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1.001211 소사(고쓰까이)
자욱한 먼지를 일으키는 시골학교의 쉬는 시간의 운동장 정경은 그 시대의 희망을 상징하는 표징이요 용소(龍沼)의 일렁임이다.
우리가 자라든 그때에도 학교는 살아 숨 쉬는 우리 모두의 즐거움이고 희망의 터전이었다.
나지막한 목조건물의 유리가 달린 미닫이 출입문응 열리고 있다. 애티 나는 젊은이가 넓은 교정을 향해 서서 왼쪽 구석에서 오른쪽 구석까지 단숨에 훑어보고 드리운 종 끈을 잡는다.
왼손엔 한 권의 책이 쥐어졌고 오른손으로 잡은 종 줄은 왼 쪽으로 비스듬히 팽팽히 당겨지면서 종 머리가 흔들렸다.
시작종은 되도록 세차게 친다. 땡 땡 땡 땡 네 개가 연달아 울리고 한자리를 쉬고 또 네 자리를 연달아 치면서 반복된다.
썰물처럼 밀려간 학생들, 뛰놀던 마당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종 끈만 미동할 뿐이다. 온 세상이 일시에 정지된 듯이, 운동장은 텅 비어있다. '면소'를 뒤덮은 무성한 플라타너스 나무 위에서 짹짹이는 참새소리만이 뿌연 먼지를 가라앉히며 퍼져나간다.
창문으로 비치는 교무실도 텅 비어있다. 그는 컵이 담긴 쟁반을 들고 한 구석에서 넓은 교무실의 다른 구석으로 가로지른다.
'소사' 하나만 남은 교무실은 여전히 적막에 가깝다. 그는 양손으로 들었던 쟁반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기 시작한다. 도대체 무슨 책을 읽을까. 그는 이 고장에서 나고 이 학교를 졸업했음에도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학교를 못 잊어서, 학교에서 무엇인가를 얻어 보려고, 눌러앉은 아이였다.
보통의 아이들은 집에서 농사를 돕거나 공장으로 갔을 텐데 이렇게 눌러앉아서 무엇을 바라는지 아는 이는 오직 그의 부모뿐이다. 그 무렵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시골의 영세민은 그 고장의 몇 안 되는 기관의 '소사(給仕)'로 있으면서 책을 구해 보며 눈을 뜨고 귀를 열어 그들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 발판을 딛고 도약하는 것이 그래도 기회를 타고 운을 연 사람들의 발걸음이다.
'소사', 머슴이나 다름없는 일인데도 글을 바라보고 머리를 쓰는 일이라는, 그들 숙원의 대망을 이런 방법으로 이룩하려든다. 이제까지 바라볼 수 없던 길을 찾기라도 한 듯 눈을 크게 뜨고 묵묵히 순종하는 것이다. 그 이름이, 그 대명사가 무슨 이유로 그의 진짜이름을 훼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해서 그는 장래의 소망을 이루고, 다시 이 교무실을 찾을 꿈을 오늘도 꾸고 내일도 꿀 것이다.
'소사'여 힘을 내시라, 그리고 분발하시라, 그러면 기어이 그대가 안고 있는 가슴속 빈 그릇이 채워지리라. 오직 땅만 바라보고 살아온 그의 조상들이 이렇게 해서라도 그들의 한을 풀어야 하는 것이기에 기운이 서리고 맺혀서 그의 오늘을 지탱하는 것이다.
그분은 먼 촌 일가할아버지뻘이시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