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눈이 부셔서 세상 보기가 오히려 불편하다. 해가 지면서부터 생기가 돋아나고 눈알이 초롱초롱한 야행성으로 변한다. 모두 그렇게 자리 잡혀갔다.
그나마 머리카락이 길지 않으니 다행이다. 아직은 수염이 나질 않았으니 따로 불 품을 눈 여길 곳은 없다. 하지만 발은 다르다. 한번 신은 ‘운동화 같은 군화’를 좀처럼 벗을 짬을 주지 않았다. 발은 밀폐된 공간에서 마찰을 반복하며 압박되고 짓이겨졌다. 열흘이나 신속에 갇혀서 견딘 탓이라서 나보다 발이 오히려 안쓰럽다. 한 번쯤 살펴서 어루만져야 하는데도 그렇지 못하니 발에 미안하다. 이런 발이 내가 살아서 움직이는 중심체 기능을 완벽히 해 주는 것만 고맙고 대견하다. 하건만 발에 햇볕은커녕 신선한 바람이라도 쏘여주지도 못한다. 그런데도 좀처럼 허락되질 않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이즈음, 온 신경조직은 발걸음에 맞추어져 있어서, 팔다리는 한번 걸어놓은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그대로 움직일 뿐이다. 거기엔 높낮이를 가늠하고 방향을 잡는 별도의 감각이 필요치 않다. 오직 앞사람의 영상만 따라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걸어가면서도 잠은 잘 수 있는 것이다. 이따금 신경 반란을 일으켜 이탈한, 신경 일부가 모반(謀叛)하여 발걸음을 게걸음으로 치닫게 하여 신작로 가로 들어서게 하면서 배수로에 발을 헛디디게 한다.
다 같이, 졸면서 가고 있으니 누구 하나 거들어서 바로 잡아줄 생각을 할 수 없다. 자각하여서 채찍질하지 않으면 그는 기필코 신작로 가의 개굴(開掘)에 빠져서 넘어지고 말 것이다. 모두는 얼마쯤을 걷다가 일탈(逸脫)을 감지하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묘한 자각 기능을 발동하면서 잘도 걷고 잘도 잔다. 그러다가도 한순간, 별을 셀 만큼 정신이 들어서면 하늘과 땅이 맞닿은 가늠 선을 바라보며 고향 산야와 보이는 산야를 번개를 타고 오간다.
전개되는 야경은 우리네 고향이나 진배없다. 하지만 날이 새어 어느 녹지언덕이나 숲이 우거진 산속으로 들어가거나 과수원에 머물게 되는 때는 완연히 타향에 온 현실에 두렵고 외롭다. 먼 산을 바라보며 갈 수 없는 집을 그려본다. 사무치게 부모님이 그립다. 여러 날의 낮을 이렇게 산야에서만 보내고 밤은 별을 따라서 내려갔다.
일주일이 지나고 열흘이 돼가면서 내게 나타나는 새로운 풍물들은 이제까지는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크고 넓고 웅장한 것들만 눈앞에 전개되었다. 산은 나지막하고 들판은 한없이 넓다. 항상 동쪽으로만 흘러야 하는 냇가가 여기에서는 서쪽으로도 흘러간다. 이것 또한 이상한 느낌으로, 까지 와 닿았다. 해는 반드시 바닷가에서 떠야 하련만 이제는 바다가 아니라 산 위에서 해가 뜨고 바다로 해가 지는 것, 또한 처음 보는 자연의 역 현상이다.
모두가 새롭고 진기하기만 하다. 느슨하고 완만한 산야가 새로운 호기심을 부른다. 가파르고 험준한 산과 좁고 길게, 이어지는 들판이 바다를 끼는 내 고향과는 전혀 다른 곳이 있으니, 이것은 우리 생활의 일상인 동서남북의 사주(四周) 판단이다. 바다만 보면 밤이나 낮이나 동서남북을 가릴 수 있고 내 있는 곳을 가늠하련만 여기서는 도무지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를 알 수가 없다.
남쪽으로 내려감에 따라서 길도 평탄하고 집도 크고 모양새도 달랐다. ‘장단’을 거치고 ‘문산’을 지나고 ‘금촌’에 이르면서 발걸음은 저절로 빨라지고 있다. 걸으면서 드리웠든 만근의 무게 눈꺼풀도 어마어마한 석축과 돌담과 넓은 길에 압도돼서 이들을 받아들이려는지, 눈썹을 치키고 떠받쳐서 한눈에 모든 걸 끌어당기며 망막에 새겨 넣는다.
서울의 ‘이화 여자대학교’ 지붕 위에 하늘의 별들이 멎었다. 땅 위의 ‘양철별’들은 교사로 구름같이 몰려 들어갔다. 하지만 밤하늘의 빛나는 별들은 하나둘씩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지상의 ‘양철별’은 어둠 속에서도 어디에서도 여전히 빛나질 않았다.
그나마 낮에는 얼씬도 하질 않았다. 낮에는 하늘과 땅 위의 모든 별이 멈추었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