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유혹

외통궤적 2008. 7. 9.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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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5.010416 탈출유혹

자유로이 과수원 밖을 드나들 수 있고, 마음대로 움직여도 아직은 아무런 통제가 없다.

‘얼마 남지 않은 남조선해방의 마지막 마무리를 위해 궐기(蹶起)하자.’는 끊임없는 방송에, 여기 모인 학생들은 고무되었고, 방송으로 듣는 전황을 통해서 실제로 얼마 남지 않은 기간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열성 ‘맹원(盟員)’과 극 열 ‘노동당원’도 함께 있어서인지, 분위기는 사뭇 고조되어 누구 하나 머뭇거림이 없는 듯, 진지하다.

적어도 외적 상황으로는 그랬다.

샐만한 틈을 막아놓았기 때문에, 그들의 저인망 그물이고 멸치 한 마리도 샐 수 없기에, 그들의 배포는 느긋했다. 오히려 참여기회를 너희에게만 먼저 베푸는 혜택임을 자각하여 명심하라는 게다.

선무(宣撫)는 전쟁 발발(勃發) 이래 끊임없이 계속되었으므로 추호도 패전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참전을 오히려 영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리하여 신체검사를 마친 학생은 ‘저녁 아무 때까지’는 자유시간을 준다는 것이다.

이제 내 마음은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기회는 왔다.

이 시간 이후 내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 앞으로 몇 시간은 내가 탈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가슴이 설레었다.

팔베개 털고 허공을 걷어차며 벌떡 일어났다. 주위를 살핀다. 의심할 사람 하나 없다. 피차가 피가 끓어서 용솟음치고, 이 한 ‘성전(?)’에 참여하고자 앞장선 사람들이니까? 한시바삐 전선으로 내닫도록 몰아주기만을 초를 다투어 고대하는 피 끓는 젊은이들이다.

나 또한 그런 충동을 느끼고 있음은 숨길 수 없다. 젊음, 이는 값지다. 청춘의 영예를 드높이고 젊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을 포기함은 젊음, 그 자체를 포기함과, 같다.

마음은 점점 미궁으로 빠지고 있다. 가정한다. 만약, 내가 기피 한다면 고향으로 돌아가서 부모님을 돕거나 학교에서 공부를 계속하거나 두 가지 중의 하나일 것이다. 당연하게 감시의 화살이 나를 향해서 구석구석 찾아들 것이고 이를 피하느라 심신은 물론 부모님께 오히려 걱정거리가 되어서 그나마 고통 중에 계신 아버지의 환우(患憂)가 깊어질 것이고, 하여 결국은 내 일신의 평안으로만 되는 졸렬한 행동으로 귀결될 것이다.

이런 상정(想定)은 방학 동안 집에 있을 때 ‘인민위원회’에서 나를 찾아다니든 예를 보아서도 틀림없을 것이고, 학교 공부는 담임선생의 질시와 반복되는 타의에 의한 ‘지원 입대’의 틀 속에서 견디지 못하고 허물어질 것이다.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에 개교는 될성부르지도 않았다. 까닭은 분명하다. 학교가 징집의 창구이기에 어느 부모가 학교에 보내겠는가 말이다. 하여, 학교 공부는 공부대로 이어 나가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기회를 나의 쪽으로 당겨서 유리하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머니의 얼굴이 크게 떠올랐다.

어머니는 말이 없으셨다.

어머니, 제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어머니를 도와야 하련만 이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어머니 나는 꼭 살아서 돌아와 아버지 뒤를 이어 집안을 이끌고, 어머니를 도와서 동생들을 돌볼 것입니다.

굳어졌다. 결심했다. 내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주위의 학생들은 하나둘 제각각의 자유시간을 즐기기 위해서 과수원 앞 간이점포에 가는 것 같았다. 혹 이탈하여 단체행동에서 낙오되어 ‘성스러운(?)’ 전쟁터에 나갈 수 없을까, 보아 멀리 나가지 않았다.

많은 학생이 기회를 만난 듯 움직였다. 저들이 갖고 온 돈에 의지해서 얽히는 마음을 달랬다. 먹을 것에 사로잡혀 위로하려 들었다.

그러나 난 한 푼의 돈도 수중에 없는, 적수공권(赤手空拳)의 시골뜨기와 다름이 아니다. 모든 게 설다. 산천도 사람도 풍물도, 나도 모르게 내 마음도 설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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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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