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문

외통궤적 2008. 7. 9.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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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시원했다. 신작로길 동쪽에 늘어선 집집의 그림자가 신작로를 나란히 좁혀, 좁혀놓았다. 해가 집집의 지붕 위에 올라 있다. 길은 하얗게 드러났고 길 양 갓의 봇도랑에서는 맑은 물이 구슬같이 흐른다.

선생님은 동서남북을, 먼 곳까지 한 바퀴 훑어보시고 걸음을 떼었다.

한적한 시골의 ‘면 소재지’다. 이따금 소달구지가 지날 뿐이다. 여느 시골 마을처럼 드문드문 쇠똥이 말라 있고 ‘신작로’에서 인 뽀얀 먼지가 그 위에 덮여서 이곳이 농촌 마을임을 직감할 수 있다. 시골이지만 주막거리가 있고 갖가지 점포가 늘어서 있는, 장터가 또한 이채롭다. ‘저자’도 있어서 장터거리임을 느꼈으리라. 두고 온 고향마을과 적잖은 차이가 있었는지, 몇 번이고 두리번거리면서도, 선생님은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으신다. 어제오늘의 급변하는 ‘학교 일’ 때문이리라.

이 넓은 길을, 선생님과 나는 묵묵히 걸어가기만 한다. 아무도 보는 이 없다. 오직 한길 양쪽에 뿌리박아 늘어선 찌들은 전주에서 녹아내리는 콜타르의 방울 방울이 눈물겹다.

우리에겐 아무런 혜택도 주지 못하는 전화선 전신주와 그나마 밤 한때 불을 밝혀주는 전봇대가 도열(堵列)하여 사제(師弟)를 전송할 뿐이다. 길 양옆의 전봇대는 우리 고장의 상징적 조형으로 여겨서 내가 내 고장을 자부(自負)하였다.

내가 사는 동네는 오로지 그것밖에 없다. 외형적인 문명의 상징물이었기에, 늘 거리의 한끝에서 다른 끝을 바라보며, 거미줄같이 얽어진 전깃줄을 자랑거리로 여겼음을 상기하면서, 좌우로 나란히 꽂힌 검은 전주를 하나하나 눈여겨보고 세다시피 하면서 지나간다.

천애(天涯) 고아도 아닌데, 이날이 내 망막에 이렇게 비치어 마지막으로 장식될 줄은 그때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또한 간혹 물끄러미 내다보는 점포의 주인들도 예사롭지 않은 둘의 걸음걸이가 우리의 앞날에 상상할 수 없는 변고의 첫걸음이었음을 짐작하지는 못하였으리라.

둘은 같은 신작로 길을 걷되 생각은 서로 다르다. 선생님은 실적이 없어서 고뇌하고, 제자는 앞날을 점칠 수 없어서 초조하다. 어쩌면 선생님은 이나마 당의 명령을 이행한 흔적이라도 있어서 위안받고 있을 것이다. 아니, 다녀오지도 않고 다녀왔다고 하는, 자아비판을 면할 수 있어서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지도 모른다.

훗날 이렇게도 생각해 보았다.

손가락이 아프지 않았던들 집을 비우고 들에 나갔을 것이고, 그러면 선생님은 헛걸음을 쳤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하필이면 이날 손가락을 앓아서 들에 나가지 못했는지? 따라서 선생님과 맞부닥쳤는지? 이 손가락이 내 운명을 가를 줄은, 그때엔 생각조차 못 했다. 또 내가 이날 들일 하러 나갔으면 우리 집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고, 선생님은 기어이 ‘정환’이네 어머니를 모시고 ‘정환’이를 찾았을 것이며, 어김없이 데리고 갔을 것이다. 이렇게 됐더라면 ‘정환’이와 내 운명은 정반대로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내 길은 여기서부터 기구하게 됐다.

말뚝 같던 아카시아 가로수가 잎을 피워서 자갈길 신작로 가를 사다리 모양으로 그늘 지워 얼룩져 있다. 아카시아 가로수는 자전거와 사람이 지나다니리만큼 만들어진 길가의 자갈 없는 길 한쪽만 그늘 지우고 있다. 왼쪽의 다른 가로수 아카시아 행렬의 그림자는 파란 논바닥의 벼를 검게, 물들이고 사다리 발판을 만들어 이어가고 있다.

잠시 앉아서 숨을 고르며 ‘통천’ 읍에 입성(?)하려 한다.

