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주

외통궤적 2008. 7. 1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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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0.010418 황주

먹고 싶은 것을 참고자라서 그런지 몰라도 사과는 내 일상에 깊이깊이 박혀서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른다.

 

집에 배나무는 한 그루가 있어서 그런 대로 제 철에 맛볼 수 있었지만 사과는 돈을 주고 사먹어야 하는 까닭으로 우리 집 형편으로는 맛을 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사과는 사무치게 먹고 싶은 것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나의 사과 섭취욕구가 체내의 감각기관을 사과일변도로 기능화 시켰는지, 지금도 사과는 무제한으로 섭취하면서도 조금도 물리거나 식상하지 않는다.

 

 

이렇듯 ‘황주’를 머리에 떠올리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지만 제일먼저 생각나는 것은 역시 사과다. ‘황주’는 ‘대구’와‘안변’과 더불어서 사과의 고장이다. 내가 닿는 곳마다 사과와 인연되는 것이 우연치 않다고 까지 억지로 확대하여 생각하기도 한다.

 

풋사과와 함께 종일을 지냈어도 비록 맛은 보지 못한 ‘안변’사과였지만 그 많고 많은 사물(事物)중에 사과만이 내 얘기의 중심축에서 맴도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이상 하리 만치 내 눈의 망막이 좁혀 있었나보다.

 

 ‘황주’는 넓은 평원이다. 사과나무가 언덕마다 들어차 있고 대추나무 비슷한, 대추나무 사촌 같은 작은 나무가 지천으로 자생하는 곳이다. 검은 암석이 얇게 판자모양의 두께로 되어서 온 산에 덮혀 있기도 하다. 두께가 유리조각처럼 얇은 것에서부터 구들장처럼 두꺼운 것까지 온 산야가 조각 석판(石板)으로 뒤덮여있다. 그래서 온 산야가 검거나 푸른 일색이다. 황토 흙이나 석비레흙은 볼 수가 없는데도 이름은 황주(黃州), 그것 또한 이상한 일이다.

 

보이는 집은 거의가 종이장 같이 얇은 돌판으로 지붕을 이었다. 사과와 돌 지붕,그리고 공습비행기의 굉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 ‘황주’다.

 

‘황주’역에서 ‘남산인민학교’ 까지 가는 동안에만 여러 차례의 경보가 울리고 그때마다 사솨밭으로 숨어들곤 했다. 병영인 ‘남산인민학교’는 ‘황주’벌의 한가운데를 그어 시가지를 비껴 산 밑을 파서 감돌아 흐르는 대동강지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있다. 풍광이 아름답고 또 넓은 ‘황주’ 평야를 조망할 수 있어서 시원했다. 아름답다.

 

우리는 도착즉시 언덕을 따라 내려가서 며칠 만에 제대로 온몸을 씻을 수 있었다. 몇 번의 훈련병을 배출했는지는 몰라도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는 듯 했다. 병영이 된 학교는 우리를 맞아들이기 위해서 며칠 동안 비어 있었나보다.

 

우리를 가르칠 병사들이 날렵하게 움직이고, 편성과 함께 옷가지를 주면서 입는 법, 개키는 방법과 생활규칙들을 상세히 가르쳐주었다.

 

내의는 광목으로 된 적삼과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속바지와 광목팬티가 지급되었다. 아마도 우리또래 신병훈련에는 적이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네모난 광목 천 쪼가리 두 장씩을 주는 것이다. 발목이 덮이는 운동화 비슷한 군화를 신을 때 발을 싸서 신는다는 것이다. 조금은 어려울 것 같고 잘못해서 접쳐서 깔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 날의 훈련은 그것으로 해서 망칠 것 같은, 불안감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친절한 가르침에 안도할 수 있었다. 한편, 우리가 입은 군복은 바지에 파란 줄이 쳐지고 어깨에 녹색 견장(肩章)이 달린 ‘내무성’군대 복장이었다. 이른바, ‘치안을 목적’으로 한 군대라는 것이다.

 

 

놀라운 사실, 썰어서 말린 잎담배 한 봉지를 나뭇잎만한 마분지종이장 뭉치와 함께 주면서 피우라는 것이다. 선임 교관들은 기어이 피우도록 유도하고 피우는 방법, 담배를 종이에 마는 방법부터 빨아들이는 법까지를 자세하게  가르친다.그들 하사관들은 살판이 난 것 같이 흥에 겨워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어느새 나는 내가 난 곳, 동쪽 끝에서 내가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서쪽 끝까지 멀리 와있었다. 이렇게 나의 병영생활도 시작되었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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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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