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구와 달구지

외통궤적 2008. 6. 15.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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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7.001029 소발구와 소달구지

‘발구’의 참 말뜻은 모르지만 내가 알고 있기는 운송 수단 중의 하나로 불린다고 안다.

나무로 만든 것인데 우마차가 다닐 수 없는 곳을 수월케 다닌다. 특히 ‘오르매’(가파른)가 센 곳에서 이용되며 소가 끌고 다니는 일종의 썰매 같은 것이다.

소와 사람이 함께 다닐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간다. 송아지에게 달구지를 메이기 전에, 길드리기 위해 쓰이는 도구이기도 하다. 즉, 물 댄 논을 써는 연장에서 그 끝에 달린 빗살과 같은 것이 없을 뿐이다.



‘철원’에서 갓 이사 온 ‘덕재’ 친구를 따라서, 친구네 아버지가 농사짓는 먼 곳, 깊은 골짜기에 발구 뒤를 따라 한나절을 갔다.

‘친구따라 강남간다’더니, 내 꼴이 그 꼴 이었다.

아직은 그런 말도 모르고, 그저 동무가 있으면 어디든지 함께 가는, 좋기만 한 개구쟁이 때였다.



우리 집엔 달구지는 있어도 발구는 없다.

발구는 쇠붙이가 붙어 않은, 나무로만 지어지고 크기도 소달구지보다 놀잇감처럼 작고 아담하다. 그래서 짐을 싣는 곳도 아주 작고 땅에 닿을 듯 낮다.

내가 먼저 슬며시 발구 뒷자리에 매달렸다. 얼마쯤 가다가는 아예 앉아본다.

우리는 번갈아 가며 탔고, 한동안은 그대로 갔지만 호사스럽고 재미있는 이 발구에서 내가 내려오질 않았으니 ‘덕재’는 내게 질세라 저도 발구 위에 올라왔다.

이때 소의 걸음이 느려졌다.

그러니 소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고 워낭소리는 요란해질 수밖에, 곧 ‘덕재’ 아버지는 뒤돌아보게 됐다.

소를 사랑하시는 ‘덕재’ 아버지는 우리를 발구에서 내리도록 하신다.

아쉽지만 할 수 없다.

발구는 쉬지 않고 가는데, 멈추어서 서로 네 탓 내 탓만을 할 때가 아니다.



골짝에서 내려오는 바람은 나뭇잎을 훑고 그늘을 스쳐서, 한여름임에도 우리들의 목덜미를 제법 시원하게 한다.

산은 첩첩이 우리가 가는 길 양옆을 병풍치고, 맑고 푸른 손바닥 하늘만 빤히 열려있다.

수리 한 마리가 무엇을 노리는지 우리 위를 맴돈다.

골짝을 흐르는 개울은 쳐진 나무 그늘에 숨어서 돌 틈을 빠지는 뾰족한 소리만 요란하다.

‘가재 발 씻’는 길가의 ‘다랑논’에는 새파란 물총새가 벼 포기 위를 미끄럼 타면서 물가 숲속으로 숨어버린다.



절거덩 덜거덩 쇳소리는 나는데 사방엔 아무것도 없다.

소리는 점점 커진다.

끊이지 않는 깡통 소리는 골짝을 울려서 메아리친다.

적막해야 할 골짝은 웬일인지 동네 한복판처럼 우리의 귀를 시끄럽게 한다.

아무리 둘러봐도 소리 날만 한 곳은 없다. 허수아비 하나가 한쪽 팔을 올렸다 내렸다 한다.

살아 있는 허수아비다.

덕재에게 물어서 알았다.

이는 논두렁에다 만들어 놓은 작은 물방아 고에서 나는 소리이고 허수아비의 팔놀림도 물방아를 이용해서 살린 허수아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들짐승들을 쫓는 자동 인기척이다.

물방아는 들짐승으로부터 농사 피해를 예방하는 경고용 물건인 셈이지만, 내게는 매우 흥미 있는 놀잇감이다.

한나절, 내 관심으로 그 물방아는 물고 와 고에 붙은 깡통 조정으로 해서 그 소리가 길게 짧게 크게 작게 무디게 날카롭게 갖가지로 변했다.

또 허수아비의 팔놀림도 빨리 되거나 더디게 되게 했다. 그날의 그곳 짐승들은 새로운 소리에 놀라서 며칠을 그곳에 얼씬하지도 못했을 것 같다.



발구래야 들어갈 수 있고, 발구래야 농사지을 수 있는 골짜기가 내가 사는 곳에도 있다는 것이 놀랍다.



넓은 들판만 바라보고 자라든 내겐 이 논두렁 물방아 골짜기가 잊히지 않는 추억의 산촌 풍경으로 남아서, 늘 옛 동무를 그리게 하고 나를 그 산골짝으로 데려다준다./외통-



이상은 사람의 천국이다. (밝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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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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