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문

외통궤적 2008. 7. 9. 14:56

글 찾기 ( 아래 목록 크릭 또는 왼쪽 분류목록 클릭)

외통궤적 외통인생 외통넋두리 외통프리즘 외통묵상 외통나들이 외통논어
외통인생론노트 외통역인생론 시두례 글두레 고사성어 탈무드 질병과 건강
생로병사비밀 회화그림 사진그래픽 조각조형 음악소리 자연경관 자연현상
영상종합 마술요술 연예체육 사적跡蹟迹 일반자료 생활 컴퓨터
2192.010413 닫힌 문

바람이 시원했다.

 

신작로길 동쪽에 늘어선 집집의 그림자가 길 위를 나란히 그어  넓히고 있다.

 

해는 어느새 길가 초가집 지붕위에 올라있다. 길은 하얗게 드러났고 길 양 갓의 봇도랑에서는 티 없이 맑은 물이 구슬같이 흐른다.

 

선생님은 동서남북을, 먼 곳까지 한 바퀴 휙 훑어보시고 발걸음을 옮겼다.

 

한적한 시골의 면소재지다. 이따금 소달구지가 지날 뿐이다. 여느 시골마을처럼 드문드문 말라 있는 쇠똥 위에 신작로 먼지가  뽀얗게 덮여있다. 그래서 선생님은 이곳이 농촌마을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시골이지만 '주막거리'가 있고 갖가지 점포가 늘어서 있는 장터가 또한 이채롭다. 제자거리도 있어서 장터거리임을 느꼈으리라. 두고 온 고향마을과 적지 않은 차이가 있었는지, 몇 번이고 두리번거리면서도 선생님은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으신다. 어제오늘의 급변하는 학교일 때문이리라.

 

 

이 넓은 길을, 선생님과 나는 말없이 학교를 향하여 걸어가기만 한다. 아무도 보는 이 없다. 오직 한길 양쪽에 뿌리박아 늘어선 찌들은 전주에서 녹아내리는 콜타르의 방울방울이 눈물겹다.

 

 

우리에겐 아무런 혜택도 주지 못하는 전신주와  밤 한 때나마 불을 밝혀주는 전기선기둥만 도열(堵列)하여 사제(師弟)를 전송할 뿐이다.

 

이 길 양옆의 전봇대는 우리 고장의 상징적 조형으로 여겨서 내가 내 고장을 늘 자부(自負)하였다. 내가 사는 동네는 오로지 그것밖에 없다. 외형적인 문명의 상징물이었기에, 늘 거리의 한 끝에서 다른 한 끝을 바라보며 거미줄같이 얽인 전선을 자랑거리로 여겼음을 상기하면서, 좌우로 도열한 검은 전주를 하나하나 눈여겨보고 세다시피 하면서 지나간다.

 

 

천애(天涯)고아도 아닌데, 이날이 내 망막에 이렇게 비치어 마지막으로 장식될 줄은 그때엔 짐작조차하지 못했다. 또한 간혹 물끄러미 내다보는 점포의 주인들도 예사롭지 않은 둘의 걸음걸이가 우리의 앞날에 상상할 수 없는 변고의 첫걸음이었음을 어찌 짐작이나 하였겠는가?

 

 

둘은 같은 길을 걷되 생각은 각각이었다. 선생님은 실적이 없어서 고뇌하고, 제자는 앞날을 점칠 수 없어서 초조하다. 어쩌면 선생님은 이나마 당의 명령을 이행한 흔적이라도 있어서 위안 받고 있을 것이다. 아니, 다녀오지도 않고 다녀왔다고 하다가 자아비판을 해야하는 고충을 면할 수 있어서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지도 모른다.

 

훗날 이렇게도 생각해보았다. 내 손가락이 아프지 않았던들 그 시간엔 이미 집을 비우고 들에 나갔을 것이고, 그러면 선생님은 헛걸음을 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왜 하필이면 이 날 생손가락을 앓아서 들에 나가지 못했는지? 따라서 선생님과 맛 부닥쳤는지?  이 손가락이 내 운명을 가를 줄은 그때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또 내가 이날 들일을 하러 나갔으면 우리 집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고 선생님은 기어이 ‘환정’이네 어머니를 모시고 ‘환정’이를 찾았을 것이며 어김없이 데리고 갔을 것이다. 이렇게 됐더라면 ‘환정’이와 내 운명은 정반대로 바꾸어졌을지도 모른다. 내 길은 여기서부터 기구하게 됐다.

 

말뚝처럼 다듬어진 아카시아 가로수가 잎을 피워서 자갈길 신작로의 가장자리를 사다리모양으로 그늘 지워 얼룩져 있다. 아카시아 가로수는 자전거와 사람이 지나다니리만큼 만들어진 길가의 자갈 없는 길 한쪽만 그늘지우고 있다.

