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

외통인생 2008. 7. 4. 08:46

글 찾기 ( 아래 목록 크릭 또는 왼쪽 분류목록 클릭)

외통궤적 외통인생 외통넋두리 외통프리즘 외통묵상 외통나들이 외통논어
외통인생론노트 외통역인생론 시두례 글두레 고사성어 탈무드 질병과 건강
생로병사비밀 회화그림 사진그래픽 조각조형 음악소리 자연경관 자연현상
영상종합 마술요술 연예체육 사적跡蹟迹 일반자료 생활 컴퓨터
1840.010226 만년필

만 년을 쓸 수 있어서 만년필이란 이름을 붙였을까? 아니면 만 년을 골몰하여서 만년필이라고 했을까? 이름부터가 사람의 혼을 빼 갈만한 이름이고 그 쓰임새가 돋아 보이는데, 더구나 이 만년필을 웃옷에 꽂고 다니는 것이 한 멋으로까지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만년필 가게가 지금의 ‘안경점(眼鏡店)’ 이거나 ‘CD 점’처럼 흔치 않던 때였다. 더군다나 시골에서 자라다 보니 엄두를 못 낼 처지인데, 하물며 집안 사정이 허락지 않으니, 만년필을 갖는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다.

친구에게서 다 망가진 만년필을 한 개 얻었다. 그냥 잉크를 찍어 쓰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일반 펜보다 잉크병 들락거리지 않는 것만 해도 좋았으니 모름지기 ‘백 년 필(?)’은, 되고도 남음 직했다. 그런데, 그 시절의 내 호기심이 이를 그냥 놓아둘 리가 없다. 쓰는 시간보다 만지작거리는 시간이 더 많다. 결국은 온몸이 잉크투성이가 되면서 낭패를 당하곤 했다.

동그스름한 모자 모양, 꼭 누에고치 절반을 잘라 놓은 듯, 손잡이에 달린 펌프 심이 만년필의 몸통을 오르내리면서, 잉크를 빨아드렸다가 뺐다. 하면서 조절하게 돼 있고, 잉크병에 촉과 함께 푹 담가서 빨아들이면 되는데, 문제는 이 올라와 있는 펌프의 심을 몸체에 집어넣는 일이다. 물론 새것일 때야 잘 먹혀들었겠지만 다 낡아서 헛김이 새니까 잉크를 빨려들질 않고, 이게 됐는지 안 됐는지 알려주는 계기판도 없으니 알 바가 없어서, 이리 기울이고 저리 기울이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에 손으로 흘러내리고 이 손 닦는다고 걸레 집는 사이에 이번에는 소매를 타고 흐르고, 여기에 신경이 씌어서 팔을 내 뻗다 보면 어느새 바짓가랑이에 떨어진다. 급기야 내동댕이치고 걸레 가지려고 재빨리 간다는 게 옷소매가 잉크병을 쓸어서 책상과 방바닥을 잉크로 매질하게 되는데, 이것들이 처음부터 차례로, 손쓸 사이 없이, 연이어서 일어나기 때문에 시간은 아주 짧은 시간이다.

그러면 애초의 마음대로 ‘백 년 필’로나 쓸 일이지 않은가!. 오죽하면 내 차례까지 돌아왔겠는가를 생각하면 될 텐데, 요놈의 고집통이 그걸 못 참아내고 기어이 또 일을 꾸미고 만다.

그러니까 그 만년필의 원리를 그대로 이용해서 내가 만들어 쓰면 만년필의 여러 가지 기능 중에 과시하는 일 말고, 아름답게 꾸미는 일 말고, 남에게 보일 일 말고, 나 홀로 잉크병에 펜촉 집어넣으랴 생각하랴 줄 찾으랴, 아무튼 처음 운전할 때 정신없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그래서 그중 좀 한 가지라도 덜어서 산만해지는 내 정신을 가다듬는 데 보탬이 되리라는 생각으로 이번에는 대나무를 한 토막 구해서 그 한끝에다가 알맞은 둥글기로 지우개를 잘라서 펌프를 만들었다. 그 지우개에다가 신을 박아서 물총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다른 한쪽에다가는 펜촉을 꽂는데, 그림 그리는 펜촉을 구해서는 그 안쪽에다가는 ‘혓바닥(?)’을 깎아서 붙이고서는 시험을 해 봤다. 응당 안 돼야 한다. 이것이 된다면 만년필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테니까, 여지가 없다. 그야말로 물 펌프에서 한 치도 어긋남이 없다. 펌프 손잡이를 당기면 잉크는 빨아드리는 데 그다음 빠져나온 심을 집어넣는 일이 전혀 되질 않는다. 만년은커녕 ‘하루 필(?)’도 되지 못한다. 밀면 촉 끝에서 소방호스 불 끌 때 물 나오는 것 이상으로 뻗친다. 또 한 번 잉크 대란을 겪은 것은 말할 나위 없다.

그날의 내 공부는 내 마음대로 못 하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깨친 것이 다른 공부 몇 배나 컸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이후 만년필에 대한 욕심은 사라졌고 겉옷 위 주머니에 푸르게 칠한 친구들이 왠지 안쓰럽게 보였다.



돌아가신 일가 할아버지께서 머리칼은 백발이면서 양복저고리 왼쪽 윗주머니에는 늘 만년필을 꽂고, 알아볼 수 없는 배지를 달고, 손자 집에 나타나실 때다. 나는 그 만년필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할아버지의 몸은 지금 여기 우리 집에 계셔도 마음은 유년기를 헤매고 그때의 또래들과 함께 계심을 느꼈지만, 별 위로의 말씀을 드릴 용기가 나질 않았다. 할아버지의 만년필이 내가 어렸을 때 바라든 그 만년필은 아니더라도 할아버지의 외모로 해서는 나를 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차마 내가 지금 그렇게 치장할 수 없지만, 할아버지로 하여 내가 위로받는 것 같아서 조금은 송구하기까지 했다./외통-

'외통인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트  (0) 2008.07.05
지각생  (0) 2008.07.04
가교사  (0) 2008.07.03
냉수  (0) 2008.07.03
소풍  (0) 2008.07.03
Posted by 외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