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1.010113 글과 셈
지금도 그 때 생각을 하면 입이 헤벌어지는 웃음이 절로 나면서 지나가는 아무라도 붙잡아 놓고 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한바탕 웃고 싶어진다. 해방은 맞았는데, 갑작스런 일이라 아무도 준비 없는 수업이 이루어지면서 잡담과 공차기로 태반의 시간을 때우던 한 때가 있었다.
충격 속에서 정신없는 며칠이 지났다. 어색한 우리말은 반웃음으로 교실을 채웠고 어수선하나마 그런 대로 얼버무려 가는데, 글이 없으니 참다못한 선생은 흑판에다 ㄱ,ㄴ,ㄷ,…열 넉 자의 자음과 ㅏ,ㅑ,ㅓ,ㅕ,…열자의 모음을 적어주며 이를 각각 조합하면 우리말이 되니 이를 익힌 다음에 받침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 날의 숙제다. 열 번을 쓰기로 했다. 그 날 저녁 내내 공책의 가로 위엔 자음을, 세로 옆엔 모음을 적고 칸을 메워나갔다. 열 장을 거뜬히 해치운 너눈 우리글은 어려운 게 아니고, 무척 쉽다고 여겼다. 일 학년 일 학기 때에 그림으로 몇 시간을 배우긴 했어도 그냥 그림보고 이름 맞추기 정도였다. 해서 내 한글 쓰기는 이번이 처음인 셈이다.
잔뜩 쓴 공책을 검사하는 선생님의 눈길도 스쳐지나갔겠다. 이대로 계속해서 쓰기 시작하고 받침도 붙여나갔다. 며칠 뒤 옆에 앉은 짝의 공책에 쓴 ‘고’자와 ‘교’자가 이상하게 쓰였기에 따졌다. 왜 ‘ㄱㅗ’나 ‘ㄱㅛ’가되지 ‘고’나 ‘교’가 되느냐이다.
즉 ㄱ 은 내리 긋는 것이 아니라 왼쪽 옆으로 삐치도록 돼있으니 ㅗ 나 ㅛ 가 삐친 부분을 뚫고 들어갈 수 없다는 내 판단에서, 기어이 안으로 들어간다면 글은 오른쪽으로 엄청 기울어져서 '아닌 글자'로 될 것이 틀림없겠고, 바르게 쓰자면 ㄱ 의 왼 삐침 밑에 반듯이 올려붙여 써야 마땅하다는 내 생각이었다. ㄱ 의 왼 삐침 밑에 ㅗ 또는 ㅛ를 붙이니 글은 딴판으로 됐다. 세종대왕께서 아셨으면 옥살이 감이다.
나는 지금도 우리말 구구단이 외기가 설다. 우리말 구구단을 가르친 선생님의 안일한 수업태도가 지금까지 내게 지탄대상이 되는 이유는 알아듣기 쉽게만 가르쳤고, 또 우리생활의 바탕이 되는 수 개념을 논리적으로만 풀었지 이를 활용할 때를 전혀 고려치 않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막히면 일본발음으로 중얼거려서 해결한다. 얘긴 즉, 우리말의 구구단 배우기를,
2×2 = 4…………………2×9=18
3×3 = 9………………3×9=27
4×4=16……………4×9=36
5×5=25…………5×9=45
6×6=36………6×9=54
7×7=49……7×9=63
8×8=64…8×9=72
9×9=81 이렇게 하다 보니 9단은 단 한 줄뿐이다.
당시엔 편리하고 좋았다. 그러나 실용에선 앞의 수가 반드시 적어야 술술 풀리지, 크면 곽 막혀버린다. 그때엔 일본식 구구 발음으로 외면 바로 풀린다. 그렇지 않으면 거꾸로 해서 셈하다보니 엉망이 돼버린다. 곱셈에서 말이다.
이걸 왜 뇌까리느냐하면 우리 머리에, 적어도 어렸을 때에 들어박힌 기억은 잘 잊히지 않고 또 고치기가 어렵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같은 시기에 2×2=4, 2×3=6, 2×4=8,…2×9=18, 3×2=6…3×9=27,4단,…9×2=18,…9×9=81 식으로 일본어로 왼 것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역시 우리나라 선생이 가르친 것도 잊히지 않으니까 9×4일 때 막히고 4×9일 때만 풀린다.
이것이 고민이다. 아무리 새로 외우려고 해도 잘 되질 않는 것이다. 그래서 조기교육일수록 제대로 해야 된다고들 하는가보다. 나는 잘 융합되지 않는 머리구조를 가지고 , 게다가 마치 쓰이지 않는 기름종이 같은 기억장치를 가졌나보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