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석에서 저만치 떨어져 오른손을 머리 뒤에 대고 계면쩍게 서 있는 ‘윤’에게 할머니는 흰 이를 드러내신다.
‘너 머리 깎게?’
곱게 빗어 쪽 지은 가르마가 반듯하다 못해 은수저 한 짝을 올려놓은 듯, 반백 머리카락에 수직으로 빛난다. 흔한 할머니들처럼 맨발도 아니고 더구나 오이씨 같은 버선발로 멍석 위를 오리걸음 하시다가 올려보시는 큰할머니 이마의 잔주름은 머리카락만큼이나 곱다. 뒤 쪽진 은비녀와 함께 잘 어울렸다.
‘큰아버지가 일 나갔으니까, 오늘은 못 깎아주고 그냥 기계만 가져가서 아버지한테 깎아 달라고 해라?!’
멍석 밖에 벗어 놓으신 흰 고무신이 가지런하게 부엌문을 향했고 깔아놓은 멍석은 자로 잰 듯 초가지붕 처마 자락과 평행했다.
큰할머니의 한 손엔 ‘머릿기계(바리캉)’가 들려 있고 한 손에는 밤톨이 담긴 손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우리는 왜 머리 깎는 기계가 없을까?’ 생각하는 ‘윤’에게 할머니가 다가왔다.
땅 위에 누워 있든 ‘윤’의 그림자가 몹시 흔들리고, 움직였다.
‘윤’이 모퉁이를 돌아가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할머니의 그림자가 ‘윤’의 그림자를 대신하여 바윗돌이 되었다.
한참 무겁게 드리워 있었다.
머리 깎는 기계에는 내 작은 염원이 담겨 있었다. /외통-
보다 강한 유혹, 보다 약한 욕망이 사람을 괴물로도 마들고, 사람을 성자로도 만든다. (W. 러니드)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