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외통인생 2008. 7. 3.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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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1795.010127 소풍

학교에서 출발하여 북쪽으로 긴 다리를 건너고 신작로를 한 참 가다가 큰길을 벗어나서부터 산기슭에 난 소달구지 길을 따라서 서북서쪽으로 자꾸자꾸 가면 용공사절로 드는 길이 갈라지고, 여기서  왼족으로 길  하나를 비껴 보내고 우리는 산기슭만 바르게 쫓아가다 보니 어느새 가보고 싶든던 '중대리 발전소'가 보인다.

 

먼길이라는 데  어떻게 재미있게 왔는지 금방 온 것 같다. 달구지 길의 세줄 흙바닥이 꾸불꾸불 하지만 우리를 저절로 세 줄이 돼서 가게 하는 재미있는 길이다.

 

풀밭 길에 흙이 보이게 패인 세줄, 흙이 드러난 길 중 가운데 길은 소 발자국에 패인 길이고 양옆에 나란히 패인 흙 길은 달구지 바퀴가 낸 길이다. 땅이 패고 풀이 우거져서 흙이 보이지 않는 곳이 태반이다.

 

 

모롱이를 돌아서 끈질기게 자라는 길가 풀을 얽어서 매고 시치미를 떼고 가노라면 덜커덩하고 도시락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고, 이윽고 고함 소리가 들리게 마련이다.

 

꼼짝없이 걸려 넘어진 것이다. 바라보고 있던 올무쟁이는 하늘을 보고 날아가는 새를 보고 웃음을 터치지만 누구의 짓인지를 알 수 없으니 넘어진 놈은 다시 누군가에게 전수의 기회만 노린다. 당하고 올무 놓는 짓이 연속되는, 한눈을 팔 수 없는 길이다.

 

자, 이렇게 경계하고 훼방 놓고 하다 보니 ‘산천은 수려하나 풀포기만 보았고, 친구는 간데없고 땅 바닥만 보았네?’ 다. 그러나 뚫린 코 구멍으로는 바람과 함께 산천과 인걸(?)을 몽땅 쓸어 마시고 들이켰다.

 

걸어온 길이 적잖이 사십 리길이니 피곤도 하련만 아직도 얼마든지 걸을 수 있는 힘이 남아있다. 걸음이 아니라 걸려 넘어뜨리기 놀이를 한 탓인가 보다.

 

 

'추지령'이 병풍같이 둘러쳐진 골짝. 그 골짝을 흐르는 작은 개울에 하얀 다리가 놓였다. 다리 밑은 맑고 푸른 물이 골짝 가득히 메워 흐른다. 개울을 따라 북향으로 지은 발전소의 건물은 티 하나 없이 깨끗하고 정갈하다. 모든 것이 전기로 이루어지니 다른 집들처럼 마른나무나 죽은 나무그루터기 하나 없는, 갓 지어 회칠한, 사람이 아직 들지 않은 집 같다.

 

우리는 흙도 아니요 자갈도 아니요 모래도 아닌 흙먼지 하나 일지 않는 실험실 같은 마당에 모여 앉았다. 안내가 시작됐다. '통천'벌판의 관개(灌漑)의 목적과 발전의 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이 발전소는 평범한 사무실 같다. 여러 가닥의 전깃줄과 변전시설이 눈에 뜨일 뿐 물 구경을 할 수 없는 이상한 집이다. 이름 하여 도수(導水)발전 시설이라나?

 

북한강의 상류를 막아서 땜은 만들고 이 물을 굴을 뚫어서 낙차(落差)가 큰 영동으로 뽑고, 한 방울의 물도 벌이지 않고 도수로를 이용해서 첫 째발전소의 터빈을 돌리고, 이 물을 다시 상당한 낙차가 나는 곳까지 도수로로 뽑아 끌어서 둘 째발전소의 터빈을 돌리고, 이 물을 또다시 도수로를 통해서 이곳 세 번째 발전소의 터빈을 돌린다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라 마지막 물은 넓은 통천 뜰의 관개(灌漑)수로 사시사철 무제한 공급한다는 것이다.

 

세상나들이를 처음 하는 나지만 이 일은 지금생각해도 통쾌하고 신나는 작품임엔 틀림없을 것 같다. 어디에 가도 이런 아기자기하고 그림 같은, 장난감 같으면서도 엄청난 힘을 내는 작품이 있을 것 같질 않다. 적지 않은 육만 육천 볼트를 생산하여 남한에도 공급하고 있다니 참으로 경이롭다.

 

 

평형도수로를 산 속 굴로 내려오다 발전소의 터빈을 돌리기 위해서 떨어 쏟아 내는 지점 위에 올라가 볼 기회를 얻었다. 키를 넘는 굴속에서 용소(龍沼)같이 가득 차서 나와 잠시 선보이고 바로 옆의 내리꽂는 물길로 쏟아지는 물은 흐르는 물이 아니라 한강에서 분출되는 용수였다. 동해로 뻗는 이 용수는 천만근의 무게로 힘 있게 내리 쏟아 우리의 삶에 빛을 주고 힘을 주는 원동임엔 틀림없었다.

 

볼 것은 터빈밖엔 없었다. 일련의 시설, 발전소마다 훑어보지 못하고 끝머리 하나를 겨우 눈요기 한 내가 이런 발전소를 얘기하면 이즈음의 이곳사람들은 이국의 풍물을 듣듯 실감하지 못한다. 이 점이 또한 나를 섭섭하게 한다.

 

 

 

‘용공사’. 너무 오래 돼서 몇 번이고 산불에 그을리고 재건하고 했다는 절을 돌아오는 길에 잠시 들렷다.

 

이곳의 불상은 하나같이 온전한 불상이 없다. 셀 수 없을 만치 많은 이 불상들의 불구는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 못했다. 또한 일찍 그늘이 진 이 산사의 내력은 기억할 수 가없다. 그저 할머니가 ‘용공사’ 말씀을 할 때마다 유명한 절이라고만 여겼을 따름이다.

 

할머니는 늘 용공사와 석왕사를 함께 얘기하시곤 했다. 이 두 곳은 집을 떠나기 전 소풍 길, 아직 내 기억에서 빠져나가지 않는 곳이고 다시 가보고 싶은, 아련한 향수를 부르는 곳이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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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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