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원

외통궤적 2008. 6. 17.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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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9.970125 염원

'할머니 ?! 우리 아버지가 머리 깎는 기계 좀 달래요. 제 머리 깎을 거예요’


씨도 토도 빠지거나 보탬 없이, 아버지가 일러주신 대로다.
갈퀴로 훑어낸 벼를 멍석에 널고 계신 큰 할머니 귀에 들릴까말까 꺼지는 소리로 외워댄다.
초가을 볕이 따갑다.
몇 번이고 되풀이 외웠을 때, 그제야 들으셨는지, 멍석에서 저만치 떨어져 오른손을 머리 뒤에 대고 게면 적게 서있는 '윤'에게 할머니는 흰 이를 드러내신다.
‘너 머리 깎게?’
곱게 빗어 쪽지은 가르마가 반듯하다, 못해 은수저 한 짝을 올려놓은 듯, 반백 머리카락에 수직으로 빛난다.
흔한 할머니들처럼 맨 발도 아니고 더구나 오이씨 같은 버선발로 멍석 위를 오리걸음 하시다가 윤을 처다 보시는 할머니 이마의 잔주름은 머리카락만큼이나 곱살하다.
뒤 쪽진 은비녀와 너무나 어울렸다.
‘큰아버지가 일 나갔으니까 오늘은 못 깎아주고 그냥 기계만 가져가서 아버지한테 깎아 달래라?!’
멍석밖에 벗어 놓으신 흰 고무신이 가지런하게 부엌문을 향했고 깔아놓은 멍석은 자로 잰 듯 초가지붕 처마자락과 나란했다.
큰 할머니의 한 손에는 머리기계(버리캉)가 있고 한 손에는 밤톨이 담긴 손바구니가 들려있었다.

‘우리 집에는 왜 머리 깎는 기계가 없을까?’ 생각하는 '윤'에게 큰할머니가 다가왔다.

바위처럼 땅위에 누워 있던 '윤'의 그림자가 몹시 흔들리고,'윤'은 뛰었다.
'윤'이 모퉁이를 돌아가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할머니의 그림자가 윤의 그림자를 대신하여 바위 돌이 되었다.
한참동안 무겁게 드리워 있었다.
머리 깎는 기계에는 내 작은 염원이 담겨 있었다. /외통-



 
보다 강한 유혹, 보다 약한 욕망이 사람을 괴물로도 만들고,
사람을 성자로도 만든다.(W. 러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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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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