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을 받으며 당숙과 함께 봇도랑을 따라 한참을 내려갔다. 남아 있는 몇 알의 이슬이 햇볕을 가려주길 애원하며 풀숲에 숨어있다.
봇도랑 둑을 두고 양 쪽으로 펼쳐진 들은 온통 하얀 벼꽃을 피우며 새 옷을 갈아입어나간다.
갓 팬 벼이삭이 가지런히 펼쳐진 이쪽 논배미를 향해서 공격함성을 지르는 참새 떼가 멀리 철둑길언덕 싸리나무에 새까맣게 매달려 있다.
일찍 팬 논은 여느 논과 달리 연한 초록색으로 벌써 물들어서, 새가 알아차리기도 좋을 성싶다. 그렇긴 해도, 정확하게 이쪽으로 몰려오는 한 무리의 참새 떼는 너무나 영악해 보인다.
당숙의 재빠른 방어는 깡통 두들기다. 요란한 깡통소리에 차마 앉지 못하고 벼 포기에 닿을 듯 무리지어 앉으려다가 그대로 공중선회하면서 멀리 날아갔다.
연록의 논바다는 회오리가 몰아친 듯 파도치듯 출렁인다. 참새 떼는 그 공격을 미리 알고 쫓아야 한다. 한두 마리의 선두 공격조가 벼이삭에 앉으면 무리는 사생을 불구하고 모두 내려앉아 공격한다.
그때에 새들을 쫓아낸다 하드래도 이미 쌀이 될 낱알의 물을 빨아먹어서 쭉정이가 된다는, 새떼의 무서움을 나는 할머니로부터 들어 익히 알고 있는 터다.
새의 동향을 일찍 감지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의 <레이다>구실을 내가 해야 되고 훗날 그 결과는 벼이삭이 빳빳이 섰느냐 깊숙이 고개 숙였느냐에 따라서 저절로 판명된다는 것을 알기에 당숙은 내 비위를 맞추지 않으면 안 된다.
당숙은 학교공부를 꽤 잘한단다. 오늘 가져온 비행기 만들 감들은 직접 자기 손으로 깎고 다듬어서 이제 조립단계의 알맹이들만 가져 왔다.
촛불을 켜서 조그마한 돌 위에 얹고 그 불 끝에다 이미 다듬어 만든 굵은 실만한 대나무꼬챙이의 한 가운데를 불 위에 슬쩍 슬쩍 대어서 조금 조금씩 휘어 내는 솜씨는 신묘하다.
불어져야 할 대가치가 포물선처럼 휘어져서, 네 개의 날개 끝을 하나같이 고르고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냈다.
당숙의 솜씨가 절묘했다. 불 위의 대꼬챙이와 당숙의 얼굴과 번갈아 보는 나의 눈과당숙의 눈은 한 번도 나와 마주치지 않는다.
온 정신을 촛불 위에 모으고 온 들판의 기운을 대나무꼬챙이로 끌어들이듯, 당숙의 몸은 굳고 머리는 수정 같았으리라.
나는 그사이 몇 차례나 깡통을 두들겼다. 그러한들 당숙에게는 고요 그것 이였을 것이다.
비행기는 완성됐다. 추진 프로펠러 몇 바퀴 돌려서 시험 비행시킨다. 성공이다.
봇도랑 둑 위의 길은 활주로가 되는데, 이 활주로가 천혜의 안전 활주로인 것은 비행기가 이탈 하드래도 주위가 풀밭이니 부서질 리 없고, 또한 떠다니다가 불시착 하드래도 부서질 리 없는 바다보다 더 안전한, 황금 들판이 비행기양발 밑에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대나무가 곧고. 휘지 않고. 부러지지 않는 나무인데도 연금사 같은 당숙의 솜씨에 새롭게 만들지는, 대나무의 또다른 성질도 깨달았다.
내 손으로 만들어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뜨는 비행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흐믓했다.
다 지난 추억의 한 토막막이다.
당숙의 공부자세가 내게 와 닿는 것이다. 이 비행기는 학교 숙제였을 것이다. 해서 어린 조카에게 선뜻 넘겨주지 못하였으리라. 훗날. 훗날에 나는 새떼를 몰아낸 그 날의 품삯을 톡톡히 받으리라.
지금 새를 본다면 전자 감응 놀이 비행기를 그 들 판에 준비했다가 새떼가 날아오면 그 새떼 속으로 장난감 비행기를 출격시켜서 대적해 봄직 한데 그런 기회가 있을 것인지.
그때의 당숙의 모형비행기는 아직도 내 가슴 격납고에 그냥 그대로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외통-
어린 시절은 인류가 영속되게 하는 생명의 물질을
끝없이 재생산하는 과정의 한 단계이다.(B.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