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전 아주머니

외통궤적 2008. 5. 6. 09:38

글 찾기 ( 아래 목록 크릭 또는 왼쪽 분류목록 클릭)

외통궤적 외통인생 외통넋두리 외통프리즘 외통묵상 외통나들이 외통논어
외통인생론노트 외통역인생론 시두례 글두레 고사성어 탈무드 질병과 건강
생로병사비밀 회화그림 사진그래픽 조각조형 음악소리 자연경관 자연현상
영상종합 마술요술 연예체육 사적跡蹟迹 일반자료 생활 컴퓨터
1422.000907 장전 아주머니

해방 직후의 혼란기에는 농촌만이 그나마 안정되어있었고 꾸밈새 있는 살림을 꾸려갈 수 있었다. 그 무렵 도시의 많은 사람들이 먹을거리를 찾아서 농촌으로 파고들었는데, 장전 아주머니는 우리 집을 '주인집'으로 정하고 달을 거르지 않고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만병통치약 ‘다이아찡’ 한 알에 쌀 한 되, 내 주먹만 한 미제 전구는 속이 안보이게 덧칠했다고 해서 그런지 한 개에 무려 쌀 한말을 달란다. 그래도 시골에선 이 기막히게 영험한 약을 없어서 못 샀고,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 보지도 못 한 장수(長壽)전구는 신기한 자랑거리의 하나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니 부르는 게 그 값이라도 모두들 몸살 나게 사고 싶었다.

 

생필품을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술로 만들다보니 말이 아니다. 의약품은 생산조차 하지 못 했고 공산품도 아주 조악하기 그지없었다. 전구만 해도 하루에 한 개씩을 꽂아야 하는 시절이었으니 돈은 고사하고 속인들 오죽이나 상했으랴. 얼마를 달랜들 상관치 않고 사서 꽂고 싶은 심경이었을 것 같다. 우리 집도 몇 개씩이나 샀다.

 

돈 주고 내 물건이란 것을 사 본 일이 없는 내 앞에 그 아주머니는 만년필, 공책 아닌 노트, 그림물감, 지우개, 수없이 많은 학용품을 쏟아냈다. 장전 아주머니의 속셈은 빗나갔다. 미동도 하지 않는 나를 훔쳐보다가 싱겁게도 그냥 주섬주섬 싸 가지고는 다른 집으로 갔고 나 또한 그냥 평소와 다름없는 화로 가에서 책읽기의 하루가 이어졌다. 어머니께 조르지도 안했고 스스로 애써서 잊으려고 하지도 안했으니 그저 내 평범한 생활의 일면인, 그것이다.

 

 

그런데 이상 한 일이 며칠 후 벌어 졌다. 장전아주머니는 내가 입을 만한 갖가지 입성을 한 보따리 풀어놓고는 또 내 눈을 살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날까지 물건을 산다는 것, 그런 것들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으로 여기는 나는 손도 대보지 않고 눈만 깜박이고 있을 뿐이다.

 

무슨 이런 애 가 있을까? 바보인가? 등신인가? 엄마의 위압인가? 장전아주머니는 상상을 초월하는 어린이의 인내력에 마침내 불을 붙이고 만다.

 

‘어쩌면 이렇게 의젓한 아들을 두셨습니까? 수없이 다녀도 이런 애는 처음 봤습니다!’

 

이 한마디에 내 억제력의 보는 터졌다. 물은 터져 나왔다. 어깨가 들썩이고 눈물이 화로 가의 재를 품어 올렸다.

 

햇살을 못 이겨서 처마 끝을 떠난 고드름이 이따금씩 요란하게 태질하고, 배나무의 까치소리가 함께 어우러지며 여닫이 격자창호지문에 까치그림자가 선명하다.

 

가난이 물려준 극기의 정신이 그 정점에서, 마침내 임계의 벽을 뚫고 분출하는 승리의 눈물이었다.-외통-

 

-인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이며 하느님의 뜻을 바로 받드는 값있는 실존이다.-밝은 사회-



'외통궤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손가락  (0) 2008.05.07
징용  (0) 2008.05.07
나무타기  (1) 2008.05.05
누님 입학하는 날  (0) 2008.05.04
정남이누나  (0) 2008.05.04
Posted by 외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