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보
1616.001204 뚱보
갓 태어난 우리승용차 포니를 몰고 먼지꼬리를 길게 늘였다 . 넓은 들판 위에 섬처럼 떠있는 나지막한 언덕 산 , 그 등성이를 꼬불꼬불 달려갔다. 새로 지은 집들이 산등성이를 따라 아무렇게나 자리 잡아 드문드문 보이더니 곧 피난민촌 같은 새 마을이 눈에 들어오며 마을을 열었다 .
휘어진 능선 아래 양지엔 푸른 감나무가 옥수수튀김 ‘ 팝콘 ’ 같은 꽃을 가지마다 붙여놓고 있다 . 꽃가지는 짙푸른 잎사귀를 비집고 햇살을 받으려 비벼댄다. 바람과 의논한 듯 장단 맞추어서 속삭이며 춤추고 있다 . 흙 담 위에 얹은 ‘ 곱새 ’가 우거진 감나무 사이사이로 토막 처 보이고, 장독대 옆에는 담을 끼고 나란히 봉숭아가 심겼음직한 울안이 보인다 . 연달아서 물고 이어지는 마당과 뜰 안이 나무 그늘에 가려서 보이지 않지만 전에는 산이었던 이 언덕 밑은 예부터 터 잡고 있는 , 오래된 마을임을 겨우 알아보게 한다 .
후미진 곳은 푸르고 싱그럽다 . 한길 양옆은 황토바닥이 돌처럼 굳어있다 . 그러나 한길 가운데는 콩가루 같은 보드라운 흙이 쌓여서 신이 파묻힐 것같다 . 발길에 부서진 황토 흙가루는 물결을 이루어 움직이고, 이따금 언덕을 넘는 바람에 실려 길가의 풀섶을 회색으로 칠하고 언덕 밑으로 밀려난다 .
이루어진 새 동네 , 이곳이 개척의 무한한 손길을 기다리는 새마을의 한 가운데 있는 것 같아서 , 객인 나마저 비장하게 한다 . 쉴 수 있는 정원이나 가로수는 볼 수 없다 . 녹지란 말할 것도 없고 집집엔 담도 , 울도 없다 . 앞집이 내 집 아래채요 뒷집이 내 집 뒤채가 된 듯하다 . 갓 주둔한 병영 같은 언덕 빼기 마을이다 .
당연히 있어야 할 터이지만 , 길가의 덩치 큰 새 정미소가 새 터전을 마련하려고 필사의 각오로 들어온 이곳 새 이주민들의 안방구석에 쌓아둔 볏섬을 공용 같은 입을 벌려 빨아들여 삼키려는 듯 시꺼멓게 벌리고 있다 . 문이라기에는 걸맞지 않다. 온통 벽 하나가 통째로 문이 되어서 마을을 향해 달려들 듯이 노려보고 있다 . 어쩐지 서글프다 . 정미소 안은 텅 비어있다 .
길을 오가는 사람도 없다 . 그 흔한 소주병이나 과자부스러기를 파는 가게도 없다 . 인적조차 없는 이 언덕에 똑같은 집을 뒤저가며 번지를 알아내서 친구를 찾아야한다 . 방앗간을 향해서 몇 발자국을 옮겨가다 불현듯이 내 생각이 회오리를 이루었다 . 이 친구를 얼마 만에 만나는 것인지를 따지기 전에 이 친구의 얼굴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 우선 급하다 .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당황할까 ? 하여 잠시 머물러서 눈을 감는다 .
삼십 년 전 춘천의 어느 군부대에서 우연히 연병장을 스치면서 서로를 순간적으로 알아보는 기이한 만남이다 . 이곳은 근무처를 배속 받는 보충 병력을 수용하는 부대이니 언제 어디로 누가 먼저 배속돼 떠나갈지 알지 못한다 . 각자가 자기의 능력껏 줄을 대어 빠져나가는, 갈아타는 정거장이나 다름없다 . 근무를 좀 더 편안히 하고 죽을 위험이 조금이라도 적은 후방부대로 배속 받으려고 초조히 하루를 지내면서 소식을 기다리는 이등병들로 연병장은 갈까마기 떼가 되어있다 .
