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4.001225 아주까리 동네
증산增産의 단말마는 마을을 아주까리 동네로 만들었다.
아주까리가 어떤 용도에 닿는지 모르지만 어린이들을 풀어서 빈터란 빈터는 한 뼘도 남김없이 모조리 아주까리로 뒤덮도록 했다.
집 앞마당은 사람이 걸어들어 갈 수 있는 발 디딤 자리만 남기고 모조리 아주까리를 심게 하고 아낙네들만 들락거리는 뒤란에도, 담 밑에도, 한 길가도, 철길 둑에도, 밭둑에도, 학교운동장에도, 산기슭에도, 잠자는 자리와 걸어 다니는 발길을 제외하고는 모두 아주까리를 심도록 우리네를 졸랐다. 그렇게 되니 보이는 것은 아주까리요 말하는 것은 몇 되를 땄느냐다. 하면서 어디에 빈 땅이 있느냐고 눈치만 서로 본다.
가히 아주까리 홍수다. 아주까리기름과 동백기름에 얽힌 우리네의 많은 사연들은 멀리 사라지고, 한 여름에 아주까리 잎으로 모자나 만들어 쓰고 아주까리대로 물놀이의 대롱이나 만들어 노는, 우리들의 놀이감은 풍요(?)했다.
아무도 지금 이 아주까리를 가지고 시비하는 이는 없을 성싶다. 그러나 나는 한마디 하고 싶다. 내 나이 먹으리만큼 먹었으니 이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 텐데 과문한 탓인지 아직 알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원통하다. 지났어도 알고 싶다.
아주까리 호롱불이 남포 불로 바뀌고 봉숭아꽃 자리에 아주까리 그늘 지워 아주까리 열매로 봉숭아 씨 외면하네. 먼 길 가는 이의 우장 갖출 필요 없이 아주까리 길 따라 성큼성큼 가노라면 볕 쪼여 걱정 없고 비 와도 걱정 없네. 고깔모자 되었다가 딸기 따 받아온들 지천인 아주까리 뉘 뭐라 할 것인가 '응애'. 아주까리 씨 왜 이리 닮았는고.
'응애'는 소의 피부에 붙어서 피를 빨아먹는 기생충인데 실컷 피를 빨아먹고 제무게를 못이겨서 땅에 떨어진다. '응애'를 닮은 인간은 없는 것인가? 생각이 미친다.
우리네 삶은 시대에 따라서, 사적(史的)조류(潮流)에 따라서 수없이 이지러지고 할퀴어 왔다. 순박하기만 한 이들이 이토록 끈질기게 살아남는 것도 아주까리 호롱불을 그대로 이어가는 느긋함 때문인데, 이를 못 마땅히 여기는 그들이 오히려 한 치의 땅도 남김없이 아주까리로써 덮었으니 그 것이 넘쳐나 ‘응애’가 되었다.
아주까리가 ‘응애’로 변하면서 떨어져서, 바다 건너 갔나보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