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렵 어떤 연유로 우리 같은 시골의 집집에 쇠고기 통조림이 차례 돼 왔는지, 어린 내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여남은 개씩의 쇠고기 통조림을 여러 날 맛보며 먹을 때마다 몇 번씩 혀끝이 앞 이에 씹히곤 했다.
혀가 익숙해지지 않아 이상한 음식을 적절히 입안 이쪽저쪽으로 돌려놓지 못하고 얼빠져서 그랬을 것이지만 나로선 야속했다.
제대로 맛을 보지 못하고 물린 혀끝을 참느라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몸도 마음도 하루아침에 길들어지는 것은 아닌가 보다.
통조림은 우리와는 먼 곳에 사는 특별한 사람들만이 먹는, 별식으로만 여기든 나는 이 쇠고기 통조림을 신기한 보물을 얻은 것처럼 손에 쥐고서 뒤집어 보고 굴려보고 흔들어 보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이 깡통은 무엇이라고 쓴 글자가 한 자도 없다. 산수(算數) 시간에나 나오는 숫자가 고작이고, 그림도 없고 글도 없고, 그러니까 그때에는 통조림은 으레 그런 것이로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생각해 보니 그 통조림은 군용인 것을, 창고를 헐어서 배급했었으리라고 여겨지는데, 이게 생고무 맞잡이로, 허술한 틈을 타서 그때의 주도 세력이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서 술수를 썼으리라고 생각하게 한다.
그렇다. 그 통조림 몇 개 얻어먹고 애들이나 어른이나 입을 꿰맸는지 모르겠다.
이것을 효시로 나누어 먹기 싹이 트이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개혁운동이 일어나면서 눈감고 일만 하든, 잠자는 민초(民草)들에게 쇠고기의 맛을 들이고, 앞으로 쇠고기를 언제나 원하는 때에 먹을 수 있다는, 바람을 갖게 했나 보다.
그것은 지나간 일이고, 내가 맛볼 수 있었든 쇠고기 통조림은 이것이 처음이니 그 맛은 평생 잊지 못한다.
생각만 하면, 혀끝은 입안을 겉돌고 침샘은 봇물 튼 듯이 입안을 순식간에 채우곤 한다.
깡통을 앞에 놓고 입 다시는 자식을 곁눈으로 바라보시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표정을 지금, 이 나이가 돼서야 상상이나마 한다.
생각하면 그땐 지극히 불효 짓을 했던 것 같다. 좀 더 의젓이 좀 더 어른스러워야 할 텐데.
그러나 그때의 나를 내가 알기는 불급(不及)인걸, 모름지기 어른스러웠을 것으로 생각은 되지만 그 맛을 잊지 못함은 그때 적이 혼이 나가지 않고서야 지금껏 그때 일이 새로울 수가 있겠는가! 싶다.
먹어보지 못하고 앞으로도 먹지 못할 통조림 맛 때문에 깡통따개를 마련했을 리가 없는 우리 집이다. 매사를 칼과 낫과 자귀와 도끼로 해결하든 우리 집에서는 식칼을 깡통따개로 썼는데 아무런 불편이 있을 수 없다.
얼마든지 있기만 하면 족한 것이다. 깡통따개는 우리 집으로 봐서는 사치품이다. 이 사치품을 얻으려고 읍내까지 나가야 하고 그곳에 간들 있을지 없을지도 모른다. 아무려나 통조림이 있기만 하면 따지 못해서 못 먹으랴!
뚜껑을 열었을 때, 들깨 알 같은 방울 기름이 몇 개 있을 뿐 속이 훤히 보이는 맑고 담백한 액체가 담갈색(淡褐色)의 육질을 잔잔히 덮고 있는, 통에서는 이제까지는 맡아보지 못한 고소한 냄새가 코를 스쳐서 깊숙이 내 후각을 자극하여 이날까지 지우지 못하게 새겨놓았다.
보는 맛, 묵직하게 깡통 드는 맛, 깡통을 따는 맛, 냄새, 혀를 깨물며 먹는 맛, 이 모든 건 사라지고, 다만 내 생각과 머릿속에만 머물러 있을 뿐이다.
재생은 불가능인가. /외통-
음식에 가장 좋은 양념은 공복이고
마실 것에 가장 좋은 향료는 갈증이다. (수크라데스.키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