 가는 일만은 한사코 반대하시는 뜻을 뒤늦게 알기는 했다.
밭이랑의 보드라운 흙은 긴 겨울 동안 눈에 씻기고 바람에 날려가서 하얀 모래알만 가지런히 드러내고, 대지의 훈기를 싸안은 쑥 순이 솜 같은 털을 하얗게 드러낼 때다.
아직은 귀뿌리가 시리지만 바람이 싫지 않은 이른 봄, 드디어 메 뿌리를 캐보려는 내 뜻을 이루는 날이 왔다.
누나를 졸라 누나의 보증으로 할머니의 허락을 받았다.
쇠스랑을 메고 조그만 다래끼를 차고 동네 밖 가까운 들판에 나아갔다.
별난 동생을 둔 누나는 할머니의 명에 따라, 나서기는 해도, 명색이 처녀인데 쇠스랑 멘 머슴애와 함께 걷는다는 것이 쑥스럽다.
어찌하랴! 그래도 나는 신난다. 머슴애 꼭지라고, 쇠스랑을 멨으니 어엿한 농군의 후예 아니런가.
빈 밭 한가운데를 내리찍어서 앞으로 당겼다. 하얀 메 뿌리가 흙 속에서 진주같이 선명하게 눈에 든다.
진주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메가 이 세상에서 제일 보배롭다. 다음 쇠스랑 질을 잊고 메만 줍고 있으려니 이번에는 누나와 머리를 마주 부닥쳐서 엉덩방아를 찧는, 나를 보고 스스로 할머니의 훈계를 대신한다.
메를 줍는 이가 쇠스랑으로 땅 파는 이와 뜻도 맞고 마음도 하나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메 캐려다 메 줍는 이의 머리를 찍어서 다치는 일이 흔하게 일어난다며, 그런 일이 없도록 여러 번 일러두신 할머니와 믿음직한 누나의 돌봄으로, 나의 메 뿌리의 소원을 풀렸다.
오늘까지 선명히 기억되는 그 일, ‘쇠스랑 밑의 머리’를 상상하는 조심성을 심어주신 할머니의 그 평범한 일깨움이 나를 오늘까지 온전하게 살아남게 했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