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

외통인생 2008. 6. 2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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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1.010217 주일학교

그냥 좋아서 나가게 된 동네 예배당은 집안 할아버지의 삶의 장이고 거기가 바로 할아버지 댁이 사는 목적 자체였다. 삼 형제를 두신 할머니는 막내아들의 ‘마마’ 병 앓을 때 백방의 약을 쓰고 가까운 동네는 말할 나위 없고 군내 온 동네를, 마다하지 않고 업고 다녔으나 차도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원산’에 있는 기독병원을 찾으셨다. 거기서 정성을 다하여서 치료한 결과 생명은 건지게 되었다. 이에 할머니는 감화받았으며 막내를 건진 능력을 믿고 온 집안을 기독교 집안으로 일구는데 헌신하셨으니, 불모지의 우리 동네에 맨 처음 예배당 종소리를 울리는, 여자로서는 힘든 선교의 길에 나섰다.

우선 살던 집을 팔고 윗동네의 제방 뚝 밑에 있는 큰집을 장만하여 그곳에 임시 예배당을 만들고서 텃밭에다가 나무 종대를 세워서 ‘원산’에서 사 온 종을 달고 울리기 시작했다.

우리 마을 그리스도교의 효시가 됐다. 신자라야 할머니네 집안 식구가 전부였지만 그래도 조금도 위축됨이 없이 종을 울리고 또 울렸다. 신자가 늘었음이 분명한 것은 예배당을 우리 동네의 한가운데로 옮기는 것으로 보아서 알 수 있었다.

좋은 집 자리의 자그마한 집을 사서 터를 장만했다. 그 집은 게딱지만 했으나 터는 앞뒤 마당과 텃밭을 넓게 끼고 앉은 집이었다. 옛날에 큰물 질 때 물이 넘쳐 흙이 떠내려가면서 낮아져 그만 길로 변해버린 곳의 옆이라 큰물이 질까, 보아 큰 집 짓기를 꺼리던 터였는데, 집 지을 자리가 아니니 서로 편안하게 팔고 사고, 했던 것 같다.

내가 무엇을 알까마는, 이것저것 꿰맞추어 보면 맞는 것 같아서 제법 우리 동네의 내력을 아는 것 같이 됐지만 그렇지 않다. 단지 이런 것들을 아무도 내게 들려주지 않았고 특별히 배우는 길이 없었으니, 이제라도 파서 시원하게 알고 넘어가고 싶어서 몸부림칠 뿐이다. 그래서 내가 이런 추리를 하는 것이 이 마당에 적절치는 않지만 속은 후련하다.

한 도막 갈대밭을 파헤치고 네모반듯한 터의 가운데 기둥이 없이 한방으로 꾸며진 학교 같은 집이다. 이 집의 대들보는 당시에 대유행인 짜 맞춤의 대들보를 기둥에 올려서 이를 가로지기 이어서 넓혀나가는 조형미 없이 지극히 기능만을 우선한 학교식 건축 구조다.

그런대로 비바람 눈보라는 막게 됐으나 넓은 방, 아마도 교실 한 칸은 족히 될 만한 너비의 방에 마루가 깔렸으니, 여름에야 그런대로 견딜 수 있으나 겨울에는 발을 이고 있어야 할 판이다. 난로는 있되 예배가 끝나야 겨우 방 안이 더워질 판이다. 그러하지만 이만하면 어딜 가도 빠지지 않는 시설인걸, 장한 우리 작은집 할머니의 쾌거다.

전통적 집안에서 일탈하여 독자의 영역을 개척하는, 작은댁 모진 할머니의 성화에 감화돼서, 학교에 들어가기 전 ‘주일(週日)학교’를 이 예배당에서 개설했을 때 아무 믿음도, 조그마한 상식도 없던 내가 이 ‘주일학교’에서 느끼고 익힌 노래가 씨앗이 돼서, 후일 나의 관심을 영(靈)의 세계로 두게 했다.

줄곧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면, 그것은 예수를 믿으면 일가친척과 멀어지는 것인지를 풀 길이 없어서 아쉬움이 적지 않았다.

좋으신 작은댁 할머니와 저에게는 먼 척 할아버지 되시는 삼 형제의 아들들은 한결 친절하고 포용적이지만 제사나 시제나 조상 모시는 일에 있어서만은 늘 한발 물러나서 뒷짐을 지신다.

살아있는 이들과는 교감하되 돌아가신 이들과는 일체를 멀리하는 작은집 식구들과의 매개 역할을 내가 해보고자, 거창하게 그렇게는 될 수 없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곳에 뛰어들어 알아내, 우리 집안과 그 집안의 다른 점을 알고 싶었을 게다.

그러나 이것은 커다란 강물 속에 뛰어들어서 흘러가며 그 강폭을 재려고 하는 것과 같았다. 나의 어린 소견이 미치지 못함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일주일에 한 시간씩 흥미 위주의 노래와 찬송가와 성경 말씀을 듣는 것으로는 수박 겉핥기와 같았다. 그것도 한철로 끝났으니 겨우 지금 기억되는 것은 ‘주일학교’라는 이름과 중국어로 부르는 첫마디의 ‘예수 사랑하심은 (예수 와이와이 와이쓰도 밍밍씅씅 민밍고...)...’이 세상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따름이라는 것뿐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 이 세상의 끝에서 막 사랑의 외마디를 수없이 외고 예수의 죽음을 나의 죽음과 어떻게 끈 달아 볼 수 없을까 하고 기웃거리다가 마침내 셀 수없이 많은 순교자의 발자취, 이 땅에서 참된 사랑의 실천을 위해 영혼을 불사른 사도의 본을 보이며 이 세상을 먼저 잠깐 살다 가신 영혼의 그림자를 뒤따라가며 길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쏟는다.



제사를 지내던 우리 할머니와 부모님의 소식은 이제까지 내 마음속에 시간을 정지시켜 놓고 있건만 예배당을 지으신 우리 작은 집 할아버지 두 분은 시간에 올라앉아 시간과 더불어 영겁의 세계로 이미 떠나셨으니 두 집안의 일이 내가 알고 있고 모르고 있는 차이로 이 세상을 떠났기도 하고 아직 머물러 있기도 하니, 모두가 내 머릿속에 있는 것 같아서, 내가 우주이고 내가 세상 중심인 것 같아서 또 길 잃으려고 헤매다 돌아온다./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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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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