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겠다.
매일 한 시간 앞을 알 수 없는 훈련을 시키며 어두워서야 ‘병영(:남산 인민학교)’으로 돌아오던 일과와는 다르게, 오늘은 단축해서 해 거름에 ‘병영’으로 돌아왔다.
병영으로 쓰는 학교 건물의 작은 산 밑을 흐르는 강물에 한 개 중대를 한꺼번에 몰아넣는다. 공습경보로 언제 물속에서 되돌아 나와야 할지 모르는 판국이니 일제히 아우성을 지르며 물을 향해 내닫는다. 수면까지 내려가려면 산비탈을 미끄러지면서 내려가야 한다. 물은 삽시간(霎時間)에 흐려지고 발을 어디를 디딜지, 깊이는 어느 만치 되는지, 물밑엔 무엇이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지만 들어갈 수밖에 없다.
풀포기와 나뭇가지를 잡지 않으면 어림도 없는, 비탈진 곳으로 내몰린다.
여기는 소수의 인원이 숨어서 목욕하기에 알맞은 낭떠러지가 끝나는 곳, 한꺼번에 많은 인원이 이어 내려가기에는 적합지 않은 곳임에도 장소가 이곳밖에 없는지, 이곳으로 우리를 내리 몰았다.
돌이 아니라 칼이다. 물 위의 바위를 잘 가려서 내려갔다. 하나, 물밑에서 중심을 잃고 발을 헛디딘 곳에 칼날 바위가 기다리고 있었다. 왼발이 섬뜩하면서 이상한 느낌이 있어서 물 위로 올라와 보았다. 왼발바닥 안쪽 가운데에 가로지기로 손가락 한 마디만큼 찢어져서 온 발바닥이 피로 물든다.
동료들이 소리치고 떠들면서 응급치료를 받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허술한 의무실은 ‘인민학교’의 의무실, 그대로의 수준이었다. 지혈시키고 붕대로 감았으니 이 다친 발로 해서 죽을 리는 없겠다 싶어 안도했다.
허연 붕대를 감고 절뚝거리고 다니니 몸은 좀 불편해도 마음은 마냥 편하다. 내 게으름의 타성이 은연중에 나타났는지, 답답할 텐데 지극히 편안한 것은 뒷날 내가 생각해 보아도 이해되질 않았다.
이렇게 해서 내 몸의 상처 자국은 균형이 이루어졌다. 양 발바닥에 같은 크기의 상흔이 대칭(對稱)적으로 이루어졌고 이는 나 혼자만이 간직하는 것, 묘한 신비감을 느끼면서 평생을 지내게 하는 명물이 되었다.
우리의 몸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본인이 알게 모르게 여러 가지로 다스려진다는 것을 느끼게끔 한다. 내 정수리 중앙부에 정확하게 박힌 상처와 양발에 같은 크기와 같은 위치의 상처와 명치끝에 동전 크기만 하게 나 있는 뜸자국과 등 뒤에 나 있는 검은 점은 이상하리만치 정교하게 중심축, 내지는 대칭 부에 새겨나가고 있다. 이것은 필시 나 모르는 다스림과 보살핌이 있어서 이루어지는 것인가 하여 더욱 몸조심하게 된다.
몸 전체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거듭되어 손상을 입는다면 살아가는데 많은 제약을 받게 되고 그로 인해서 도태될 것이니 짝을 이루어 만들어 형평을 맞추면서 활동하도록 하는, 섭리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 참 오묘한 이치다. 경지(境地)를 넘보게 되어 오히려 엄숙해진다.
며칠은 잘도 놀아댔다. 산에 올라가 훈련할 때면 전망 좋은데 앉아서 산천을 조망하며 훈련을 지켜보았으며 집으로 여기는 ‘병영’에 돌아오면 여기서도 모든 행사에 열외로 되어, 몸이 아니라 눈으로 행동한다. 소화기계통은 멀쩡하니 밥을 굶길 수는 없는 일, 마냥 먹고 놀기만 했으니 이런 군대 생활도 있나 싶다.
달리 생각한다면 내 생명을 지키며 스스로 방어하면서 대적(?)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련만 그렇지 못했으니, 한편으로는 한심한 자태(姿態)라고, 할 수 있겠다.
모든 건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되어 가는 것 같아서 한편 불안하기도 했다.
이것이 솔직한 고백이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