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자리의 친구는 얼굴이 종잇장같이 희고 갸름하여 이미 농군의 아들임을 포기한 듯이 햇빛을 외면하고 문밖 나들이를 싫어한다. 그러면서 쉬는 시간에도 늘 책상에만 붙어 앉아 있는 품이 여자 같은 애였다.
언제 보아도 갖출 것은 다 갖추고서 풍요롭게 공부하는 그 애의 조그만 덕을 입었기에 오늘날까지 이따금 나의 유년 시절에 불붙인다. 만약 그 친구가 내게 작은 공책을 내밀지 않았으면 지금까지 내가 그 친구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집은 윗동네 이발소 아랫집이며 잡화와 고무신 가게를 겸하고 있는 집의 둘째 아들이다. 형은 우리보다 두 해나 선배이고 그도 역시 작은 키에 희멀건 얼굴인 것은 형제가 동색이다. 이점이 내가 이 친구를 기억하는 용모의 전부다. 그러나 그 집은 이따금 운동화 배급표를 들고 가면 친구의 어머니가 반기고, 층층이 매 놓은 선반에서 내주는 새까만 운동화와 친구 어머니의 흰 손이 너무나 대조되어 친구의 어머니 키와 함께 오히려 친구보다 선명히 떠오른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면 신을 신고 움직일 수 있을 만한 너비의 공간을 두었으나 보다 넓게 놓인 판자 마루가 벽 밑까지 이어져서 주인은 맨발로 손님을 맞고 손님은 언제나 신발을 신은 채로 물건을 사야 하는, 그 시절 가게 전형을 하나도 벗어나지 않은, 그대로의 가겟집이다. 다만 많은 가게가 양철지붕으로 돼 있으나 친구네 집은 아직 초가를 못 면하고 있는 것이 조금은 다르다.
길가의 집들이 이런 유형의 가게를 꾸밀 수 있도록 잇대어 지었다. 간혹 지붕은 양철을 이었으면서도 초가 모양을 벗지 못하고 있는 집들이 많다. 얼룩 강냉이 알 박이듯 알록달록 이어진 우리 동네의 길가에 모인 가게 중 노란 지붕을 한 잡화점 집 아들이다. 그 집에서는 비단 천도 광목과 함께 팔았다. 그래서 마루가 조금 넓게 깔려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보다 윗동네라 집 앞의 도랑물은 한결 힘차고 맑게 흐른다.
받아 든 공책은 넉 줄씩 가로줄 쳐진 영어 쓰기 노트였다. 노트의 질은 그곳의 종이로 된 것이니 두껍고 면이 거칠어서 잉크가 번지지만, 줄을 긋는 수고는 없다. 친구의 마음이 무척 고마워서 정성을 다하여 마지막까지 꼭꼭 채워서 다 써버렸다. 모름지기 그도 이 공책의 향배를 눈여겨보았을 것이다. 그때 나는 참으로 기뻤다. 기쁘기도 하고 무안하기도 하고, 아무튼 주는 친구의 호의보다는 받는 내가 몇 배의 기쁨을 얻었으리라고 여겨진다. 친구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는지 담담히 하던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다. 아마도 일일이 잣대로 줄을 치는 내가 보기에 딱하고 안쓰러웠는가 보다.
그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어디로 진학했는지 전혀 소식이 없고 격변을 겪는 와중에 어디론가 멀리 이사라도 갔는지, 이따금 그 집 앞을 걸어가다 보면 ‘소비조합’ 간판이 붙어있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날 따름이다.
야생마와 같이 뛰어다니던 나와는 다르게, 늘 집안에만 박혀 지내던 그 친구, ‘임문환’과의 이 조그마한 인연은 나를 이따금 고향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 예정됐던 것 같기도 하고, 또 많지 않은 내 기억 속의 사람 중에 또렷이 기억되는 것은 그의 마음이 그가 내게 준 노트의 가로 넉 줄 위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잉크로 새겨졌기 때문이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