이런 틈에 서로를 순식간에 알아본다는 것은 우리 특유의 시골티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 우리는 무엇인가를 갈망하고 누구든지 나를 인정하고 대화 할 수 있는 , 바늘구멍 같은 기대라도 가질 수 있는 누군가가 있어서 거기에 매달릴 수라도 있었으면 싶은 심경을 얘기하면서도 , 서로의 지난 일에 대해서 갈증을 느끼며 허덕이고 있었다 . 이 넓고 황량한 벌판에서 아무도 없을 줄 알던 나 , 이 병영 안에 나를 알아볼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에 나는 기뻤다 . 한동안 서로 얼싸 않고 , 잠시 뒤에 또 길길이 날뛰었다 . 나 혼자만의 절정에 달한 기쁨이란 것을 알게 된 것은 친구와 이야기하는 동안에 서서히 들어나고 마는데 , 나는 점점 상대적으로 고독해 지기 시작했다 . 친구는 자기의 일가친척을 들먹이며 누구는 어디 있고 누구는 어디서 무엇을 하며 우리 고향사람들이 그 회사에 많이 들어가서 먹고사는 데는 걱정이 없다며 너스레를 늘어놓았다 . 나는 이제까지 잠자던 외로움의 그늘이 점점 더 짙어졌다 . 이제까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평온하던 내 마음이 오히려 친구를 만남으로써 친구가 부러워지며 내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 수용소에서 고생한 것은 우리의 일상의 얘기에 지나지 않고 , 앞으로 있을 향배가 오히려 나를 짓눌렀다 . 친구는 울타리를 이미 처 놓은 것처럼 담담했다 . 이곳에서는 아무정보도 없던 나에 비해서 친구는 자기의 이웃 동네에 와있는 것처럼 태연했다 . 그래도 나는 백만 대군을 원군으로 얻은 것처럼 , 한편으로는 기뻤다 . 나야 물론 터전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하드래도 친구는 내게 무엇인가 매개수단을 풀어놓을 만도 하련만 그저 지나가는 얘기뿐이다 .
짧은 시간의 만남으로 우리는 이십 년이라는 긴 세월을 망각 속에 묻어놓고 각자의 부여받은 생리기관의 단순 활용을 위해서 살아온 꼴이다 . 우여곡절 끝에 내 스스로 오랜 시간을 갈증해소의 수단으로 , 동질의 대화상대로서 만나고 싶어서 백방으로 수소문해서 여기까지 오게 됐다 .
우리 누구보다 많은 얘깃거리를 갖고 있을 것 같다 . 그 폭도 어지간하게 넓은 것 같다 . 그래서 내가 아는 어떤 사람보다도 우리의 호흡이 맞을 뜻하다 . 정확히는 초등학교에서 육 년 , 중학교에서 일 년을 같이 지냈고 , 수용소에서 삼 년을 , 서로 모르는 철조망 안에서 지냈지만 생활은 같았으니 같은 대화 폭을 갖는다고 할 수 있는 친구다 . 내가 이제까지 친구를 찾지 않은 것은 온전히 내 입장이 그랬던 것이지 보고 싶고 얘기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
여기까지 생각한 동안의 발자국은 네 발자국을 넘지 않았다 . 이윽고 목이 제쳐 지도록 높은 , 문틀을 쳐다보며 방앗간에 들어섰다 . 바깥 공기와는 사뭇 다르게 써늘했다 . 조용하고 텅 비어있는 방앗간의 한구석의 의자에 앉은 두 노인에게 다가가서 친구의 이름을 대고 도움을 청하였다 . 그들도 무료한 오후를 졸고 있던 참에 다가온 외지인에 관심을 가졌다 . 나의 방문을 귀찮아하기보다는 외로운 섬에서 난파선을 보는 것과 같이 반기며 흔쾌하게 ,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 .
길가의 나지막한 불럭 위에 스레트 지붕을 인 네 칸짜리 ㄱ 자 집 마당 한 구석에는 어디서 구했는지 이 지역 산물이 아닌 것이 확연한 통나무 토막이 무릎을 이길 만큼 높게 가지런하게 쌓여 있다 . 필시 이것은 친구의 처가에서 지원한 비상용 땔감일 것이라는 인상을 받으면서 마당으로 들어섰다 .
신록의 오월임에도 마당은 풀포기 하나 없이 누런 진흙과 흙먼지뿐이다 . 그 위로 비스듬히 매어진 빨래줄 , 그 그림자가 길게 그어서 앞집 그늘에 이어져있다 . 죽은 나무 바지랑대가 이 빨래 줄을 떠 밭이고 있어서 그나마 이 집이 사람이 살고 있는 집임을 알 수 있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아주머니는 꼬마 아이를 건너 방에서 불러들여 들로 내보내며 한참을 기다리란다 . 부인은 기다리게 함이 미안한지 몇 번을 다져서 한참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 너무나 의외의 일에 당황해 하면서도 아무리 멀리 있어도 ,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허리를 자르지 않을 수 없다는 단호한 판단인 듯 , 기꺼이 남편의 들일을 중지시킨다 . 그렇지 않겠는가 . 왜 아니 기쁘겠는가 . 이 세상에 자기 남편을 찾아오는 먼 곳 손님을 보지 못했던 아주머닐 수도 있다 .
