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광야에서 달리도록 수만 년 동안 적응되어 발 앞굽이 두껍고 단단하게 발달 되었고 발뒤꿈치는 오히려 퇴화해 두 쪽의 흔적만 남아 쓸모없이 붙어있는 꼴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말이 내게는 낯선 짐승이라서 그런지, 소에 비하여 야성(野性)이 강해 보이고 그래서 서먹하다. 날뛰지 않으면 견뎌 낼 수가 없는 것 같이 설쳐대는 짓이 소같이 친근하지 못하고 무섭기 그지없다.
타보고 싶던 말, 만져보고 싶던 말이 내 눈앞에 성큼 다가와 있다. 그러나 말에 대해서 너무나 모르고 익숙해 있지 않은 나는, 먹이를 주면서도 꽁무니를 뒤로 빼고 주춤거린다. 변칙적인 행동에 말이 도리어 놀라는 기색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지키는 마사(馬舍)의 당번 차례가 한밤중 세시에서 네 시 사이이기 때문에 이 시간에 먹이를 주는 주인은 아직 보지 못했으니, 말의 처지에서 보면 미친 주인이 한밤중에 나타나서 먹고 죽는 비상이라도 주는가 싶었을 게다.
네 마리의 말은 나란히 크게 벌린 한 발쯤 간격으로 한 마리씩 매어져 있다. 학교 운동장에 임시로 만든 간이 마사(馬舍)의 앞쪽 벽은 통째로 없애버려 우리 집 소 외양간과 비교되어 소와 말의 차이를 느끼게 했다. 아마도 기동성을 고려했나 보다.
이 마사 옆에다가 별도로 까대기를 달아내어 그곳 한쪽 옆에 마차가 두 대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수송용으로 더 긴요하게 쓰이는 말인 듯하다.
이 말이 삼경(三更)? 이 지나도록 드러눕질 않는 이상한 동물.
저녁 무렵에 근무 수칙을 일러줄 때다.
'말은 반드시 세워서 재워야 한다.’
그 말만 믿고 말에게 ‘제발 서서 자’라면서 내가 부탁해야 할 만큼 말의 생태를 전혀 모르는 처지에서 당번을 맡았다.
‘시간아 빨리 지나가라! 그래서 내가 맡은 동안에는 제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도록 해’ 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할 판이다.
말(馬)이, 말(言)할 리 없지만 그래도 무엇인가 말하고 싶어서 네 마리의 말 앞에다가 허리를 걸칠만한 걸상 하나를 가져다 놓았다.
말과 나밖에 없으니 말 보고 무엇이라고 할 말을 찾아서 지껄여야 할 텐데, 다루는 말마디를 익히지 못한 내가 말과 묵묵부답으로 있으려니 말인들 무슨 말이 있으랴! 안타깝다.
이왕에 눕지도 않고 자지도 않을 바엔 피차의 사정이나 얘기를 해봤으면 좋으련만 말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잠을 자는지 아니면 조는지, 내 처지를 생각하여 깊은 명상에 잠겼는지, 나하고의 교감(交感)은 전혀 없다. 말(馬)은 말(馬), 너네끼리 말해보라며 고개를 돌렸다.
하늘을 올려본다.
하늘을 수놓아 반짝이는 이름 모를 별들의 무리에서 북두칠성의 자리를 찾아본다. 어릴 적 여름 한때 누나와 함께 별자리를 외든 초저녁의 멍석 위, 모깃불 향, 아련한 옛일을 칠성별이 옮겨다 주어 잠시 고향 집을 그리고 있다.
가끔 북쪽 하늘이 훤하게 밝았다가 사라지곤 하는 것이 평양 근처 어디에서 고사포(高射砲)를 쏘는가 보다.
인근에 논이 없는 곳, 멀리에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릴 듯 말듯,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면서 내 고향길도 이어졌다 끊어졌다 한다.
눈을 아래로 내렸다.
순간 내 가슴이 육중한 둔기에 얻어맞은 것같이 내려앉더니 뛰기 시작했다. 오른편에서 두 번째 말이 드러누운 것이다. 소처럼 앞발과 뒷발을 몸체에 붙여서 누운 것이 아니고 숫제 네다리를 쭉쭉 뻗어서 누운 놈이 내가 보기에도 저렇게 돼서는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야단났다.
얼려 보아도 소용없고 호통을 쳐보아도 소용없고 긴 막대로 건드려 보아도 소용없다. 이대로 못 일어나면 요놈의 말, 죽음에 대한 책임이나 불구의 책임을 내가? 지는가보다 싶어서, 점점 겁나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왜 말 당번을 혼자 시키는지 원망도 하게 되었다. 비지땀을 흘리면서 끙끙거리고 있으려니 순찰하는 사관이 어디선가, 들이닥쳤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간을 재더니만 들어가라는 것이다.
이즈음 처음 겪는 순간의 기쁨이었다.
모든 게 환하게, 곧바로, 넓게, 트이는 것 같아서 상쾌했다.
모든 우려와 걱정은 일순에 걷히고 해방감에 날아갈 것 같았다.
그러더니 걱정은 잠시 후 다시 엄습했다. 일어났을까? 못 일어났을까? 이후 내가 말처럼 잠을 잘 수가 없어서 뒤척이다가 날이 새자마자 달려가 보았다.
어떻게 다루었는지 말은 거뜬히 일어나서 콩을 먹고 있었다. 그때 서야 모든 걱정이 눈 녹듯이 녹아서 씻은 듯 없어졌다. 그리고 말(씀) 없는 말도 사람을 볼 줄은 알아서 나 같은 촌 떼기가 준수한 제 발굽 흉이나 보고 있었으니, 말의 발과 다리가 얼마나 귀한 건지, 어디 한번 느껴 나 보라고, 나를 얕보고 시험했나 싶어서 쓴웃음이 입가에 번졌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