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외통인생 2008. 7. 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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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010311 친구는

학교생활은 무한히 팽창하는 욕구의 토로(吐露) 장이고 지칠 줄 모르는 탐구의 집약적 실험실인 것을 그때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막연히 무언가 탈출구가 있을 것 같은 생각만이 희부옇게 내 눈앞에 비칠 뿐이었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며 견문을 넓히고 새 환경을 경험하며 내 그릇을 키우고 넓혀야 하는 것도 훨씬 후에야 감지할 수 있었다.

조건이 구비 안 된 공부는 편파적 내 생활을 낳았다. 그와 같은 입지 위에서 내 행동반경은 좁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 많지는 않지만 단손으로 끌고 가기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닌 전답과 식구들, 벌여놓은 여인숙 영업, 머슴을 둘만 한 여유가 아직 없는 사정, 이런 연유로 우리 집 들일은 건강이 좋지 않은 아버지가 도맡아서 하시게 된다. 한 집안의 맏이로서 이런 사정을 눈을 빤히 뜨고 바라보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심리적 부담을 안고 있지만, 그런대로 집에서 다닐 수 있게 가까이 있는 학교니까 다닐 수 있었다.

시절이 시절인 만큼 내 친구 중 많은 애들이 진학을 포기하고 집안일을 돕는 형편이었다. 그 시절의 농촌은 오히려 전답이 없는 편이 훨씬 생활하기에 편했다. 배급은 옹골지게 탈 수 있고 생필품도 싸게 살 수 있었으니까. 오히려 그편이 낳았는지도 모른다. 또 당당히 활개 칠 수 있는 그런 사회적 환경이었으니 오죽 좋으랴.

이래저래 우리 집안은 나의 결단이 요구되는 시기를 맞았으니 이 시점이 나의 단독 판단으로 행동한 최초의 단안이었다고 할 수 있으며 그래서 지금도 내 마음 한구석에 작은 찌꺼기가 녹질 않고 떠다니는 것이다.

이런 앙금이 나를 온전한 생활로 끌어내지 못하고 내가 잦아들며 스스로 일을 찾아서 집을 도와야 하는 처지를 늘 염두에 두고 있었고 짬만 나면 들로 달려가는 생활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남들은 방과 후를 별도의 약속으로 몰려다니며 공부한다, 아니면 다른 친구네 집을 찾아 멀리 떠나는, 반듯이 있어야 할 법한 일들에서 항상 빠지는 외톨이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것은 오히려 내가 자청한 일이기에 누구에게도 전가할 수 없는, 내가 감내할 일이기에, 묵묵히 실천할 따름이다.

방과 후, 끼리끼리 뭉쳐서 동서남북으로 흩어지는 친구들의 뒤를 바라보며 번개같이 스치는 생각은 어느 논뙈기 뚝 밑에 쪼그리고 앉아 계실 것 같은 아버지, 입에다 손가락을 넣고 토하고 계실 아버지의 뒷모습이 생생하다. 해서 한시라도 빨리 들로 달려가고 싶은 생각이 온몸을 덮친다. 내가 이 순간에도 아버지께 죄라도 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 분명 죄를 짓고 있다고 생각한다.

집에 당도한 나는 서둘러 안팎을 둘러보며 거름더미 위에 올라가 있는 닭을 괜하게 쫓아버리고 화풀이하며 인기척을 내지만 어느 구석에도 우리 식구의 그림자는 보이질 않는다.

한낮의 해는 ‘매봉산’ 위에 올라가 있는데, 지금은 꼭대기에서 기울어져 서쪽을 내려다보고 있다. 해거름으로 보아 서너 시쯤은 된 것 같다.

조금은 미안하지만 ‘그래도 이만큼 자라서 들에 일손을 거들기 위해서 왔습니다.’ ‘아버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생각할 뿐, 아무 말 없이 낫 한 자루를 들고 사각사각 벼를 베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옆에 다가서서 벼를 베기 시작하는 것으로 나의 무언의 인사를 치른다.

학교 다니면서, 이러기를 나날이 이었으니 아무런 어색함이 없다. 어깨를 서로 부닥치기도 하고, 어깨 팔짱 끼고 고함도 지르고, 돌부리도 차고, 웃통을 벗고 운동장에서 씨름도 하는, 이런 모임은 내겐 모조리 유치한 것으로 비쳤다. 그나마 작은 위안이 있다면 내 마음을 부모님께서 알아주셨던 것을 내가 눈치채고 있던, 그것이 나의 보람이라 할 수 있었다.

내가 부산히 농사일을 도왔다 하드래도 얼마나 보탬이 됐을까마는, 식구들의 합치된 마음을 보시고 아버지의 속병이 잠시나마 가라앉아서 논두렁의 한구석에 한 번이라도 덜 가셨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날그날 보냈다.



이 작은 추억들이 내가 빠져드는 자괴(自愧)의 늪을 좁혀서 송두리째 빠지지 않도록 버팀목 구실을 하는가 보다. 해서 또 한 번 억지로 위안받으려 한다./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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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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