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몇 그루가 하늘을 가리고 한쪽 구석에 서 있는, 넓은 운동장에 각지에서 모인 학생들이 새까맣게 줄지어 앉아 있다.
교문에 들어서기 전에 보인 담, 울 쳐진 높은 축대가 우리를 압도했다. 어두운 밤에, 보이는 모든 게 크고 웅장해서 내 기를 죽이고 있다.
이런 느낌도 잠깐, 내가 서 있는 현실에서 그때마다 잘 녹아 수용되는 젊은 탄력의 탓이었는지, 어느덧 보이는 모든 게 익숙해 저 내 있을 곳으로, 아늑하게 변해갔다.
날이 밝았다.
운동장 한구석 아카시아 밑에 있는 수도 가엔 어느새 학생들이 새까맣게 모여들어서 하루의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밝은 아침이지만 시야에 드는 곳은 푸른 숲으로 둘러쳐져서 아직은 침침하다. 보이는 것은 모두가 크고 오래되어 보인다. 나무는 모조리 몇천 년을 산 듯이 몇 아름씩 굵고, 하늘을 가려 습기마저 가득 머금고 버텨있다.
또한 보이는 건물의 모든 축대는 크고 정교하게 다듬어진 네모진 돌로 깊이 뿌리박아, 서로 악다물어 빈틈없이 이가 맞아 있다. 이 돌 축대들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흑갈색을 벗고 넘어 짙은 녹색의 충충한 빛을 내고 있다.
나무 사이사이로 눈길에 드는 집들은 고색이 창연하다. 뉘 집, 몇 층인가에 매달린 동창에 나무숲을 뚫은 햇빛이 깊이깊이 스며서 구석구석을 훑어내듯이 비추다가 유리문에 반사되어 내 눈을 부시게 한다.
내 눈에는 모든 게 웅장하고 새롭게 비쳤다.
개구리가 우물 밖에 나온, 내 처지다.
태양은 땅 위의 모두에 인사하며 오늘을 축복한다. 잠시 고개를 돌렸다.
곤한 하루가 몇 시간의 교실 바닥 위의 새우잠으로도 말끔하게 씻어졌다. 아무런 침구가 없더라도 우리의 약동 생체리듬은 스스로 잘 조절해 내는 것, 역시 젊음은 무한한 잠재력을 지녔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 먼 이곳까지 와있다.
복더위 한낮은 불볕을 쏟아 내린다. 나뭇잎은 축축 늘어져서 힘겹게 버티고 있지만 떠나온 고향 집 싸리울에 올라 익어 가는 호박이나 낮은 초가지붕 위에서 늘어져서 졸고 있는 박 넝쿨은 찾아볼 수 없어서, 더욱 이곳이 내가 사는 곳, 내 고향이 아님을 확인하게 한다.
나는 집에서 점점 멀어만 간다.
모인 학생 중 내가 그들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행색이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것,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으려니와 잠시의 행색인데 왜 마음 쓰겠나 싶어서, 오히려 무디게 반응하기로 마음을 다지니 편하다.
단지 눈앞에 벌어지는 새로운 것에 더 민감히 반응하여 모든 게 새로워 신기하기만 했다.
음료수 행상 손수레가 운동장 안으로 슬그머니 들어와서 난전(亂廛)을 벌이니 학생들은 벌 떼같이 모여들어 손수레를 에워싸고 저마다 한 병씩 사서 마시는데, 그 이름조차 처음 들어보는 ‘사이다’다.
먹고 싶은 것을 자기 마음대로 사 먹을 기회, 오늘이 마지막일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아직 맛보지 못한 별미의 유혹에 빠지고 말았다.
내 옷 속주머니에 들어있는 이 돈을 털어서 ‘사이다’를 사 먹어 버린다면 앞길을 예측할 수 없는 때의 위난(危難)에 무슨 수로 대비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망설였다.
나는 모험을 한다.
이것은 내게 준 기회이자 세상을 맛보는 시음(試飮)이니 결행(決行)하기로 했다. 몽땅 털어서 보니 사이다 한 병을 사고도 조금은 남는다. 입에 대고 한 모금을 들이켰다. 세상을 녹이는 쾌감과 하늘을 날아오르는 용솟음을 맛보았다.
공습경보가 울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쌕새기’ 비행기 소리가 멀리 사라진다. 거품 일으키든 사이다는 용트림을 일으키며 입 밖으로 솟아 나왔다.
이 트림은 이제까지의 나를 속박하든 모든 잡념을 속에서부터 씻어내어 새로운 인간으로 개조하려는 듯, 나의 자학적(自虐的) 의지(意志)를 조소(嘲笑)라도 하듯, 훑어 나와서 저기 멀어져 가는 ‘쌕새기’ 비행기 소리와 어우러져서 훑어졌다. 그래서 그 소리는 아무도 들을 수 없었다.
교실 바닥은 주방이자 식당이자 침실이다. 여기서 주먹밥으로 점심 겸 저녁을 먹은 후였다.
운동장에서는 모인 학생을 재편(再編)하고 있었다. 흐름은 고학년학생과 저학년 학생을 분리해서 편성하는 것을 느꼈지만, 그 실은 나이 스무 살 이상과 미만을 가르고 있었는데, 그 영문을 알지 못했다. 그때부턴 구분 행동을 하게 되었다.
훗날, 지극히 짧은 훈련을 함께 마치고 남으로 내몰릴 때 그들은 어김없는 급조된 ‘군관’의 지위, 별을 달 줄은 그때는 전혀 몰랐다.
운명을 같이할 동료여서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더불어 행동한다는 공감이 어느새 싹트고 있었다. 연대의식(連帶意識)이다. 나를 아는 체하는 학생이 생겼어도 모두가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떨어질세라 바싹 붙어서 외등 하나 없는 평양 거리의 전찻길을 따라서 얼마를 걸어갔는지, 갔다.
강물이 흐르는 둑 가에 늘어섰다.
‘대동강’을 나룻배로 건너려는 참이다.
그 많은 학생을 나룻배로 건너서 보내야 하는 사정이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그저 묵묵히 자석처럼 서로 얽혀서 잘도 따라붙어 나룻배에 오른다.
몇 번의 왕복 끝에 우리는 모두 ‘대동강’을 건넜다. 이로써 ‘동평양 제일중학교’를 떠난 후 대피를 반복하면서 몇 시간이나 걸려서 드디어 ‘서 평양역’에 무사히 닿을 수가 있었다.
공습은 여전히 시가지를 환하게 밝히면서 계속되고 있다.
어둠을 헤치고 화차에 올랐다. 또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다. 세상은 들끓는 가마솥과 같이, 뒤죽박죽이 되어 가는 것 같았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