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리 길을 걸어서 오가거나 기차로 통학하는 어촌, '두백' 친구로부터 여름방학 무렵 방게잡이 정보가 입수됐다.
농촌에서 흔히 쓰이는 씨앗 그릇 싸리나무로 엮어서 주둥이를 좁게 만든 작은 그릇 즉 작은 다래끼하고 된장을 담은 찬그릇에 뚜껑만 덮으면 된다는 말만 듣고, 어느 날 우리는 각자의 정보 분석과 그 느낌에 따라 나름대로 준비하여 집을 나서 신작로를 따라서 오리 남짓한 거리를 걸었다.
바닷물과 하늘이 맞닿은 수평선은 유난히 또렷하다. 하늘이 바다와 닿은 곳은 연한 잿빛이다. 눈 앞에 펼쳐진 하늘과 바다의 색은 양쪽이 시계(視界)를 벗어, 갈수록 그 색이 연하여 보이다가 끝은 하늘과 바다가 이어져서 어디가 바다고 어디가 하늘인지를 가릴 수 없다.
넓은 하늘 가슴속으로 다가온다. 넓고 길게 이어진 모래밭, 쏟아내는 햇빛을 받아 실오라기 같은 물결이 해안선을 따라 겹으로 이어져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한다. 바다는 태양을 반겨 반짝이고, 멀리 바닷가로 튀어나와 이어진 산등성이의 푸른 소나무는 우리를 손짓한다.
우리가 갈 곳은 저 소나무를 업은 산 등허리 아래 바다로 가라앉은 바위 틈새다. 모래밭이 끝나며 새까만 조약돌이 모래 자리를 메워 한참을 이어지다가 바위가 눈앞에 다가오고, 들리는 바닷물결 소리도 모래밭에서 뒤집히는 물소리와 완연히 다르게 구른다.
밀려나는 물결에 조약돌 구르는 소리, 뭉게뭉게 모여 있는 자갈 크기에 따라 그 소리 또한 다르다. 바위틈을 채워서 오르내리는 물소리는 훨씬 둔하고 조용하다. 기다란 해안의 현(絃)을 켜는 물결이 짧게 길게 이어지고, 산등성의 푸른 소나무만이 이 갖가지 현에서 나는 합주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만 방게의 노랫소리를 듣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방게의 노랫소리 또한 물밑에 잠겨서 들리질 않는다.
된장을 담은 찬그릇을 다래끼에 넣은 채로 바위가 있는 물속에 푹 잠기게 넣고 있으면 된다.
아무리 쉬워도 드릴만큼 들여야 하는, 공이 있어야 함은 세상의 모든 이치가 같은 것, 다래끼가 물속에서 물결에 넘어지거나 뒤집히지 않도록 하는 일인데 이게 쉽지 않다.
예비 지식이 없는 우리는 모두 난감했다. 끈이 있어 묶을 것인가, 납덩이가 있어 누를 것인가. 하는 수없이 먼 곳까지 가서 자갈을 다래끼에 담아서 들고 오긴 했는데, 방게가 들어갈 자리에 방게만 한 조약돌이 가득 들어 있으니 아무리 착한 방게인들 들어갈 자리가 있어야 들어가지 않겠는가!
보나 마나 오늘, 이 다래끼에 들어가 있을 방게는 틀림없이 크고 힘이 세서 다른 방게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입성한 방게 중 방게일 것을 생각하니 기분은 좋으면서도 많이 잡아야 밤게잡이 원정 온 보람이 있을 터인데.
이왕이면 털 없는 게 중의 ‘왕게’인 '자게'거나 하다못해 '백(꽃)게'라도 한 마리 들어 있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까지 해 본다.
이러는 사이에 우리는 다시 제자리에 돌아와서 각자 자기 어장(漁場)을 확보하고 '정치망(定置網)?'을 내렸다. 다래끼를 흔들어 보고 움직이지 않는 것을 확인한 다음 환성을 지르며 민물이 합쳐지는 바닷가까지를 백사장을 따라 발자국을 남겼다.
이 발자국이 더러는 지워지고 더러는 그대로 남는, 물을 밟고 달렸다. 도시락 보자기는 허리춤을 잡고 발자국 남기기에 장단 맞추어 춤을 춘다. 모래밭과 자갈밭이 따로 있으면서도 그 경계가 사람이 만들어 놓은 듯 확연히 구분되고, 그러면서도 이어지는, 바다와 민물이 어우르는 곳, 하늘이 내린 놀이터이자 바다가 가꾼 쉼터이고 시냇물이 씻어 깔아놓은 융단이다.
바닷물과 민물을 오가며 우리들의 살결에 여름을 물들였다. 배가 출출할 때까지 하늘을 호흡하고 바다를 마시며 개울에 몸을 씻었다. 도시락을 말끔히 비우고도 물놀이는 계속되었다.
작은 다래끼는 방게로 가득하여 그대로 들어 올리면 되었으나 이번에는 자갯돌을 함께 메고 가야 하는 고역이 뒤따랐다.
모래밭까지를 모두 무겁게 걸어갔고, 이대로는 무거워서 집까지를 갈 수 없음을 아는 우리는 한바탕 놀이를 꾀한다.
넓은 백사장에 각자의 영토를, 같은 크기로 서로 붙여서 금을 그은 다음 그곳에 각자의 다래끼에 있는 밤게와 자갯돌을 쏟고 방게만 주워 담는데, 자기 땅을 넘어서 다른 곳으로 가면 그 애 것임을 서로 다짐한 뒤 구호와 함께 쏟았다.
방게 놀이다. 그러나 내 꾀는 완전히 빗나갔다. 굳은 모래 위에서만 가능한 놀이다. 푹푹 빠지고 미끄러지는 마른 모래 위에서는 우리들의 손놀림에 뒤지는 방게의 이동이기 때문이다. 각자 자기 것이 자기 몫이 됐다.
방게의 몸집이 너무 작아서 내가 먹을 게 없는 것을 안타까이 여긴 어머니는 나의 방게잡이 날 며칠이 지나서, 동네 어머니들과 저녁 무렵에 횃불을 장만하여 '백게'를 한 소쿠리를 잡아 오셨다.
어머니의 손은 '백게'의 집게발에 집혀서 벌겋게 피가 맺혀 있었다. 이후 나는 먹을 것 탐내는 어떤 짓도 어머니가 알까 봐 일부러 피했다. 그 식탐 버릇은 이순이 다 되었건만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