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년을 쓸 수 있어서 만년필이란 이름을 붙였을까? 아니면 만 년을 골몰하여서 만년필이라고 했을까? 이름부터가 사람의 혼을 빼 갈만한 이름이고 그 쓰임새가 돋아 보이는데, 더구나 이 만년필을 웃옷에 꽂고 다니는 것이 한 멋으로까지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만년필 가게가 지금의 ‘안경점(眼鏡店)’ 이거나 ‘CD 점’처럼 흔치 않던 때였다. 더군다나 시골에서 자라다 보니 엄두를 못 낼 처지인데, 하물며 집안 사정이 허락지 않으니, 만년필을 갖는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다.
친구에게서 다 망가진 만년필을 한 개 얻었다. 그냥 잉크를 찍어 쓰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일반 펜보다 잉크병 들락거리지 않는 것만 해도 좋았으니 모름지기 ‘백 년 필(?)’은, 되고도 남음 직했다. 그런데, 그 시절의 내 호기심이 이를 그냥 놓아둘 리가 없다. 쓰는 시간보다 만지작거리는 시간이 더 많다. 결국은 온몸이 잉크투성이가 되면서 낭패를 당하곤 했다.
동그스름한 모자 모양, 꼭 누에고치 절반을 잘라 놓은 듯, 손잡이에 달린 펌프 심이 만년필의 몸통을 오르내리면서, 잉크를 빨아드렸다가 뺐다. 하면서 조절하게 돼 있고, 잉크병에 촉과 함께 푹 담가서 빨아들이면 되는데, 문제는 이 올라와 있는 펌프의 심을 몸체에 집어넣는 일이다. 물론 새것일 때야 잘 먹혀들었겠지만 다 낡아서 헛김이 새니까 잉크를 빨려들질 않고, 이게 됐는지 안 됐는지 알려주는 계기판도 없으니 알 바가 없어서, 이리 기울이고 저리 기울이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에 손으로 흘러내리고 이 손 닦는다고 걸레 집는 사이에 이번에는 소매를 타고 흐르고, 여기에 신경이 씌어서 팔을 내 뻗다 보면 어느새 바짓가랑이에 떨어진다. 급기야 내동댕이치고 걸레 가지려고 재빨리 간다는 게 옷소매가 잉크병을 쓸어서 책상과 방바닥을 잉크로 매질하게 되는데, 이것들이 처음부터 차례로, 손쓸 사이 없이, 연이어서 일어나기 때문에 시간은 아주 짧은 시간이다.
그러면 애초의 마음대로 ‘백 년 필’로나 쓸 일이지 않은가!. 오죽하면 내 차례까지 돌아왔겠는가를 생각하면 될 텐데, 요놈의 고집통이 그걸 못 참아내고 기어이 또 일을 꾸미고 만다.
그러니까 그 만년필의 원리를 그대로 이용해서 내가 만들어 쓰면 만년필의 여러 가지 기능 중에 과시하는 일 말고, 아름답게 꾸미는 일 말고, 남에게 보일 일 말고, 나 홀로 잉크병에 펜촉 집어넣으랴 생각하랴 줄 찾으랴, 아무튼 처음 운전할 때 정신없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그래서 그중 좀 한 가지라도 덜어서 산만해지는 내 정신을 가다듬는 데 보탬이 되리라는 생각으로 이번에는 대나무를 한 토막 구해서 그 한끝에다가 알맞은 둥글기로 지우개를 잘라서 펌프를 만들었다. 그 지우개에다가 신을 박아서 물총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다른 한쪽에다가는 펜촉을 꽂는데, 그림 그리는 펜촉을 구해서는 그 안쪽에다가는 ‘혓바닥(?)’을 깎아서 붙이고서는 시험을 해 봤다. 응당 안 돼야 한다. 이것이 된다면 만년필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테니까, 여지가 없다. 그야말로 물 펌프에서 한 치도 어긋남이 없다. 펌프 손잡이를 당기면 잉크는 빨아드리는 데 그다음 빠져나온 심을 집어넣는 일이 전혀 되질 않는다. 만년은커녕 ‘하루 필(?)’도 되지 못한다. 밀면 촉 끝에서 소방호스 불 끌 때 물 나오는 것 이상으로 뻗친다. 또 한 번 잉크 대란을 겪은 것은 말할 나위 없다.
그날의 내 공부는 내 마음대로 못 하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깨친 것이 다른 공부 몇 배나 컸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이후 만년필에 대한 욕심은 사라졌고 겉옷 위 주머니에 푸르게 칠한 친구들이 왠지 안쓰럽게 보였다.
돌아가신 일가 할아버지께서 머리칼은 백발이면서 양복저고리 왼쪽 윗주머니에는 늘 만년필을 꽂고, 알아볼 수 없는 배지를 달고, 손자 집에 나타나실 때다. 나는 그 만년필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할아버지의 몸은 지금 여기 우리 집에 계셔도 마음은 유년기를 헤매고 그때의 또래들과 함께 계심을 느꼈지만, 별 위로의 말씀을 드릴 용기가 나질 않았다. 할아버지의 만년필이 내가 어렸을 때 바라든 그 만년필은 아니더라도 할아버지의 외모로 해서는 나를 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차마 내가 지금 그렇게 치장할 수 없지만, 할아버지로 하여 내가 위로받는 것 같아서 조금은 송구하기까지 했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