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때로 이성을 잃고 동물적 야성 본능으로 행동할 때가 있다고 하는데 그 야성은 규모와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 제한적이거나 또는 국지적으로 극소하게 일어나나 보다.
크게는 자국의 국가이익을 위한다는 구실로 전쟁도 도발하여 살상하고 같은 목적으로 맞서므로 말살한다. 그런가 하면 작게는 이익집단끼리의 이해 상충으로 대규모의 살상이 자행되기도 한다.
그치지 않는 의문은 혈육 내부의 암투와 반목으로 인한 야성적 행동, 그것이다. 먼 옛날 아벨과 카인의 갈등을 시작으로 오늘 이 땅의 재벌 형제 싸움, 아들이 아비를, 아비가 아들을, 아내가 남편을 살상하는 일인데, 모두가 왜 이렇게 야성적 행동인가 하는 것이다. 또한 왜 인간적 이성의 적극적 지배로 이루어지는 행동이냐 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한 끼의 먹을거리를 얻기 위해서나 종을 보존하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런데 나의 경우, 사회학자나 심리학자들은 어떤 결론으로 이어지며 그런 의미에서 내가 취한 이 행동은 내 성격 형성과는 어떤 관련이 있었을까 싶어서 매우 흥미롭다. 흥미로운 내 행태는 이런 것이다.
아직은 사리 분별이 흐린, 자라는 천진한 시절이긴 했어도 동생을 감싸고 보호해야 하는 것을 알 만한 때인데도, 솔직하게 그렇게 하지 못했으며 지금 생각하면 어떤 보상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부담도 느낀다. 그런데 그렇게도 할 수 없으니 이래저래 평생을 죄의식에 젖어 사는가 보다.
세 살 터울의 형제 사이에 내 밑으로 한 동생을 잃었기 때문에 여섯 살 아래의 동생은 늘 내가 돌봐야 한다. 내겐 큰 짐이 되며 내 자유분방한 하루하루를 축내는 거치적거리는 애물 덩어리다.
여름 방학에 밥만 먹으면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는 나를 따라다니는 동생은 걸음도 더디고 말뜻도 못 알아차리는, 어깨동무 구실은 영 그른, 동생인데도 보호해야 하는 책무를 내게 준 어머니는 나만을 챙기면 동생은 늘 붙어 다니는 것으로 여기신다. 그 또한 무거운 짐이다. 무슨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 외에는 아침밥을 먹고 나면 그림자처럼 내 뒤를 붙어서 좀처럼 곁을 벗어나지 않으니 혼자 빠져나가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다른 동무들은 벌써 물가에서 물장구를 치고 있을 것이고, 곧 긴 행렬을 이루며 밭두렁에 올라서리라고 생각하니 내 몸은 달아오르고, 숨이 가빠지면서 달음질이 절로 된다. 동생을 데리고 나간다면 처음 한참은 그런대로 어울려지겠지만 놀이의 장소를 이동하거나 격렬한 놀이가 이루어지면 동생과 나는 열외가 되고, 마침내는 무리에서 처져서 둘만이 따로 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 지경이 되면 둘은 어깨를 떨어뜨리고 힘없이 집으로 돌아와서는 말도 안 통하는 동생과 지루한 시간을 보내다 끼 때가 되어서 모두가 웅성거릴 때 얼른 밥을 먹고 슬며시 빠져나오는, 꾀를 부릴 수밖에 없으니, 한나절은 허공에 날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얼마나 아쉽나!? 화가 나지만 어쩔 수 없이 견디어야 한다.
넓은 집을 하릴없이 부엌으로 들어갔다가 마당으로 나오고, 뒤란으로 돌아갔다가 느닷없이 방으로 들어간다. 안방에서 건넛방으로 갔다가 다시 신을 신고 헛간으로 갔다가 외양간으로 가는데, 눈치를 챈 동생은 재빨리 대응하며 허리춤을 잡고 늘어지듯이 따라붙는다.