왼쪽의 다른 가로수 아카시아 행렬의 그림자는 파란 논바닥의 벼를 검게 물 드리고 사다리 발판을 만들어서 이어져있다. 잠시 앉아서 숨을 고르며 ‘통천’ 읍에 입성(?)하려 한다.

 

읍내는 달랐다. 많은 사람들이 길가에 나와서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수군거리고 있다. 그들 누구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여느 때 같으면 이렇게 한가하게 한자리에 서있지 않고 제각기 볼일을 보려 움직일 텐데, 오늘은 말뚝처럼 서서 근심어린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교복을 입은 나를 보고 그들의 고개가 또 분주히 좌우로 움직인다. 아마도 많은 학생들이 조금 전까지 이 길을 통해서 인솔되어 갔는가보다. 그들은 내 뒤에 오는 다른 면에서 인솔되어 오는 다음 학생들의 통과를 수군거리며 지켜볼 것이다. 하나같이 그들의 아들 동생 오빠들의 처지를 생각하면서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햇볕은 내 검은 모자를 뜨겁게 달구었고 돌가루 먼지는 내 가랑이를 하얗게 물들였다. 거리의 사람들은 먼 길을 걸어온 선생님과 나의 발걸음을 유심히 보며 우리가 오는 먼 길을 가늠하고 있다.

 

 

수중에 돈 한 푼 없으니 그 많은 음식점을 지나치면서도 곁눈질만 하는 형편, 시간을 다투는 담임선생님의 거동으로 보아 차라리 잘되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조금만 더 걸으면, 아니다. 아직도 절반밖에 못 왔으니 고모네 집에 닿으려면 시오리는 족히 걸어가야만 한다. 나는 여전히 점심값의 희망을 고모네 집에 두며 걷고 있다. 아니 오늘 하루의 빈손, 배고픔은 적어도 고모네 집까지 가는 동안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니 배고픔은 어느덧 사라졌다. 생손가락은 이미 고비를 넘겼는지, 생체의 한 낮 활동리듬에 가려서 아픔을 숨기고 있는 것인지, 누렇게 곪았으면서도 통증은 말끔하게 사라졌다.

 

 

시오리 길을 단숨에 달려서 학교가 있는 ‘오릿말’에 들어섰다. ‘민청회’를 한다던 선생님은 학교로 들어서기는커녕 멈칫거림도 없이 더 빠른 걸음으로 읍내로 굽어들며 팔을 젓는다.

 

불길한 내 예감은 적중했다. 그리고 내 행동도 역시 반사적으로 민첩해졌다. ‘선생님 여기 고모네 집에 잠깐 들렀다 갔으면 합니다.’고 말하며 한 걸음을 뛰어서 선생님의 팔을 잡았다. 선생님의 마음은 더 급했을 것이다. 회의의 종료시간을 미리 알고 계셨는지 선생님의 걸음이 더 빨라지던 터였다. 선생님은 그 자리에 서시고 나는 쏜살같이 오른쪽 길가의 초가집 대문 앞으로 달려갔다.

 

‘고모! 고모!, 누야! 누야!’ 다급하게 연거푸 불러도 대답이 없다. 대문은 빗장을 걸어서 굳게 잠겨있다. 돌아가서 아래채 샛문을 보았다. 거기엔 검고 기다란 옛날 무쇠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아래윗집의 형편도 마찬가지다. 인기척이 없다. 이 짧은 시간에  내 지극히 작은 바람은 해풍을 타고 멀리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가슴속이 텅 비는 것 같았다. 이제 내 급박한 소식도, 돈 한 푼 없는 털털이신세도, 아무에게도 호소할 수 없고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게 됐다.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옳으냐? 만감이 교차했다. 한 가닥 희망은 지난번 ‘민청 회’때 전체결의로 동원되어 신체검사를 했을 때 체중미달로 떨어졌으니 이번에도 떨어지리라는 기대, 그 하나에 밖엔 없다.

 

선생님은 내 사정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알아도 모르는 체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군사 동원 부’를 향해서 또 오리를 가고 있다.

 

학교에 오기까지는 ‘민청회’를 핑계로 비교적 포근한 마음으로 오셨지만 완전히 드러난 징발(徵發)의 형태를 제자에게 노출시켰음을 자각하는 선생님의 시선은 내 몸에서 떠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인솔하여 인계하여야 선생님의 임무를 다하는 것으로 생각했으리라. 선생님은 이제 나와 나란히 걸을 뿐 절대로 앞서거나 뒤처지질 않는다.

이렇게 우리는 세 시쯤 돼서야 ‘군사동원부’에 당도했다. 나는 이때부터 이미 계획된 '동원의 구멍'을 땜질하는 납덩이가 되어 있었다. /외통-



'외통궤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과밭  (0) 2008.07.09
화차1 속  (0) 2008.07.09
운명의 날  (0) 2008.07.09
방학생활  (0) 2008.07.09
방학  (0) 2008.07.08
Posted by 외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