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가지 색의 나무토막들로 가득한 종이상자 한 개씩 받은 우리는 무엇인지 모르면서 저마다 한마디씩 외치며 그저 떠들 뿐이다.
‘산술세트’라는 이 놀잇감은 햇병아리 모양, 야들하고 간지럽게 앙증맞게 예쁘다.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생각 없이 갖고 놀다가 잊어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틀림없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었을 터인데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생각나는 것은, 그것도 지금 와서야 정리를 해 본다면, 일 센티짜리 정육면체의 나무토막 열 개와 그 배 크기의 것이 다섯 개 그것 다섯 개만 한 통짜 육면체가 한 개, 이것을 반으로 쪼갠 것과 같은 크기의 얇은 것 두 개, 아무튼 지금도 나는 그 모든 걸 알 수는 없지만, 산수 시간에 쓰인 것만은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무엇부터 어떻게 배웠는지를 모르면서 이 ‘산술세트’가 잊히지 않음은 모름지기 이것이 놀이기구로서 시각과 촉각을 통해 나에게 반응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우리 애들이 초등학교엘 들어가서 무엇을 타 왔는지 알지 못하지만, 아마도 이렇게 예쁜 놀잇감을 받아왔을 것 같지는 않다.
이미 각종 매체와 홍보물 속에서 헤엄치는 아이들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같이 가슴을 꽉 채워주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을까? 의문이다. 표현할 수 없는 충만감에 뜬 세월을 보냈다. 그 이름, 잊히지 않는
‘산주스 셋도’ 일본말이다.
노란 색깔의 손톱만 한, 요즈음의 각설탕 같은 정도의 나무토막을 정교히 다듬어서 물들여 만드는, 정성이 아로새겨진 그 ‘산주스 셋도’ 는 정녕 그 시절의 모든 코흘리개 신입생에게 평생 기억될, 모두의 마음에 새긴 무지개, 바로 그 실체였다.
노란 꽃잎을 놓아준 날
색을 보았고 무지개를 세었네.
가슴으로 셀 것을 놓아준 날
내 것만 내 것, 남의 것도 보았네.
손끝으로 맞출 것 놓아준 날
세상의 이치를 어렴풋이 알았네.
눈으로 가릴 것 놓아준 날
같은 것, 큰 것을 처음으로 재었네.
지성의 나무토막 놓아준 날
저마다 꿈꾸어 황금 궁궐 지었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