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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고치는 학생

1843.010229 문 고치는 학생

이제 막 둘째 시간이 끝났다. 교실 안은 와글와글 온통 북새통같이 뒤범벅이 되고 나가는 놈 들어오는 놈, 할 것 없이 입을 다문 놈은 하나도 없다.

 

짝을 부르고 친구를 부르고, 하다가 종이 울리면서 조용해졌다. 아직 선생님은 들어오질 않았다.

 

이윽고 밀문이 드르르 열리더니 선생님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들어오는데 이게 누군가 하니 우리 앞집에서 살다가 아랫동네로 이사한 독불장군 친구 ‘덕재’다. 그의 오른손에는 망치가 들려있고 우리 반 애들이 일제히 쳐다보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문을 잡고 힘껏 밀었다 당겼다 하면서 소리를 내고 있다.

 

교실 안을 일순에 바람 지나는 밀밭 모양으로 우리 반 모두의 고개가 ‘덕재’ 쪽을 향했다. 그는 계속 그 문을 밀었다 닫았다가 하는 것이, 이 문을 고치는 것을 선생님 어느 한 분이라도 보아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반 선생님이 다른 문으로 들어서서야 그 문 여닫는 덜커덕 소리가 그쳤다. ‘덕재’의 눈은 선생님의 눈과 마주쳤고 문은 조용히 마지막 소리를 내고 공간을 구획했다.

 

‘덕재’는 문을 닫으면서 건너편교실로 발을 물리고 서면서 얼굴을 감추며 사라졌다. 이것이 내가 본 짧은 장면의 전부다.

 

가교사의 시설물을 별도의 관리요원 없이 편파운영을 하다 보니 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언제나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학생이 망치를 들고 교실을 드나드는 꼴을 보는 나의 심사가 편안치 않았다. 그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모름지기 그런 선행을 할 수 없는 내가 비교돼서 상대적 위축인지, 아니면 그의 자기 선행 알리기 방법이 내 성품과 맞지 않아서였는지, 아니면 나와 늘 같은 이웃에서 살던 친구가 돌출행동을 하는 것에 대하여 친구들에게 창피해서 그랬는지는 확연하지 않지만 어쨌든 내 마음에는 안 들었다.

 

‘수업하는 학생이 망치를 들고 문짝을 고친다.’고 하면 우선은 그 느낌이 좋질 않고 어쩐지 거부감 같은 것이 몸에 와 닿는다.

 

학교가 아무리 어려워도 직분을 나누어서 일을 시킬 터인데 학교 측에서 시킨 일은 아닐 테고, 친구가 스스로 알아서 하는 행동이라면 만류하는 것이 옳을 성싶은데 그 기준을 알 수 없으니 그냥 내 마음 한구석에 담아서 갖고 갈 따름이다.

 

생각해 본다.

 

유난히 친교와 붙임성이 좋고 손재주가 남다른 그 친구의 처세가 오늘의 이 마당까지 어떻게 전개되어서 얼마나 보람 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 보고 싶을 뿐이다. 그 친구의 자기만족과 충만한 삶이 어릴 때부터 싹터서 성숙돼가는 과정의 이 한토막이 내 망막을 통해서 인화되어 오늘까지 퇴색되질 않는다. 그러면서 이따금씩 스쳐 흔들리고 지나간다. 보람찬 인생이 됐길 바라면서 면면히 흐른 세월이 판 내 얼굴의 줄음을 바라보며 ‘덕재’의 얼굴을 겹쳐본다.

 

텔레비전에선 삼차이산가족이 눈물을 흠뻑 쏟아내고 있다. 이들의 눈물에 한강이 범람한다 해도 내겐 아무소용 없는, 먼 나라 이야기만 같으니 오히려 눈을 감고 지나간 영인(影印) 필름을 되감는 것이 낫겠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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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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