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입이 헤벌리는 웃음이 절로 나면서 지나가는 아무라도 붙잡아 놓고 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한바탕 웃고 싶어진다.
해방은 맞았는데, 갑작스러운 일이라 아무도 준비 없는 수업이 이루어지면서 잡담과 공차기로 자주 수업 시간을 메우던 한때가 있었다. 충격 속에서 정신없는 며칠이 지났다.
어색한 우리말은 반웃음으로 교실을 채웠고 어리둥절하나마 그런대로 얼버무려 가는데, 글이 없으니 참다못한 선생은 흑판에다 ㄱ,ㄴ,ㄷ,…열 넉 자의 자음과 ㅏ,ㅑ,ㅓ,ㅕ,…열 자의 모음을 적어주며 이를 각각 조합하면 우리말이 되니 이를 익힌 다음에 받침 넣는 법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날의 숙제다. 열 번을 쓰기로 했다. 그날 저녁 내내 공책의 가로 위엔 자음을, 세로 옆엔 모음을 적고 칸을 메워나갔다. 열 장을 거뜬히 해치운 내가 생각하길 우리글은 무척 쉽다고 했다. 일 학년 일 학기 때에 그림으로 몇 시간을 배우긴 했어도 그때는 그림 보고 그 이름을 알기 정도였다. 해서 내 한글 쓰기는 이번이 처음인 셈이다.
잔뜩 쓴 공책을 검사하는 선생님의 눈길도 스쳐 지나갔겠다, 이대로 계속해서 쓰기 시작하고 받침도 붙여나갔다. 며칠 뒤 옆에 앉은 짝의 공책에 쓴 ‘고’ 자와 ‘교’ 자가 이상하게 쓰였기에 따졌다. 왜 ‘ㄱㅗ’나 ‘ㄱㅛ’ 가 돼야지, ‘고’나 ‘교’가 되느냐이다. 즉 ㄱ 은 내리긋는 것이 아니라 왼쪽 옆으로 삐쳐 쓰게 됐으니 ㅗ 나 ㅛ 가 삐친 부분을 뚫고 들어갈 수 없다는 내 판단에서, 기어이 안으로 들어간다면 글은 왼쪽으로 기울어 ‘아닌 글’ 자로 될 것이 틀림없겠고, 바르게 쓰자면 ㄱ 의 왼 삐침 밑에 반듯이 내려 붙여 써야 마땅하다는 내 생각이었다. ㄱ 의 왼 삐침 밑에 ㅗ 또는 ㅛ를 붙이니 글은 딴판으로 됐다. 세종대왕께서 아셨으면 나는 옥살이다.
나는 지금도 우리말 구구단이 설다. 우리말 구구단을 가르친 선생님의 안일한 수업 태도가 지금까지 내게 손가락질 대상이 되는 이유는 알아듣기 쉽게만 가르쳤고, 또 우리 생활의 바탕이 되는 수 개념을 논리적으로만 풀었지 이를 활용할 때를 전혀 고려치 않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막히면 일본 발음으로 중얼거려서 해결한다.
얘긴 즉, 우리말의 구구단 배우기를 2×2=4,…2×9=18, 3×3=9…3×9=27, 4×4=16…4×9=36,…, 9×9=81 이렇게 하다 보니 9단은 단 한 줄뿐이다. 당시엔 편리하고 좋았다. 실용에선 앞의 수가 반드시 적어야 술술 풀리지,
크면 콱 막혀버린다. 그때엔 일본식 구구 발음으로 외면 바로 풀린다. 그렇지 않으면 거꾸로 해서 셈하다 보니 엉망이 돼버린다. 곱셈에서 말이다.
이걸 왜 뇌까리느냐 하면 우리 머리에, 적어도 어릴 때 머리에 박힌 기억은 잘 잊히지 않고 또 고치기가 어렵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같은 시기에 2×2=4, 2×3=6, 2×4=8,…2×9=18, 3×2=6…39=27, 4단, … 9×2=18,…9×9=81처럼 일본어로 왼 것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역시 우리나라 선생이 가르친 것도 잊히지 않으니까 9×4일 때 막히고 4×9일 때만 풀린다. 이것이 고민이다. 아무리 새로 외우려고 해도 잘 되질 않는 것이다. 그래서 조기교육일수록 제대로 해야 한다고들 하는가 보다.
나는 잘 융합되지 않는 머리구조를 가지고, 게다가 마치 쓰이지 않는 기름종이 같은 기억장치를 가졌나 보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