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의 바보 같은 행동을 평생토록 이렇게 후회하는 일이 다른 이에게도 있을까? 생각만 해도 얼굴이 달아오른다. 아무에게도 속 터놓고 얘기할 수 없을, 창피한 일을 겪었다. 그 일을 겪고 나서도 집안 어른들이나 친구에게도 입을 떼지 못했다. 선생님도 너무나 어이없어서 입을 다물고 이날까지 계실지 모른다. 아니면 가슴은 쓰리고 아려도 그대로 묻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길을 걸어도 그늘 밑을 가려 걷게 되고 물을 보면 손이라도 담그고 싶은 오월의 토요일 오후였다. 내리쬐는 햇빛의 밝기가 나뭇잎 하나하나를 뚜렷이 그려내며 그늘을 짙게 칠하는 화창한 날이었다.
차려놓은 밥을 말끔히 해치우고 막 숟가락을 놓으려는데 영어 선생님이 문밖에 우뚝하게 나타나셨다. 서서 기웃거리시는 선생님을 보자마자 수저를 든 채로 대문 밖에 나가 우선 집안으로 들어서게는 했는데 마땅히 모실 곳이 없다. 서슴없이 따라 들어오시는 선생님의 거동이 또한 수상하였다. 바깥 날씨가 화창하고 햇빛이 밝은 탓에 봉당 안이 갑자기 어두워졌겠지만 보는 내가 민망스럽도록 두리번거리신다. 아마도 부모님을 찾으시는 것 같은데 부모님은 내 밥상만을 따로 남기고 들로 나가신 지가 오래됐을 터다.
어른들이 안 계신 것을 알아차리실 무렵의 선생님의 눈이 환하게 밝아졌고 내 앞에 빈 그릇만 놓인 밥상에 선생님의 시선이 멎어있음을 재빨리 알아차렸다.
나는 무 뽑아먹다 들킨 놈 모양으로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양발이 그대로 바닥에 붙어버렸는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내방이 따로 없으니, 방으로 모실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왜 오셨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다. 부모님이 안 계시니 무슨 말인들 할 것이 있겠는가.
피차가 입장만 얼버무리려고 애쓰는 것이 역력하다. 날씨 타령만 하는 선생님과 좀 ‘들어가자는’, 겨우 한마디를 던지고는 얼굴만 빤히 볼 수가 없어서 눈을 내리까는 내 눈이 마주칠 리는 만무했다.
선생님이 입을 떼셨다. ‘냉수 한 그릇 다오.’ 비로소 내 발이 땅에서 떨어지고 아무 말 없이 냉수 한 사발을 떠 드렸더니 단숨에 들이키시고 사발을 내미시는데, 그때의 내 심경은 그대로 김처럼 증발하거나 연기처럼 사라지고 싶었다. 집에는 아무려나 날것은 얼마든지 있는데, 감자라도 쪄볼까요? 아니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쌀을 솥에 넣어 끓여 볼까요? 하고 물었더라면 아마도 선생은 둘 중 하나를 허락하셨을 것 같은 생각이 두고두고 나를 괴롭혔다. 아마도 선생님은 그날이 토요일이라서 한 십 리쯤 되는 댁으로 돌아가실 생각으로 점심 준비를 하지 않으셨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퇴근할 수가 없게 되자 여인숙을 하는 우리 집으로 가면 무슨 수가 있을 것 같아서 허겁지겁 달려오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빈 밥상만 바라보고 오히려 시장기를 더 느꼈을 성싶은데, 야속하게도 멍텅구리 제자는 맹물만 한 사발 안겨서 보낸 꼴이 됐다.
부뚜막에 걸터앉으셨든 선생님의 허리가 전에 볼 수 없이 굽어있고 어깨는 천근을 닳고 있는 듯 아래로 처져있었다. 선생님은 아무 말씀 없이 대문을 나서서 양 손바닥으로 두 눈 위를 가리고 위 마을 향해서 터벅터벅, 해진 구두 뒤 굽을 끌었다. 그 발자국은 더디었고 발 폭은 좁아서 곧 어딘가에 걸터앉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더 바라볼 수 없어서 나는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서 빈 밥상만 한참 바라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무언가를 시도했어야 옳았을 것 같아서 못내 아쉽고 후회스럽다.
재치가 없었대서 그날이 이토록 사무치는 것인지, 우리 집이 남달리 옹색했대서 이토록 부끄러운 것인지, 부모님이 들에 나가고 안 계셨으므로 점심 한 끼 못 해 드렸던 것이 창피한 것이었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스승과 제자가 함께 한 맺힐, 잊지 못할 어느 토요일 오후였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