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2.010116 솔문
우리할머니가 이름 지어 '솔문'이라고 하셨고 이제까지 '솔문'으로 알고 있는 이 문은 해방의 특산물이었다. 해방 전에는 나무 한 그루라도 건드리면 바로 ‘주재소’로 잡혀가야 하는 엄한 벌이 무서워서 인지 그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였던지 소나무가지로 마무리한 아치를 볼 수 없었다.
그런데 해방이 되면서 큰 행사엔 반드시 이 '솔문'이 세워졌다. 한길 가운데나 행사장 정문에 이 솔문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또 무슨 경축행사가 있구나하는 짐작을 할 수 있게, 솔문은 축제를 알리는 광고의 효과를 내고 있었다.
이것이 당시의 유행이고 최고의 축제 분위기를 만드는 방편이고, 때로는 방문자에 대한 예우였는지는 몰라도, 솔문이 없는 행사는 생각 할 수 없었다.
적어도 시골에서는 그랬다.
사람의 왕래가 잦은 거리의 길 양옆에 기둥을 세우고 보를 지른 다음 여기에 짚으로 살을 붙이고 새끼줄로 동여맨 다음 그 위에다 솔가지를 밑에서부터 차례로 빽빽이 꽂아서 마무리하는데, 이 솔문에는 반드시 그 날의 뜻을 쓰거나 다른 색의 나무토막으로 새기거나 했다. 여기엔 또 ‘축’자가 한가운데 달리거나 ‘경축’을 한 자씩 나누어 양옆에다가 다는 것이 예사였다. 완성된 솔문을 지나다닐 때의 기분은 나쁘지 않다. 솔가지 냄새와 벼 짚 냄새가 섞여서 마치 골짜기의 다락 논둑을 걷는 향내를 뿜는다.
농촌에서 구할 수 있는 흔한 재료이지만 만든 사람들의 정성이 깃들어있어서 정감이 가고, 요새 철제로 만든 아취에 비해서 단명하지만 대신 싱싱하여 생동감이 넘치고 푸른 기상도 품고 있다. 이렇게 보면 요새 만드는 나무나 철제문은 죽은 문이나 다름없다. 좀 더 축제의 맛을 높이려면 살아 있는 꽃이나 풀잎으로 하면 좋으련만 혼자생각일 따름이다.
꿈같은 얘기이지만 그 날의 주인, 곧 생일을 맞은 사람에게 사람들이 어울러서 작은 솔문이라도 만들어 통과시키면 그는 아마 새로 태어난 느낌을 가질 것이다. 문(門)은 크고 헐겁고 탁 트인 느낌이고 구(口)는 비좁고 일방통행이거나 정상적인 출입이 아닌 느낌을 주는 것은 아마도 옛사람들의 기준으로 보아서 문은 신분이 높고 벼슬이 큰 사람, 구는 신분이 낮고 벼슬이 없거나 상인, 천민이 드나드는 곳을 말한 것 같다.
문도 좁아서 아예 문을 없이한다는 사람조차도 있다.
옛사람의 문에 대한 인식은 통과함으로서 새로운 각오와 삶을, 또는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하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이 문을 통과함으로써 그렇게 됐음을 자인하고 싶어서 문을 만들고 드나드는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본다면 문은 한 지점에 돌출한 지상의 구조물에 다름 아닌데 왜 그곳을 통과 했나 안 했나를 생각하며 고뇌하며, 그 구조물을 뚫고 안으로 들어갔느냐 못 들어갔느냐를 따지는지 모르겠다.
이것은 인간들의 한계를 들어 낸 증표이다. 새들을 보라 그들은 문도 없고 출입구도 없어도 잘만 살아간다.
소나무와 우리들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태어날 때 궁문을 빠져 나왔대서 ‘송침(松針)’으로 알리고, 죽을 때에 소나무 관을 쓰고, 살아 갈 때에 소나무 잎으로 떡을 빚고, 액땜을 할 때에도 소나무에다 귀신을 올려서 살아있는 주인으로 하여금 잡게 해서 귀신의 이름으로 훈계하고, 또 성황당은 동네의 모든 액운을 쥐고 있어서 일 년에 한 번씩 제사를 지내야하는 마을이 태반이다.
솔문은 그래서 우리에게 좋은 행운을 갖다 주는 문으로 믿어도 될듯하나 이 솔문을 만든다는 고장을 보지 못했다.
좋은 풍습인 것 같은데 잊혀진지 오래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