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9.010114 가치
한 아기가 자라면서 느끼는 정도를 생각해볼 때 우리는 경험적으로, 그 아기가 가까이에서 자주 접하는 사람을 부모나 가족으로 알아차리게 되는 것을 안다.
가령 미운 오리의 얘기와 같이 어느 정도로 크기까지는 오리 새끼는 닭을 제어미로 알 것이고 병아리도 제형제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커가면서, 모습과 성정과 짓거리가 달라지면서 차츰 저를 알아차리게 될 것인데 이때의 충격은 어떻겠는지 당해보지 안 했으니 알 수는 없겠으나 짐작 은 간다.
사람도 철이 나서 제 어미와 제 아비를 알게 될 때, 그 어버이가 자기를 낳아준 부모가 아님을 알 때, 갈등과 혼란이 겹치면서 세상을 원망과 저주의 대상으로 삼기도 하고 고비를 넘겨서 이해와 용서의 용광로로 변화시키기도 할 것이다.
존경과 배신을 동시에 맛보는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된다.
우리가 맞은 해방은 우리나이엔 대단한 충격이며 가치의 혼돈이었으니 이는 마치 어린 오리새끼가 갑자기 제 모습에 눈뜨고 제 몰골에 정신 차리고 방황하는 꼴과, 제 어버이를 알아 번민하며 새 가치를 찾는 어린이와 흡사한 것이다.
반세기를 훨씬 넘긴 이제, 그 때의 혼란스럽던 우리 꼬마들의 머리를 이제 곱씹으며 우리가 사는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게 된다.
가치는 알고 이해하는데서 출발되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더러워 외면하더라도 구더기가 제 사는 곳에서 아무 불편 없이 일생을 산다는 것은 그 구더기로 보아서는 제가 헤엄치고 다니는 그곳이 절대적 가치가 부여된 곳임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또 노래 말에도 있듯이, 개똥벌레의 고향이 개똥밭이라면 그 개똥밭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 벌레의 절대적 가치이다. 이는 그곳과 그 벌레가 불가분의 관계로, 그 생명의 원천이 바로 그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곳이 사람에게는 더럽고 무가치하고 경원의 대상이 된다. 또 달리,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
개의 발에 가죽구두?, 는 각각 그 동물에겐 무가치할뿐더러 오히려 속박이다.
흔한 골동품도 아는 이에게 가치가 있는 것이지 아무리 밟고 다니도록 흔해도 또 하늘의 별똥같이 귀해도 그들이 인정하지 않으면 그들에겐 무가치하다.
이렇게 볼 때에 우주만물은 동등한 가치와 동등한 존귀함인데, 또는 동등한 무가치이고 허무(虛無)인데 이를 보는 나라에 따라서, 계층에 따라서, 개인에 따라서, 달리 평가되고 달리 인정된다. 재미있다.
여기 내가 아무것이나 손에 넣고 이것이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이라고, 이것이 없으면 살맛이 없노라고 애지중지한다면 그것은 필연 그 사람에겐 이 세상 에서 둘도 없는 보물을 지니고 있는 셈이 된다.
결국 가치는 객관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저렇게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은 인정하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 가치의 절대성만을 고집 부려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면 혹자는 '네가 먼저 모든 것을 내놓고 다른 흔하고 흔한 한 가지 물건을 지니고 가치부여를 해서 살려무나.' 할 것이다.
못할 바 없다. 사람은 누구나 빈손으로 가기 때문이다.
시간을 늦추고 당기고 할 따름이지 매한가지, 이 세상의 것은 결국 내겐 무가치한 것이다. 어느 누구도 예외는 없다.
해방을 맞으면서 어쩔 줄 몰라 했던 나다. 미운 오리새끼 내가, 어미 닭을 쫓던 내가, 내 모습을 알아차리고 나대로의 몸짓을 해야 하는 충격이 컸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