대 여섯 살 먹음직 한 아들을 들로 보내면서 무슨 얘기를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어린이가 뛰어가는 곳을 따라 나도 천천히 걸어서 방향을 잡아 가까이 가려 했다 . 이렇게도 시간이 길 수가 있단 말인가 . 얼마동안을 한길에서 기다리던 나는 조바심을 이기지 못하고 고개 길 산마루에 올랐다. 멀리 서쪽에 바다로 이어지는 푸른 들판을 내려다보며 지난 어린 시절을 상기했다 . 잠시 후면 내 앞에 나타날 내 친구 , 내 동무와의 만남에 앞서서 옛 기억을 더듬어본다 .
‘ 금란 ’ 의 초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인근 '인민학교' 대항 축구경기를 구경할 겸 , 우리학교의 출전 팀 응원도 할 겸 , 일요일 아침 일찍이 모여 금란까지 걸어서 가기로 했다 .
가는 길 위에서 일어난 일이였다 . 이름을 낯 낯이 기억 할 수는 없지만 유독 이 친구와 지금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알 수 없는 다른 친구만은 또렷이 떠오른다 . 내 그때의 생각이 지금껏 이 친구를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하는 , 그런 기발한 생각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
이 친구는 우리 일행이 모여 떠나기로 한 우리학교의 바로 옆에 살고 있으면서도 제시간에 대지 못하고 우리를 출발시키고 말았다 . 먼데 있는 것도 아니고 코앞에 있으면서 제시간에 오지 않음은 필시 의사가 없거나 변고가 있어서일 것이라는 우리들의 의견이 모아지면서 우리는 곧 출발했다 . 큰 다리를 건너고 효자문을 지나서 열녀문도 지나고 언덕 위에 펼쳐진 벌판에 들어설 무렵에 헐레벌떡 따라온 친구가 바로 ‘ 뚱보 ’ 였다 . 이 친구는 우리모양과는 다르게 생겼다 . 그때의 또래와 다르게 우량아 기질을 타고 난 듯 실하고 통통해서 우리들의 부러움을 샀다 .
나는 유난히 마른 형이라 이 친구에게 살찌는 비결을 물어본 적이 있다 . 이 친구가 말하기를 매일 아침에 깨어서 바로 냉수를 한 그릇 마신다는 것인데, 그렇게 해서 살이 찌는 것인지는 몰라도 남다르게 먹는 것은 그것 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 그 말을 듣고 그 다음 날부터 실행하려고 마음은 먹었지만 이룰 수 없었다 . 물 마시는 것을 잊어버리기가 일수이고 , 그 전날 물을 킬만한 일을 하지 않아서인지 몰라도 그 무렵의 내 식성은 물을 멀리하고 있었던 탓도 있을 성싶다 .
이 친구가 미안한지 너스레를 떠는데 , 그 너스레보다도 웃겼던 것은 이 친구가 걸으면서 내는 피리소리다 . 그것도 가죽피리 소리다 . 그런데 그 소리가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친구가 걷는 발걸음에 맞추어서 여려 번 , 아마 수십 번은 족히 소리 냈을 것이다 . 그 소리는 우리를 딸아 붙이려는 친구의 발걸음의 빠르고 느린 걸음에 따라서 소리도 다르게 울렸다 . 아마도 밀착된 피부의 파열상태가 소리를 다르게 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지금에 와서 해보는 것이다 . 이 친구가 소화력이 대단해서 대식을 하는지는 몰라도 물을 많이 마신다는 것이 음식의 량과 관계되어 있을 뜻도 하다 . 우리는 시간 내에 금란 이라는 곳의 초등학교에 당도해야 하지만 이런 걸음으로는 맞추어 댈 것 같지 않다는 판단도 있어서였든지 이 친구의 가죽피리 소리에 한바탕 웃으며 걷기는 했어도 퍼져 앉아서 노닥거리지는 않았다 .
이날의 경기는 일찌감치 예선에서 탈락하고 그 후 우리의 거취는 기억되지 않는다 . 이 친구와 있었던 이날의 일대 사건을 기억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 연달아 나는 방귀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던 내가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
멀리서 들리는 경운기소리가 바닷가에서 나는 작은 어선의 소리와 같았다 . 바다를 낀 넓은 호수인 ‘ 남양만 ’ 의 한 귀퉁이를 이루는데도 이 들판은 우리 전 국토에 펼쳐진 들판같이 넓게 보였다 . 지금 이 시간은 한창 일할 시간이므로 경운기 소리가 날 수가 없는데도 외롭게 멀리서 들리는 경운기 소리가 이 친구의 헐떡이며 달려오는 숨소리인 것을 내가 알 까닭이 이었으랴 . 다시 눈을 감고 친구의 옛일을 더듬는다 .