읍내는 달랐다. 많은 사람이 길가에 나와서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수군거리고 있다. 그들 누구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여느 때 같으면 이렇게 한가하게 한자리에 서 있질 않고 제각기 볼일을 보려 움직일 텐데, 오늘은 말뚝처럼 서서 근심의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교복 입은 나를 보고 그들의 고개가 또 분주히 좌우로 움직인다. 아마도 많은 학생이 조금 전까지 이 길을 통해서 인솔되어 갔는가 보다. 그들은 내 뒤에 오는 다음 학생들의 통과를 수군거리며 지켜볼 것이다. 하나같이 그들의 아들 동생 오빠들의 처지를 생각하면서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햇볕은 내 검은 모자를 뜨겁게 달구었고 돌가루 먼지는 내 가랑이를 하얗게 물들였다. 거리의 사람들은 먼 길을 걸어온 선생님과 나의 발걸음을 유심히 보며 우리가 오는 먼 길을 가늠하고 있다.

수중에 돈 한 푼 없으니 그 많은 음식점을 지나치면서도 곁눈질만 하는 형편, 시간을 다투는 담임선생님의 거동으로 보아 차라리 잘되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조금만 더 걸으면, 아니다. 아직도 절반밖에 못 왔으니, 고모네 집에 닿으려면 시오리는 족히 걸어가야만 하련만 나는 여전히 희망을 고모네 집에 걸고 있다.

아니 오늘 하루의 빈손, 배고픔은 적어도 고모네 집까지 가는 동안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니 배고픔은 어느덧 사라졌다. 생 손가락은 이미 고비를 넘겼는지, 생체의 한낮 활동 리듬에 가려서 아픔을 숨기고 있는 것인지, 누렇게 곪았으면서도 통증은 말끔하게 사라졌다.

시오리 길을 쉼 없이 걸어서 학교가 있는 ‘오릿말:五柳里’에 들어섰다. ‘민청 회’ 한다던 선생님은 학교로 들어서기는커녕, 멈칫거림도 없이 더 빠른 걸음으로 읍내로 굽어들며 팔을 젓는다. 불길한 내 예감은 적중했다.

그리고 내 행동도 역시 반사적으로 민첩해졌다.

‘선생님 여기 고모네 집에 잠깐 들렀다 가렵니다.’

고 말하며 한 걸음을 뛰어서 선생님의 팔을 잡았다. 선생님의 마음은 더 급했을 것이다. 회의의 종료(終了)를 미리 알고 계셨는지, 걸음이 더 빨라지던 참이었다.

선생님은 그 자리에 섰고, 나는 쏜살같이 오른쪽 길가의 초가집 대문 앞으로 달려갔다.

‘고모! 고모!, 누야! 누야!’

다급하게 연거푸 불러도 대답 없다. 대문은 빗장을 걸어서 굳게 잠겨있다. 돌아가서 아래채 샛문을 보았다. 거기엔 검고 기다란 옛날 무쇠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아래윗집의 형편도 마찬가지다. 인기척이 없다.

내 지극히 작은 바람은 해풍을 타고 멀리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가슴속이 텅 비는 것 같았다. 이제 내 급박한 소식도, 돈 한 푼 없는 털털이 신세도, 아무에게도 호소할 수 없고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게 됐다.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옳으냐?

만감이 교차했다.

한 가닥 희망은 지난번 ‘민청 회’ 때 ‘전체 결의’로 동원되어 신체검사했을 때 체중미달로 불참 됐으므로 이번에도 떨어지리라는 기대밖엔 별수 없다. 선생님은 내 사정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알아도 모른 체 할 수밖에 없을 테다.

‘군사 동원 부’를 향해서 또 오리를 가고 있다.

학교에 오기까지는 ‘민청 회’를 핑계로 비교적 포근한 마음으로 왔지만, 완전히 드러난 징발(徵發)의 형태를 자각하리라고 여긴 선생님 시선은 내 몸에서 떠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인솔하여 인계하여야 선생님의 임무를 다하는 것으로 생각했으리라.

선생님은 이제 나와 나란히 걸을 뿐, 전혀 앞서시질 않는다.

이래서 우리는 세 시쯤 돼서야 ‘군사 동원 부’에 당도했다. 난 이때부터 이미 계획된 ‘동원의 구멍’을 땜질하는 납덩이가 되어 있었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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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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