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환경에 막 닥뜨려 정신없이 부대끼다 보니 앓든 생 손가락은 새 손톱이 자랐고 왼발의 상처도 잘 아물어서 붕대를 풀어 제치고 정상적인 훈련을 받게 됐다.
전황은 일체로 알려주질 않았다. 이곳에서 조망(眺望)되는 맞은편 북쪽의 먼 산이 하늘과 맞닿아 있다. 그 언덕 자락에 여러 채의 성냥갑 같은 집을 연일 폭격하는 비행기 소리, 뒷북 치듯 울어대는 경보의 사이렌 소리가 아직 전쟁이 계속되고 있음을 실감하게 할 뿐이다. 성냥갑 같은 집들은 정규군부대의 주둔지 같았다.
사과는 하루가 다르게 커갔다.
훈련장인 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의 과수원에는 나이 드신 내외가 세상일은 아랑곳없이 과수원 안의 풀베기를 하고 있다. 지극히 평화로운 노부부의 양손엔 ‘소련’의 ‘붉은 기’의 한 귀퉁이에 엇갈리게 그려진 그 낫자루가 들려 있고, 그 낫은 사과나무에 이롭지 못한 잡초를 쉼 없이 베어 버리는 것이다. 그들 노부부의 마음은 아무런 가책도 아무런 부담도 없다. 사과나무 외에는 존재할 이유가 없는 잡초이기에, 깡그리 베어 버리는 것이리라. 그러나 잘려 나가는 무명초도 나름의 생존 이유가 있고, 무엇인가 도움이 될 데가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없을 것이다.
길모퉁이를 돌아가며 잠시 이런 생각을 하다가 ‘사관’이 내 지르는 구령 소리에 정신을 차려서 잠시 잊었던 생각, 오늘이 사격훈련이 있는 날임을 떠올렸다.
그럭저럭 한 달이 가까워지는 팔월 하순에 접어들고 있었다. 훈련은 막바지에 이르고, 우리가 있어야 하는 이유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한 과정으로써 무기를 다루는 법과 무섭기만 하던 실탄을 사격하는 날이다.
자라면서 수없이 많은 병정놀이와, 일제(日帝)하에서의 총검술, 해방 후의 소련군의 여러 가지 총을 보아왔다. 그리고 이곳에 오기 전, 학교에서 이미 많은 시간의 군사훈련을 받았으면서도 아직 실탄은 쏘아보질 못했다.
전쟁 중에, 전쟁과 함께 자라면서도 피를 보질 못한 것은 다행스럽게도 내가 자란 곳이 지극히 평화로운 시골, 오지인 까닭이리라.
이론적인 것, 각종 병기의 제원(諸元)은 흑판에서나 산에서나 무수히 듣고 보고 만져보았어도 총에다 장탄(裝彈)해서 쏘아보지는 못했다.
그런 내가 살상의 무기를 들고 살상을 직접 하누나 생각하니 떨리고 무서웠다. 그러나 한발 한발, 앞으로만 내딛게 짜진 순서에서 비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길이 산자락을 훑어 내려간 흔적만이 뚜렷이 남아 있는 곳, 모래밭을 이루어 마른 개울이 된 여기는 사격장으로는 완전한 천연조건의 지형이다. 골라서 만들어진 임시 사격장치고는 너무나 좋은 지형이다. 쏘아보기 위한 총이 몇십 자루가 준비되어 있는데 그 총은 일본군이 쓰던 총이다.
난 그것도 이전에는 배우지 못했다. 그 자리에서 간단하게 총알 장전(裝塡)하는 요령을 가르치고, 이미 마련된 사선(射線)에 올려졌다.
실탄은 단 세 발뿐이다. 모두는 이로써 총소리만 귀에 익힐 뿐, 총알이 옳게 맞았는지 엉뚱한 데로 갔는지 살피는 일은 생략되고 사선(射線)에서 물러 나와야 했다.
사과밭의 주인이 잡초를 베듯, 우리도 언젠가 사과밭 주인의 요구로, 이렇게 총 쏘는 방법으로 베어 없애야 하는가?
그 사과는 누구네 사과일까?
우리는 무슨 연장으로 사과밭을 가꿀까?
의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름하여 ‘조국 해방 전쟁’을 위한다지만 혹시 우리가 사과밭에 자라는 이름 모를 풀은 아닐까?
얼굴색도 변해서는 안 될 상황에서 별별 생각을 다 한다.
오는 길에, 아침에 본 그 사과밭은 말끔하게 제초는 되었으되, 사과밭 주인은 따로 있는 것 같아서, 왠지 내 마음이 텅 비는 듯했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