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 때에 교육받은 사람치고 ‘교육칙어(敎育勅語)’라는 일왕의 포고문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칙어’의 주입교육은 전쟁이 임박할수록, 패망이 가까워질수록 심해지면서 거의 단말마처럼 우리를 괴롭혔다.
못 외우는 어린이는 벌을 받아야 하고 집에 가서도 안절부절못하도록, 꽁꽁 묶어서 딴생각 못 하도록 얽어맸다. 이것이 교육받는 어린이에게 무엇을 말하는지 무슨 요구를 하는지를 기억하지는 못하나 대체로 교육자가 할 일, 방향, 덕목을 말했을 것이고 교육을 받아야 할 어린이에게는 지켜야 할 수칙과 받들어야 할 대상을 적어 넣지 않았나 한다.
그런데 이 종이 한 장을 신격화해서, 이것을 아무나 읽을 수도 없도록 했다. 반드시 교장선생이 읽되 읽을 때는 연미복처럼 된 예복을 갖추어 입고, 흰 장갑을 낀 손으로만 만지고, 들고 다닐 때는 반드시 눈보다 위로 올려서 넘보지 못하게 하고, 읽을 때는 모두가 고개를 숙여야 하는, 그야말로 신의 위격(位格)을 가진 종잇장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게 사람의 마음속에 담겼으니 그 속에 무엇이 들었든 상관하지 않고 사람의 마음이 무엇을 담았느냐가 문제이니 논외로 하자. 그 담는 주체인 어린이는 낯선 상자와 그 속에 담긴 종이와 칠한 먹이 그 색상과 형상을 눈으로 보는 만큼의 영상으로밖에 비치지 않고, 보이는 만큼 그렇게 받아들인다.
해서 ‘칙어’를 읽을 동안에도 저학년 어린이는 신고 있는 신코로 땅바닥에다가 메뚜기 자치기 놀이의 메뚜기 놀 자리를 판다. 나무랄 일이 아니련만 그들은 중죄인 취급을 하고 제적 운운하는 지경까지 몰고 가며 법석이다. 고학년의 경우는 이를 암기력 측정의 도구로 삼고, 이것이 어린이들의 활동 발달 서열을 가늠하는 구실로 변한다. 이런저런 구실을 붙여서 되건 안 되건 머릿속에 쑤셔 넣도록 강요하는 것은 그들의 정책 일환임을 엿보게 한다.
세태가 많이 바뀌긴 했어도 아직 우리의 교육환경이 이런 법주에서 멀리 떠나질 못했다. 국민교육헌장이 이 칙어를 닮았고, 우리의 학제나 공부하는 기간의 편제가 그러하다. 요새같이 시설이 좋은 때, 겨울철에, 밖에 나갈 수 없을 때, 교실에서 오래오래 공부하고 만물이 약동하는 여름철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그들이 자연과 더불어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도록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행정 일변도로 달력에 맞춘 예산집행과 편의적인 정책은 문외한 내가 봐도 시정되어야 할 일대 혁명적 과제이다.
다행인 것은, 이즈음은 국민교육헌장이 없어졌다는 것이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