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가 이름 지어 ‘솔만’이라고 하셨고 이제까지 ‘솔만’으로 알고 있는 이 문은 해방의 특산물이었다. 해방 전에는 나무 한 그루라도 건드리면 바로 ‘주재소’로 잡혀가야 하는 엄한 벌이 무서워서인지, 그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였던지, 소나무 가지로 마무리한 ‘아치’를 볼 수 없었다. 그런데 해방이 되면서 큰 행사엔 반드시 이 ‘솔 문’이 세워졌다. 한길 가운데나 행사장 정문에 이 ‘솔 문’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또 무슨 경축 행사가 있다고 짐작을 할 수 있게, ‘솔만’은 축제를 알리는 광고의 효과를 내고 있었다.
이것이 당시의 유행이고 최고의 축제 분위기를 만드는 방법이고, 때로는 방문자에 대한 예우였는지는 몰라도, ‘솔 문’이 없는 행사는 생각할 수 없었다. 적어도 시골에서는 그랬다.
사람의 왕래가 잦은 거리의 길 양옆에 기둥을 세우고 보를 지른 다음 여기에 짚으로 살을 붙이고 새끼줄로 동여맨 다음 그 위에다 솔가지를 밑에서부터 차례로 빽빽이 꽂아서 마무리하는데 이 ‘솔 문’에는 반드시 그날의 뜻을 쓰거나 다른 색의 나무토막으로 새기거나 하는데 여기엔 반드시 ‘축’ 자가 한가운데 달리거나 ‘경축’을 한 자씩 나누어 양옆에다가 다는 것이 예사였다.
완성된 ‘솔 문’을 지나다닐 때의 기분은 나쁘지 않다. 솔가지 냄새와 볏짚 냄새가 섞여서 마치 골짜기의 다락 논둑을 걷는 향내를 뿜는다.
농촌에서 구할 수 있는 흔한 재료이지만 만든 사람들의 정성이 깃들어 있어서 정감이 가고, 요새 철재로 만든 ‘아치’에 비해서 단명하지만 대신 싱싱하여 생동감이 넘치고 푸른 기상도 품고 있다.
이렇게 보면 요새 만드는 나무나 철제문은 죽은 문이나 다름없다. 좀 더 축제의 맛을 높이려면 살아 있는 꽃이나 풀잎으로 하면 좋으련만, 혼자 생각일 따름이다. 꿈같은 얘기이지만 그날의 주인, 곧 생일을 맞은 사람에게 사람들이 어울려서 작은 ‘솔 문’이라도 만들어 통과시키면 그는 아마 새로 태어난 느낌이 들 것이다.
문(門)은 크고 헐겁고 탁 트인 느낌이고 구(口)는 비좁은 일방통행이거나 정상적인 출입이 아닌 느낌을 주는 것은 아마도 옛사람들의 기준으로 보아서 문은 신분이 높고 벼슬이 큰 사람, 구는 신분이 낮고 벼슬이 없거나 상인, 천민이 드나드는 곳을 이르는 것 같다. 문도 좁아서 아예 문을 없이한다는 사람조차도 있다.
옛사람의 문에 대한 인식은 통과함으로써 새로운 각오와 삶을, 또는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하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이 문을 통과함으로써 그렇게 됐음을 자인하고 싶어서 문을 만들고 드나드는 것이리라.
하늘에서 내려다본다면 문은 한 지점에 돌출한 지상의 구조물일 뿐인데 왜 그곳을 통과했나 안 했나를 생각하며 고뇌하며, 그 구조물을 뚫고 안으로 들어갔느냐 못 들어갔느냐를 따지는지 모르겠다. 이것은 인간들의 한계를 드러낸 증표이다. 새들을 보라 그들은 문도 없고 출입구도 없어도 잘만 살아간다.
소나무와 우리들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태어날 때 궁문(宮門)을 빠져나왔대서 ‘송침(松針)’으로 알리고, 죽을 때에 소나무 관을 쓰고, 살아갈 때 솔잎으로 떡을 빚고, 액땜할 때도 소나무에다 귀신을 올려서 살아있는 주인에게 잡게 해서 귀신의 이름으로 훈계하고, 또 서낭당은 동네의 모든 액운을 쥐고 있어서 일 년에 한 번씩 제사를 지내야 하는 마을이 태반이다.
‘솔 문’은 그래서 우리에게 좋은 행운을 갖다주는 문으로 믿어도 될듯하나 이 ‘솔 문’을 만드는 고장을 보지 못했다.
좋은 풍습인 것 같은데 잊힌 지 오래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