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싶은 것을 참고 자라서 그런지 사과는 내 일상에 깊이깊이 박혀서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른다.
집에 배나무는 한 그루가 있어서 그런대로 제철에 맛볼 수 있었지만, 사과는 돈을 주고 사 먹어야 하는 까닭으로 우리 집 형편으론 맛을 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사과는 사무치게 먹고 싶은 것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나의 사과 섭취 욕구가 체내의 감각기관을 사과 일변도로 기능화됐던지, 지금도 사과는 무제한으로 섭취하면서도 조금도 물리거나 식상(食傷)치 않는다.
이렇듯 ‘황주’를 머리에 떠올리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지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역시 사과다.
‘황주’는 ‘안변’과 더불어서 사과의 고장이다. 내가 닿는 곳마다 사과와 인연 짖는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까지 억지로 확대하여 생각하기도 한다.
풋사과와 함께 종일을 지냈어도, 비록 맛은 보지 못한 ‘안변’사과였지만 그 많고 많은 사물(事物) 중에 사과만이 내 얘기의 중심축에서 맴도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이상하리만치 내 눈의 망막이 좁혀 있었나 보다.
‘황주’는 넓은 평원이다. 사과나무가 언덕마다 들어차 있고 대추나무 비슷한, 대추나무 사촌 같은 작은 나무가 지천으로 자생하는 곳이다.
검은 암석이 얇게 판자 모양의 두께로 되어서 온 산을 덮고 있기도 하다. 두께가 유리 조각처럼 얇은 것에서부터 구들장처럼 두꺼운 것까지 온 산야가 조각 석판(石板)으로 뒤덮여 있다. 그래서 온 산야가 검거나 푸른색이다. 황토(黃土)나 굳은 모래알 같은 땅은 볼 수 없는데도 이름은 황주(黃州), 그것 또한 이상한 일이다. 보이는 집은 거의 모두 종잇장같이 얇은 돌판으로 지붕을 이었다. 사과와 돌 지붕, 공습 비행기의 굉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 ‘황주’다.
‘황주’역에서 ‘남산 인민학교’까지 가는 동안에만 여러 차례의 경보가 울리고 그때마다 대피해야 했다.
병영(兵營)인 ‘인민학교’는 ‘황주’ 벌판의 한가운데를 그어 시가지를 비켜서 흐르면서 이곳 병영의 산 밑을 파서 감도는, 대동강지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있다. 풍광이 아름답고 또 넓은 ‘황주’ 평야를 조망할 수 있어서 시원했다.
아름답다.
도착 즉시 우리는 언덕을 따라 내려가서 며칠 만에 제대로 온몸을 씻을 수 있었다.
몇 차례나 훈련병을 배출했는지는 몰라도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는 듯, 했다. 병영이 된 학교는 우리를 맞아들이기 위해서 며칠 동안 비어있었나 보다. 우리를 가르칠 병사들이 날렵하게 움직이고, 편성과 함께 옷가지를 주면서 입는 법, 개키는 방법과 생활 규칙들을 상세히 가르쳐주었다.
내의는 광목으로 된 적삼과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속바지와 광목 팬티가 지급되었다. 아마도 우리 또래 신병훈련에는 적지않이 신경 쓰는 모양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네모난 광목천 쪼가리 두 장씩을 주는 것이다. 발목이 덮이는 운동화 비슷한 군화를 신을 때 발을 싸서 신는단다. 조금은 어려울 것 같다. 잘못하여 접쳐서 깔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날의 훈련은 그것으로 해서 망칠 것 같은, 불안감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친절한 가르침에 안도할 수 있었다.
우리가 입은 군복은 바지에 파란 줄이 쳐지고 윗도리에는 어깨에 녹색 견장(肩章)이 달린 ‘내무성’ 군대 복장이었다. 이른바, ‘치안을 목적’으로 한 군대라는 것이다.
놀라운 사실, 썰어서 말린 잎담배 한 봉지를 나뭇잎만 한 ‘마분지(馬糞紙)’ 종이 뭉치와 함께 주면서 피우라는 것이다. 선임 교관들은 기어이 피우도록 유도하고 피우는 방법, 담배를 종이에 싸 마는 방법부터 빨아들이는 법까지를 자세하게 가르친다.
그들 ‘하사관’들은 살판 난 것 같이 흥에 겨워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렇게 나의 병영생활이 시작되었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