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0.010115 공산주의
친구네 조그마한 공부방에 모였으나 공부 거리도 신통치 않고, 망한 나라의 얘기도 서투르게 할 수 없는, 어정쩡한 시간을 보낸다. 서로가 주워들은 대로 한마디씩 하는, 놀이방이 돼 있었다.
‘38도 이북은 소련에서 점령하고 그 이남은 미국에서 점령한다는데, 소련은 공산주의 국가라서 모든 재산은 나라 것이 되고 부모는 자식을 낳기만 하면 나라에서 모조리 빼앗아다가 키우며 공부시키고 마음대로 한다더라.’
삼촌이 일본군의 칼을 찼던 높은 사람인데 그 조카가 하는 말이니 모두가 눈이 동그래지면서 놀란다. 한 아이가 되묻는다. ‘그러면 우리도 그렇게 끌려가겠네?’ 하며 당장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듯이 궁둥이를 들썩인다. 아리송한 것은 그 많은 애들을 어디다 재우느냐는 것이 제일 알고 싶은 대목이어서 내가 물었다. ‘어디다 재운다더니?’ 거짓말 같은 얘기를 하는 사이에 조금은 안심이 되면서도 가슴의 고동 소리는 내 귀에 들리도록 커진다. 이윽고 맨 앞서 얘기한 애가 자신 있는 듯이 말한다. ‘우리 삼촌이 말했는데, 그래서 우리 동네의 누구누구네 집은 이남으로 가려고 짐을 꾸린단다.’ 이 소리를 듣는 내 가슴은 방망이질을 더 크게 한다. 질린 얼굴을 하고 서로들 바라보고 걱정하여도 대책은 없다.
아! 우리는 앞으로 부모와 떨어져서,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에서 낯선 아저씨들과 모르는 아주머니들에게 밥도 얻어먹고 잠도 자야 하는구나! 모두의 생각이 비슷했는지 한숨을 내쉬면서 눈물을 글썽이고 소매가 눈 위로 올라간다. 어린 소견이지만 이 이야기를 부모에게 하면 부모님의 마음은 어떠하랴! 싶은 생각이 들면서 이 일은 나 홀로 견뎌야 한다고 다짐하니까 물 고를 튼 듯이 눈물이 흐른다.
얼마를 함께 울었는지 모른다.
몇 달이 지나는 사이에 차츰 깨우쳐지고, 조마조마한 나날을 보내면서도 우리의 이야기는 가끔 동무들의 행방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엿 방’ 집, ‘면장’ 집, 친구의 삼촌, ‘응철’네 집, ‘술 회사’ 집, 우리 윗집 아들과 딸, 일본군에 갔다 온 학교 앞집 큰아들, 많은 사람이 행방을 감추며 소식을 끊는다.
사람은 자라면서 제 부모를 떠나 따로 살아야 한다는 이치를 알게 되는 때는 아마 결혼한 후일 테다. 전까지는 오매불망 부모의 곁을 그리며 세월을 보낸다.
부모를 떠나서 산다는 이 이치를 그때 알았더라면 그렇게 섭섭하고 서럽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는 기회만 닿으면 나도 ‘이남’에 가리라는 다짐을 남몰래 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의 심경은, 상황의 변화로 달라지는 각각의 심경이 새롭다. 임종은커녕 생사의 확인도 못 하는 이 한을 어디에다, 어떻게 하소연하나?
줄줄이 이남에 나온 사람들이 행복하게 산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회의(懷疑)도 되고, 두 곳의 삶을 동시에 살지 못하는 유한의 나를 한 번 더 뼈저리게 느낀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