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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繡)와 수(壽)

1684.010120 수(繡)와 수(壽)

아무것도 모르는 내 귀에 누나의 입을 통해서 들려오는 소리엔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말이 수두룩했고 그 중에서도 ‘데이신따이’ 와 ‘센닌바리’라는 말을 자주 듣곤 했다.

 

나하고 상관없는 일이지만 자주 듣다보니 전후 말을 이어서 그 의미를 풀어 알 수 있게 됐다. ‘데이신따이’ 는 ‘따이’ 자가 붙었으니 무엇을 하는 부대 인 것 같고, 군인과 더불어서 의료행위나 후방지원병의 구실을 하는 것이구나 하는 것쯤으로 알게 됐다. 집안의 반대로 누나는 생각도 못하고 좌절하고 만다.

당시의 젊은이가 이 부대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았으면 오늘의 비극은 탄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무튼 어린 내가 ‘데이신따이’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누나가 있으므로 해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젊은이를 희생시키는 이유는 그들 특유의 끓는 피가 의협심이나 정의감에 고무되기 쉽고 그들을 선동하여 나라를 이어가는 간두의 위치를 고수하게 하는, 기성인의 계산이 늘 깔려서 곧잘 젊은이가 꽃을 피우지 못하고 봉오리 채 꺾이며 산화하는 것이다.

 

교묘한 술책으로 우리의 젊은이들을 희생시킨 그 죄를 감당할 사람들은 이미 이세상사람이 아니다.

 

누나의 판단은 현명했다. 그러나 많은 젊은 여성이 상처를 안고 평생을 한으로 살아가는 이를 생각하면 당시의 시대를 살든 우리나라의 모든 이가 함께 겪어야할 아픔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 상황에서 누가 당해도 그만한 상처는 입을 수밖에 없던 상황이다. 언제나 역사적 상황은 그 시대를 산 모든 사람이 함께 대립과 모순과 파열을 거듭하면서 역사를 이어 갔기 때문이다.

 

공(功)이란 무엇인가. 그 공을 이룩하게 하는 역작용을 순 기능화 시켰다는 그 자체가 공이다. 그 순기능은 반대편에서 보면 역기능적 요소임을 안다. 즉 사물은 언제나 순과 역, 작용과 반작용이다.

 

유와 무, 음과 양 등 수없이 많은 양극의 조화로 지탱됨을 알 때 우리들의 가치기준이 새로워질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은 늘 생각하는 그 시점을 기준으로 해서 판단하고 정의하는 버릇이 있다. 버릇이 아니라 문화를 향유 독점하는 쪽의 입장에서 기술하고 정의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늘에 묻혀서 있던 다른 한쪽 즉 대응되는 구성 집단은 반드시 양지쪽에서 햇빛을 보는 집단으로부터 추앙되고 기려야할 절대적인 권리를 얻어야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현세는 그렇지 못하고 미적미적 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옆을 돌아볼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할 장(章)이다. 왜냐하면 후세대가 아무리 뇌까린들 그 시대의 장(場)에 끼어 들 수 없기 때문이다. 살아서 숨쉬는, 행동하는 반응이라야 옳기 때문이다.

 

수를 한 땀 한 땀 놓아서 베개 양 머리에 목숨수자를 새기거나 꽃을 그리는 우리의 전통인 수놓기가 전쟁의 선동수단으로, 후방의 독전督戰 수단으로 이용됨을 이때에 보았다.

 

동네에서 일가의 오빠가 군대에 나가는데 동네의 여자들이 저마다 수틀을 돌려가며 ‘무운장구(武運長久)’를 새긴다.

 

이 글자를 새긴 어깨띠를 띠고 전장에 나가면 죽지 않고 산다는 생각으로 천명의 여자가 같은 수틀로 같은 바늘을 만져 수를 놓아서 군에 나가는 청년의 어깨에 띠어준다는 것인데, 여기에도 누나는 빠지지 않고 끼었다.

 

활동적인 누나는 매사에 적극적이기도 했지만 동네의 모든 이가 무운(武運)을 비는 마당에서야 오죽하랴. 아예 들고 다니면서 집 돌이 하는 것이다.

 

일가의 오빠니까 그랬으리라고 생각하지만 그 바늘이 천 번 아니라 억 만 번을 들고난 수(繡)라 할지라도 그것이 총알을 막을 수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도 믿고 행하는 우리의 심성이 착했거나 아니면 다급했거나 둘 중의 하나다.

 

용감히 싸울 수 있는 심리적 안정의 구실은 할런지 모를 일이다. 또 후방의 우리들의 두려운 마음을 달래는 구실도 했으리라.

 

이들이 반드시 금의환향해야 옳았을 것을, 그렇지 못하고 야밤 탈출 잠입이나 불귀의 몸으로 되거나 했으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생각해본다.

 

바늘을 쥐고 글자를 새기면서 저마다 생각하는 바는 달랐겠지만 여인들의 가슴엔 하나같이 내 일, 내 집안일이 아니길 바랐을 것이고, 혹 생각한다 해도 이일이 언제 내 아들 내 남편 우리오빠 우리 동생의 것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한 마음에 이를 피하는, 기피의 마음도 담았을 것을 생각하면 이 글귀는 무운장구 이지만 뜻은 영구기피(永久忌避)의 혼이 담겼을 것이다.

 

넓은 들판에 갈꽃이 눈처럼 피어있지만, 그 갈꽃은 동풍이 불면 서로, 서풍이 불면 동으로 고개 숙이는데, 남과 북 동과 서에서 부는 바람결을 외면만할 수 없지 않겠는가.

 

해서 오늘도 고개 숙이고 내일도 고개 숙이고, 숙이는 족, 갈 때의 신세를 언제 면할 것인지 그 수놓는 바늘이 우리들 가슴을 찔러서 꿰뚫는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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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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