소 당번을 할 때 풀 뜯으러 ‘ 강터고개 ’ 를 넘어서 소나무 밭을 헤매든 일이며 운동시간에 철봉의 배지기돌기를 못하는 뚱보의 모습이 일시에 내 눈앞에 그려지고 지워진다 . 점점 가까이 들리는 경운기는 고개를 넘어서 이쪽으로 오더니 친구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 그러자 나도 일어서고 , 이윽고 어린이가 달려 왔다 . 산 아래로 단숨에 달려갔고 해후의 순간을 맞았다 .
친구는 경운기를 한쪽 구석에 세우자마자 내게로 달려오고 둘은 껴않았다 . 옛날 춘천에서 보았던 친구는 온데간데없고 늙은이가 앞에 섰으니 기가 막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정작 친구의 부인이었다 . ‘ 아유 우리주인은 이렇게 늙은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 적이 미안해서 조아리는 아주머니의 얼굴은 정말로 대조되는 두 친구의 얼굴을 번갈아 보면서 저녁준비를 하려든다 . 그러나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온 나의 실례를 이유삼아서 적극 만류하고 입은 채로 마루에 걸터앉아서 서로의 주소와 전화번호부터 주고받은 다음 친구내외와 그의 아들 딸 셋이 한자리에 모여서 급한 대로 사진 한 장을 찍어놓고 한숨을 돌리며 서서히 얘기보따리를 끌러놓을 참 , 나는 그때서야 엉덩이를 방바닥에 붙였다 .
얼마나 고독했으면 , 얼마나 말이 막혔으면 이렇게 행동을 거꾸로 하기까지 하지 않으면 두 번 다시 못 만날 것 같은 두려움조차 들었겠는가 . 나는 새 한 마리를 잡아놓고 이 새를 관조하는 동안에 훌쩍 날아가 버릴까봐 새 장안에 , 새장이 마련되지 않았으니 자루 안에라도 가두고 나서 보자는 심보 같은 행동을 하고 말았다 . 다시는 날려 보내고 싶지 않은 새였다 .
해 걸음에 굳은 악수를 나누고 다시 차에 오른 내 마음은 한껏 기뻤다 . 내가 입을 벌릴 수 있는 말벗이 생겼고 우리의 고향을 얘기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친구가 있다 . 외로움을 물리칠 원군을 얻은 것처럼 가벼운 마음이었다 . 집집에 양지는 한 뼘도 없이 그늘로 이어지고 맞붙어있다 . 동네를 빠져나온 나는 차를 세우고 뒤돌아본다 . 내 뒤 그림자는 길게 길 한복판을 가로지르고 , 숲 속으로 숨었다 . 멀리 수원 평야가 바다처럼 수평을 이루고 붉은 저녁노을이 서해 바다를 불태우고 있었다 . 떨어지는 저녁 해가 붉은 구름과 노란 구름을 머리에 쓰고 실 같은 눈을 지그시 감는다 .
그는 날아갈 수 없는 , 끈에 매여진 새가되어서 아직 그 터전을 맴돌면서 오 남매를 시집 장가보내고 환갑잔치까지 했다 . 동네사람들을 몽땅 불러서 , 한풀이하듯이 잔치를 벌였다 . 사진에 찍혔든 어린이가 자라서 친구를 업고서 빙빙 도는 잔칫날의 정경이 세월을 짐작하게 했을 뿐이다 .
친구의 환갑잔치 날 , 나는 그 날까지 내 나이를 잊고 있었다 . 그를 통해서 대리나이를 셈하고 있었다 . 내가 관객으로서 객석에서 홀로 중심에 서있고 친구와 그 가족이 무대에서 인생의 역정을 연출하는 무대다 . 이 무대 위에 잠시 오르긴 했어도 한 번도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출연하지 못했으니 나는 아직 분장도 해보지 못한 관객의 수준에서 그를 비교할 수는 없는 것이다 . 친구의 부인이 보는 나는 아직 철부지 애 머슴에 다름 아닌 풋것이라는 생각을 아울러 했을 것이다 .
친구는 나름의 갈 길을 일찌감치 정해놓고 열심히 일하며 옆 돌아보지 않았다 . 친구는 대대로 이어 받은 탁월하고 장대한 체력을 밑천으로 일로 매진하여 오늘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 나는 이제야 그가 어렸을 때에 건장한 체격과 우렁찬 항문 파열음을 연속적으로 냈던 역량을 이해하게 된다 .
그의 인고를 이마에 선명하게 파서 그리며 자신 있게 새기고 당당히 들어내는 친구의 행적을 어느 누가 감탄하지 않겠는가 ? 그는 평생 무엇이 나을까 ? 어떻게 하면 편할까 ? 생각해보지 않고 이 길이 천직이요 , 내가 갈 길이 이길 뿐이라는 확고한 목표와 신념을 잃지 않고 하루같이 살았을 것이다 .
친구에게 여생의 보람이 가득 차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