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밭

외통궤적 2008. 7. 9.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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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4.010415 사과밭

이슬이 방울방울 맺힌 풀숲을 헤치며 사과나무 밑을 허리 굽혀서 들어갔다. 멀리, 사과밭 한가운데까지 깊숙이 숨겨지는 우리들이었다.

 

이따금씩 공습경보음이 짧게 숨 막히게 울어댈 때면 일제히 그 자리에 엎드려서 비행기가 지나갈 때까지, 경보가 해지될 때까지 죽은 듯이 있어야 했다. 이곳이 노출된다면 모든 과수원은 폭격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생각, 그리하여 앞으로는 예비 병력의 이동경로를 새로운 방법으로 창출해야하는 부담을 생각했던지 민간인인 우리를 군인이상으로 취급하고 경고와 통제를 가하였다.

 

이곳이 이 지역의 병력 후보자들의 집결지로 이미 자리 잡았고 모든 시설을 갖추어 놓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수원은 철조망으로 둘러져 있다. 이 과수원이 우리의 가두리장이 되어 있었다.

 

햇살이 사과나무 잎 사이를 뚫고 우리들이 자리한 흙을 부스러뜨리기 시작할 무렵에 또 주먹밥이 배달되었다. 물을 먹으러 언덕 위의 과수원집까지 한참을 가야한다. 이미 많은 학생이 몰려와서 각자의 앞날을 모른 채 물만 들이 키고 있다. 모름지기 여기서부터는 학교별 지역별 집단을 분산시켜 버무린 무리를 만들어서 관리하는 것 같았다.

 

 

줄을 서서 기다리며 생각한다. 혹여 이곳에서는 오십 킬로그램 이상 만 데려가는 건 아닐지, 또 실낱같은 희망을 싹틔우고 기다리지만 이번에도 희망은 희망일 뿐이었다.

 

시력검사와 혈액형검사가 그 전부였다. 허긴, 보여야 총을 쏘며 싸울 테니까 그 실은 응당하고, 부상당했을 때 수혈을 해야 하니까 그것 또한 당연한 조치였다. 명분은 전원 지원자의 무리로 되어서 행동은 비교적 자유롭고 평온하였다. 이렇게 과수원 넓은 밭은 검은 교복의 학생들로 가득 찼다. 과수원은 검은 염소 떼에 의해서 완전점령 당했다.

 

 

과수원, 이는 농촌에서 자라는 내가 부러워하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거위가 꺽꺽거리고 키 크고 사나워 보이는 ‘세퍼트’개가 목에다가 두꺼운 벨트를 두르고 노려보는, 범접하기 어려운 성채와도 같은 곳이었다. 이제 내가 그 한가운데서 시퍼런 풋사과를 무수히 머리 위에 이고 이 사과들이 얼마 있지 않아서 내 고향 ‘염성’으로 팔려갈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팔베개를 고친다.

 

 

사과는 팔려가리만치 익지 못했다. 무게도 아직은 차질 못했으니 이 풋사과는 어미인 나무 가지에서 떨어질 수 없어서, 튼튼한 꼭지가 가지를 붙들고 햇살을 받아가며 그 싱싱한 몸을 평안히 연분홍색으로 물들여가고 있다.

 

주인은 무르익은 열매만이 세상 밖으로 내보내리라. 나는 아직 풋사과인데! 나는 아직 덜 익었는데! 내 마음은 야멸치게 달린 사과를 바라보며 사과의 맛에 유혹되기는커녕 오히려 사과가 오래오래 나무에 달려있기를 바란다.

 

 

사과나무 잎 사이사이로 올려다 보이는 파란 하늘 위에 흐르는 쇠털구름에 마음을 실었다. 구름은 내가 떠나온 곳, 남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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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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