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 이런 방법도 있고나 ! 내가 또 하나의 새로운 물건과 부닥치면서 일으킨 반향이다 . 하얀 여덟모 자비 광목 주머니 속에다 소여물을 잔득 집어넣고 마무리한 매트리스는 우선은 온기와 습기를 보지 ( 保持 ) 하고 탄력마저 유지하고 있어 간이침대로는 안성맞춤이다 . 이것은 우리 농촌에서 얼마든지 갖추고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눈이 번쩍 뜨였다 . 잠시 우리 시골의 살림이 주마등같이 스쳤다 .
베개도 이런 식으로 짚을 썰어서 넣은 것인데 오래 사용하면 아마도 먼지와 부스러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았으나 이런 생각은 호화로운 생각일 뿐이다 . 하얀 광목 덮개는 한여름의 밤새기에 알맞게 가볍고 산뜻한 홑이불이 되어서 가지런하게 개켜있다 .
불확실한 여러 날을 보내면서 심리적인 안정을 얻지 못하여 하늘의 뜬구름만 올려보든 내가 이 매트리스를 보고야 가라앉기 시작했다 . 물 위를 떠다니든 풀씨 하나가 물가의 가장자리에 밀렸고 울렁이는 여울에 떠받혀서 흙 위에 겨우 올라붙었다 . 거기서 실 같은 뿌리를 내리는 것처럼 , 불안하지만 생명의 끈을 붙잡은 듯했다 . 지극히 다행스러운 , 안도와 평온함을 느끼며 깊은 잠을 잘 수가 있었다 .
지나간 것은 모두 아름다운 것 , 온 세상의 고뇌와 번민 ( 煩悶 ) 을 혼자서 짊어진 듯이 몸부림치고 애태우든 집안일도 , 부모님과 할머니 , 누님 동생들의 일도 , 학업을 통해 이루려던 장래의 소망도 , 먼 나라의 일처럼 체념하며 아득하게 멀어져 가는 것을 꿈속에서나마 느꼈을 것이다 . 기억되지 않는다 . 아니 바로 속죄의 구렁을 한없이 헤매다가 깨었으리라 .
운명을 가름하는 생 손가락 아픔으로 왼쪽 장지의 손톱이 빠지려 흔들거리고 있으니 아마도 묵은 허물을 벗고 새로운 삶의 시작임을 증거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기상 나팔소리는 없었다 . 선임 사관의 구령에 일어났고 일러준 대로의 침구 정돈에 그리 어려움은 없었지만 , 정돈 후 교실을 빠져나가는 내 순서는 후미에 겨우 닿아 있었다 . 운동장에 선착순으로 정렬하여서 조기 체조와 세면을 마치고 일찌감치 산으로 올라간다 . 모든 일과가 여기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 날이 어두워서야 돌아오고 , 잘 때만 침실인 교실에 들어간다 .
첫날의 일과는 모든 병영 생활을 익히는 하루였다 .
처음 먹어 보는 여름 한낮의 미역국은 이제까지는 먹어 보지 못한 별미였으나 입에 당기지는 않았다 . 입에 안 맞는다고 가려서 줄 일도 없는 것 , 이것이 주식인 것을 알게 되면서 마음을 새롭게 다져간다 . 미역국에 돼지비계가 몇 점이 둥둥 떠 헤엄친다 . 얇고 가벼운 동그란 납 그릇은 국을 담아 손으로 바치기에는 너무나 뜨겁다 . 모두 나름으로 손을 보호하며 받아먹어야 한다 . 운반되어온 나무밥통에서 사관이 퍼주는 밥의 양은 부족하질 않았다 . ‘ 세계에서 제일 잘 먹는 ’ 군대라면서 자긍심을 갖으라고는 하지만 영양비교검토나 칼로리 수치증거를 대는 것도 아니면서 무턱대고 제일 잘 먹는다니 그렇게 알밖에 없다 .
황해도 < 황주 > 사과는 품종이 조생종인지 , 이미 우리의 후식으로 등장하고 있다 . 가히 사과의 고장답다 .
푸른 사과를 칼날 같은 앞니로 내리 물어 자를 때 퉁기는 과즙이 싱그럽다 . 입에서 감도는 달고 향기로운 맛이 황해도 < 황주 > 를 영원히 기억하게 할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