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하면 우선 깍쟁이가 떠오른다. 개성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든 내가 귀동냥으로 얻어들은 단 한 가지는 깍쟁이와 인삼 고장뿐이었다. 그런 내게 우리나라 역사에 눈을 뜨게 한 것은 해방의 은덕이었다. 그래서 송도의 역사도 이해하게 되었고 언젠가는 가보고 싶었던 곳이기도 했다.
뜻밖에도 그런 유서 깊은 고도를 스쳐서나마 지나게 되는 것만으로도 나로선 감회가 새롭다. 가슴 설레고 숨죽여서 맞아야 할 곳이다. 하지만 이 밤중에 송도는 여느 산하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그저 검은 산과 층층이 다락 맨 논과 밭이 초가와 돌담을 싸안고 있는 평범한 여느 곳과 다름없다. 시내로 접어든 듯하다. 하건만 말로만 듣던 성터도 선죽교(善竹橋)도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흥분만 더할 뿐, 대오(隊伍)는 점점 시가지를 벗어나는데도 어떻게 할 방도가 나로선 전혀 없다.
고도(古都), 송도나 개경으로서의 실감은 나질 않았다. 어림할 수도 없다. 밤중이라서 더욱 방향도 위치도 분간할 수 없다. 하늘을 쓰고 솟아있는 ‘송악산’만 검고 웅장하게, 오늘 이 싸움이 있게 한 수많은 전투의 소식을 전하듯 버텨 서 있다.
‘개성’ 시내에 들기 전에 여러 차례 있었든 휴식 시간, 그때마다 꾸었든 개성에 대한 꿈은 한낱 망상이든가?
움직이던 줄이 멈추었다.
신작로 길가의 자갈 무더기에 제각기 바랑을 진 채로 뒤로 벌렁 누어 버린다. 별이 쏟아져서 입으로 들어가든 말든, 밤이슬을 머금은 솔 향기가 폐부를 터뜨리든 말든, 난 아랑곳없다. 노변(路邊)은 그저 편안할 따름이다. 등을 붙인 자갈 더미는 옥황상제의 옥좌보다 더 포근하고 별을 수놓아 덮은 밤이슬은 옥황상제의 금침보다 더 보드랍다. 옥황상제의 금침이나 옥좌가 내가 누운 자갈 더미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사흘 밤낮을 뜬눈으로 걸어서 이만한 평안을 못 얻는다면 고생은 그야말로 헛고생인 것 아니겠는가? 아무리 포근한 명주 이부자리도 이보다는 편하지는 못하리라. 꿀물에 솜 잦아들듯 차분히 땅 위로 깔아 퍼진다. 온 세상이 내 몸속으로 들어오면서 작아지고 또 작아져서 녹두 알같이 작아지고, 이윽고 깨알같이 작아지더니 드디어 티끌처럼 작아지면서, 내 가슴속으로 스며서 다시 멀리, 멀리 사라져 가는 것이다. 언젠가 닥칠 여명(黎明)을 고대하며 아득히 몽롱해질 때, ‘행군!’의 단말마가 거대한 지구를 짊어지운다. 나는 지구를 지고 다시 따라간다.
하늘의 수많은 별도, 땅 위의 급조한 양철별을 따라 남으로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송도(松都)를 향해서 점점 다가가는 별들, 송도의 옛 성터를 보기 위한 발걸음은 가벼웠다. 아직 송도는 한참을 더 가야 하련만 이참의 걸음은 여느 때보다도 가볍고 상쾌했다.
그랬었는데, 아무런 감동도 받지 못한 채 그냥 적막강산을 걷고 있을 뿐이다. 잠깐 사이에 스쳐 지나간 송도의 거리는 불빛 하나 인적 하나 없는 암흑의 도시였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이곳 ‘송악산’의 백로는 이름만 남기고 이미 남이든 북이든 어느 한쪽으로 흩어져 제 갈 곳으로 찾아갔으리라. 이제 우리는 북에 살면서 남으로 내려간 학을 돌보아야 한다며 지상의 별을 쓸고 하늘의 별을 몰아서 내려가는 것이다.
‘송월’ ‘서흥’ ‘신막’ ‘장단’, 이 고장은 훈련을 마치고 남으로 내려오며 별과 바꾸어 밟으면서 뒤로 흘려보낸 내 발자취다. 그 고장 이름이 다시 별과 뒤섞이며 하늘과 땅이 나를 두고 빙빙 돌아가고 있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