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리스

외통궤적 2008. 7. 10.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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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010421 매트리스

! 이런 방법도 있고나! 내가 또 하나의 새로운 물건과 부닥치면서 일으킨 반향이다. 하얀 여덟모 자비 광목 주머니 속에다 소여물을 잔득 집어넣고 마무리한 매트리스는 우선은 온기와 습기를 보지(保持)하고 탄력마저 유지하고 있어 간이침대로는 안성맞춤이다. 이것은 우리 농촌에서 얼마든지 갖추고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눈이 번쩍 뜨였다. 잠시 우리 시골의 살림이 주마등같이 스쳤다.

베개도 이런 식으로 짚을 썰어서 넣은 것인데 오래 사용하면 아마도 먼지와 부스러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았으나 이런 생각은 호화로운 생각일 뿐이다. 하얀 광목 덮개는 한여름의 밤새기에 알맞게 가볍고 산뜻한 홑이불이 되어서 가지런하게 개켜있다.

불확실한 여러 날을 보내면서 심리적인 안정을 얻지 못하여 하늘의 뜬구름만 올려보든 내가 이 매트리스를 보고야 가라앉기 시작했다. 물 위를 떠다니든 풀씨 하나가 물가의 가장자리에 밀렸고 울렁이는 여울에 떠받혀서 흙 위에 겨우 올라붙었다. 거기서 실 같은 뿌리를 내리는 것처럼, 불안하지만 생명의 끈을 붙잡은 듯했다. 지극히 다행스러운, 안도와 평온함을 느끼며 깊은 잠을 잘 수가 있었다.

지나간 것은 모두 아름다운 것, 온 세상의 고뇌와 번민(煩悶)을 혼자서 짊어진 듯이 몸부림치고 애태우든 집안일도, 부모님과 할머니, 누님 동생들의 일도, 학업을 통해 이루려던 장래의 소망도, 먼 나라의 일처럼 체념하며 아득하게 멀어져 가는 것을 꿈속에서나마 느꼈을 것이다. 기억되지 않는다. 아니 바로 속죄의 구렁을 한없이 헤매다가 깨었으리라.

운명을 가름하는 생 손가락 아픔으로 왼쪽 장지의 손톱이 빠지려 흔들거리고 있으니 아마도 묵은 허물을 벗고 새로운 삶의 시작임을 증거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상 나팔소리는 없었다. 선임 사관의 구령에 일어났고 일러준 대로의 침구 정돈에 그리 어려움은 없었지만, 정돈 후 교실을 빠져나가는 내 순서는 후미에 겨우 닿아 있었다. 운동장에 선착순으로 정렬하여서 조기 체조와 세면을 마치고 일찌감치 산으로 올라간다. 모든 일과가 여기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날이 어두워서야 돌아오고, 잘 때만 침실인 교실에 들어간다.

첫날의 일과는 모든 병영 생활을 익히는 하루였다.

처음 먹어 보는 여름 한낮의 미역국은 이제까지는 먹어 보지 못한 별미였으나 입에 당기지는 않았다. 입에 안 맞는다고 가려서 줄 일도 없는 것, 이것이 주식인 것을 알게 되면서 마음을 새롭게 다져간다. 미역국에 돼지비계가 몇 점이 둥둥 떠 헤엄친다. 얇고 가벼운 동그란 납 그릇은 국을 담아 손으로 바치기에는 너무나 뜨겁다. 모두 나름으로 손을 보호하며 받아먹어야 한다. 운반되어온 나무밥통에서 사관이 퍼주는 밥의 양은 부족하질 않았다. ‘세계에서 제일 잘 먹는군대라면서 자긍심을 갖으라고는 하지만 영양비교검토나 칼로리 수치증거를 대는 것도 아니면서 무턱대고 제일 잘 먹는다니 그렇게 알밖에 없다.

황해도 <황주> 사과는 품종이 조생종인지, 이미 우리의 후식으로 등장하고 있다. 가히 사과의 고장답다.

푸른 사과를 칼날 같은 앞니로 내리 물어 자를 때 퉁기는 과즙이 싱그럽다. 입에서 감도는 달고 향기로운 맛이 황해도 <황주>를 영원히 기억하게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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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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