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교사

외통인생 2008. 7. 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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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불란 체제하의 교육정책은 환경의 성·미성숙을 가리지 않고 일제히 전국으로 펴졌다. 조건이 앞설 수는 없었다. 그 무렵의 제반사는 혁파의 바탕이 완벽하여 아무도 토를 달 수가 없었고 또 그럴만한 사람은 이미 다 남쪽으로 빠져갔다. 나머지 백성은 오직 그 하늘의 빛이라도 쬐지 않으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어서, 있는 그대로 드러나고 말았다. 그래서 순응하고 찬양하여 수혜 입장에서 양같이 따를 뿐이다.

  어떻든, 내겐 그 해가 내 진로를 결정하여 디디고 뛸 발판이 필요한 해였다. 외지라도 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참이었기에 제대로 된 꼴이다. 학교의 신설 물결이 일어서 가는 곳마다 넘치느니 학교이고 학생이다. 배움이 생활의 시작이고 끝이다. 부족한 것이 하나둘이 아니라 천 가지, 만 가지가 다 부족하다. 선생이고 책이고 책상이고 흑판이고 있는 것이 없다. 그러나 시작됐다.

우리 고장에 있는 모든 게 다 모였다. 해서, 첫날부터 공부는 시작됐다. 교사는 한 길가의 넓은 땅에 새로 짓기로 했나 보다. 그러나 당장 공부하는 곳은 새로 지었던 소방서의 건물을 내부 개조, 개조한 것이 아니라 칸 진 벽을 털어 없애고 늘려서 겨우 한 학급이 들어갈 수 있는 방 네 개가 전부이다.  

이런 사정이니 바닥은 울퉁불퉁하고 천장은 칸마다 높이가 다르고 그런 가운데서 또 나무 기둥이 두 개나 버티고 서있다. 다행으로 뒤쪽으로 책상 두 개쯤 놓일 자리에 있어서 그 기둥 뒤만 앉을 수가 없는, 이빨이 네 대 빠진 교실이 됐다. 이런 교실 한 개가 있고 나머지 교실은 조금 작긴 하지만 교실 가운데 기둥은 없었다.

교무실은 숫제 ‘보안서’가 차지한 다른 건물의 골방 같은 곳을 차지하고 있어서 눈이나 비가 올 때는 흠뻑 맞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교실 사이에 문이 달려서 왕래는 편했으나 수업 시간에 옆방의 수업 내용과 범벅이 되어서 조금은 신경 쓰이는데, 더러는 도움도 되는 때도 있었다.

내 방의 수업 내용이 부실하거나 흥미가 없는 과목일 때엔 오히려 그쪽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노지(露地)에서 배우거나 궁궐에서 배우거나 배움에 차이가 있을 수 없지만 가르치는 선생이나 배우는 학생이나 다 함께 불타는 열의를 가지고 심혈을 쏟았으니 훗날 모이는 기회가 있게 된다면 그때의 이야기가 가장 뼛속을 스미는 얘깃거리가 될 듯하다.

그 와중에도 학생의 신분으로 문짝도 고치고 미어지는 소리도 죽이던 친구 '덕재'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는 나와 각별한 인연 있는 친구이지만 연을 잇지 못하고 내가 고향을 떠나올 즈음엔 나와 다른 입장에 서게 됐던 기억 또한 잊을 수 없다.  

시골에서 화재는 잦지 않으나, 간혹 방공연습이라도 있는 날이거나 실제로 불이라도 나면 바로 이 건물 한쪽에 높이 달린 사이렌이 울리면 그 소리에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데도 누구도 불평 하나 없다.

모두를 수용할 따름이다. 새로 지은 교사가 그대로 남아있다면, 다행스럽게도 가 교사가 그대로 남아있다면, 나를 삼킨 세월을 뛰쳐나와 달려가서 그 한가운데의 기둥을 안아 보고 그 기둥 옆자리에 앉았던 친구를 불러 앉히고 함께 눈감고 명상하고 싶다./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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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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