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옹고집은 어릴 때부터 이미 있었다.
세 살 위의 누나가 어느 날 학교엘 간단다. 나도 가겠다고 따라나서는데, 어이가 없는 부모와 누나는 갖은소리로 달래고 얼러도 먹혀들 리가 없다.
집안은 발칵 뒤집혔다. 볼 만했을 것이다. 입학하는 누나를 학교에 데려가려 네, 따라붙는 나 떼 내어 따돌리려네, 손이 모자라고 발이 달린다.
악을 쓰고 발을 동동 구르고, 게다가 누나 욕까지 퍼부으면서 튀어 나가는 나를 이길 수 없었든지 아버지는 나를 붙들고 학교에 가자는 것이다.
얼마나 좋은가. 학교 문 앞까지는 업혀서 갔으며 학교 마당에 이르러 내려놓고는
‘여기가 학교다.’ 이다.
이상하다?
학교라는 데를 알 길이 없는 나는 먼발치의 누나를 바라보며, 넓디넓은 학교를 바라보면서 한참을 지냈고, 그리고 만족했다. 학교란 그저 저렇게 있는 그것이구나. 이렇게 해서 나 홀로 일일 입학을 한 셈이 됐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다. 왜 그랬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럴듯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이는 어린이 교육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 같기도 하다.
내 생각인즉, 집에서 누나와의 생활에서 차별을 느낄 수 없었으니까. 집에서 누나보다 못한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아무런 불편도 없었으며 또 내 수준에까지만 누나의 모두가 비쳐서 그만큼만 생각이 미치니 누나는 나와 다를, 이유가 없다.
이것이다. 왜 내가 누나보다 모르는가를, 왜 덜 발달 됐는가를 자기 수준으로는 알 길이 없으니 같은 수준으로 보일밖에 없다.
그러니 ‘나도 가야 한다.’다.
우리 부모는 몸으로 당신들의 어려움을 해결했고 나는 집 밖을 처음 내다봄으로써 내 눈 이상으로 높은 곳도 있음을 알고, 내 못 미침도 깨달았다.
내가 입학할 때까지 삼 년 동안은 누나의 학교와 관련한, 아무런 토도 달지 않았다. 그리고 차츰, 나이 차이가 어떤 영향을 주는 가도 깨달았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