오늘은 동무들과 ‘동자원’ 마을에 있는 냇가에 고기를 잡으러 가기로 약속은 이미 됐는데 도무지 해결 방안이 없다. 술래잡기하면서 따돌림당한 적을 아는 동생은 술래잡기는 안 한단다.
부모님이나 할머니가 계신다면 강제로 집 주위를 몇 바퀴 도는 과정에서 저만치 정반대의 위치쯤 되었을 때 슬쩍 비껴서 옆집에 숨어있다가 나를 잃어버린 동생이 울음을 터뜨리고 발을 구르고 이름을 부르고 온 동리가 떠들썩하게 되면서 어머니께 일러바치는 순서를 확인하고 떠나는, 그런 순서인데 오늘따라 홀로 집을 보시든 할머니께서 이웃에 다녀오신다고 당부 말씀이 있었으니, 이리도 저리도, 못하게 됐는데 무슨 수는 나질 않는다. 장난기가 슬며시 동했다.
소금단지에서 엄지손가락만 한 보드라운 소금 덩어리를 내서 동생 손에 쥐여 주면서, 이것은 사탕인데 가지고 있다가 먹으라며 쥐여 주었다. 내 딴에는 안심을 시키고 정신을 내게서 떼도록 꾀를 냈을 것인데, 동생은 동생대로 내 꾀를 알았는지 계속 내 얼굴만 바라본다. 대문 틀 위에 걸쳐 힘없이 앉아있노라니 따라서 저만치 다른 문틀 위에 저도 앉는다. 한 차례의 신경전은 이렇게 무승부로 끝났다.
잠시 한눈을 팔았다. 맞은편에 앉아있든 동생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달려온다. 나를 무작정 주먹으로 때리면서 달려든다. 손에 쥐었든 소금 덩어리는 보이지 않고, 입을 다물고 눈을 흘기면서 야단이다. 엉겁결에 물동이에서 물 한 바가지 떠서 동생에게 내밀면서 입을 씻으라는 시늉을 했건만 이미 씹어 먹은 듯 반응은 시원치 않다. 마신 물은 목젖을 지나고 깊숙이 내려갔는지, 얼굴이 조금 펴진 듯해서 한숨은 돌렸지만 조금은 불안한 잠간(暫間)이 지났다.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일어서려는데 달려온 동생의 입에서는 허연 밥알과 함께 죽 같은 온갖 음식이 폭포같이 쏟아진다. 내 옷은 온통 죽사발을 뒤집어쓴 꼴이 됐고 내 계획은 허사가 됐다.
둘은 옷을 갈아입고 벗은 옷은 몰래 물에 담가버렸는데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형을 의지하는 동생은 이 일을 어른들에게 일러바치지 않았다. 그 죄 밑, 속죄의 하나(一煥)로 그 후 내 동무들과 나는 어울릴 수가 없었다.
동생과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는 그런 절제, 내 몸을 내 마음대로 다스릴 수 없는 때도 있음을 깨달았다. 동생에게는 다시없는 형이 됐고 동무가 돼 있었다.
그러나 왜 동생에게 나는 못 먹는 소금 덩어리를 주었을까?
왜 따 돌려 혼자만 다녀야만 충족되는 내 생활일까?
이 일이 보편적이라면 하필 하고많은 다른 것들 속에서 이 일만이 선명하게 내 마음에 자리하여 이날까지 지워지지 않을까?
아무도 간섭받지 않는 나만의 활동을 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 자유가 무한하게 주어진다면, 오히려 포물선 모양으로 회귀하게 되리라. 가정과 형제와 이웃의 정에 끌리지 않고 달리는, 그런 궤도를 크게 하여 먼 길과 오랜 시간을 돌다가 생의 마지막에 돌아오는, 큰 곡선을 그리거나 아예 이탈하여 무한 탕아가 될 것이다. 나는 어느 쪽이 될 소양과 기질을 타고 있는지, 그 행동은 야성이었는지 아닌지, 그때의 일로 정립해 보고 싶다.
그리고 아직도 궤도를 도는 중인지, 정신적이나마 안착하여 귀속됐는지를 알아봐야 할 텐데, 어떻게 알아보나 답답하기만 하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