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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통궤적 2008. 7. 14.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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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세끼를 때우는 일이 우리의 주된 임무인듯 오로지 먹는 것 만으로 온 날을 보낸다.하루의 '먹는전투'(?)가 끝나고 또 떼 지어서 머무를 수 있는 곳, 어느 학교가 또 우리의 하루살이 병영으로 되었다.

 

 

보이는 산야. 넓게 젓는 바람결이 파도처럼 펼쳐나간다. 어느덧 팔월도 하순으로 접어들었다. 조석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더니 오늘은 산야의 녹색물결이 그 파장을 한결 넓히고 있다.

 

 

뜨거운 한나절을 꺾어 허리를 펴려고 양팔을 한껏 뒤로 젖히며 어깨를 하늘로 뻗치는 농부의 모습이 아버지를 닮았다. 당기는 오금을 조심스레 매만지며 논두렁을 타고 버드나무그늘로 들어가고 있다. 따갑던 햇볕은 그늘 속에서만큼은 여름을 시샘하는 시원한 가을바람 앞에 풀죽어서 스르르 물러갔으리라.

 

버드나무 이파리는 바람을 타며 반짝이고 있다. 봇도랑 가장자리 물풀이 목까지 차오른 봇물에 목 고개를 한 것 뻗어서 넘실넘실 흘러가는 봇물에 발 돋우어 버들치를 발밑에 붙들어 머물게 하는, 팔월의 오후는 바람이 한결 가볍다.

 

 

나는 또 먼 산을 바라본다. 색색의 나무 물결을 이루면서 소나무와 어울렸든 산허리를 두른 떡갈나무 숲이 배색을 바꾸어 칠하면서 구월이 다가옴을 알리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도 천지의 조화는 에누리 없이 산야에 채색되고 있다. 이 조화가 조석으로 바람을 불러 소식을 전하여 물밑의 버들치까지 알아차리건만 우리들 인간만은 이를 외면하며 모른척 고집하고 있다. 뻐꾸기 소리가 들리질 않는 이즈음, 개구리소리가 멀어지는 계절의 변화조차 느낄 수 없도록, 우리들 모두는 혼을 앗겨 버렸다.

 

 

어둠이 발밑에 다가오면서 갑자기 옷소매에 바람이 스며든다. 손쓸 생각을 못하는 모시옷 입은 초립(草笠)동이들아 너희의 부모는 어디에 있기에 바람이 살갗을 뚫어도, 추석날이 다가와도, 갈아입힐 옷은커녕 잠자리조차 못찾아 헤메고 있느냐? 여기에 초립동의 웅크리고 누워있는 자태를 지켜보는 이는 없다.

 

다만 달빛이 창을 뚫고 들어와 교실 가득히 채워서 이 참담한 처지의 서로를 알아보게 할 따름이다. 저마다 바랑을 벽에 붙여기대어 놓고 그 바랑에서나마 온기를 보존하려 도리질하고 있다. 아니다. 바랑에 머리를 의지하고 모로 누워서 각자의 고향인 모태로 향하고 있다.

 

가장 원초적 자세, 지극히 평안하련만 더 이상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도록 자기의 몸을 말아서 체열을 덜 빼앗기려고 몸부림친다. 이 모든 과정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달빛을 타고 투영되었다. 이 모든 현장은 훗날 달이 각자의 어머니에게 다시 내리비치리라.

 

 

하나 둘씩 일어나 두리번거리다가 밖으로 나간다. 더는 잠을이룰 수 없었던지, 서성이다 밖으로 나간다. 들어오는 초립동이 병사들의 손에는 가마니가 한 장식 들려있다.

 

옳거니 저것이다. 따라 나갔다. 줄줄이 이어지는 발걸음마다 가볍다. 그래서 가마니는 더욱 따사롭다. 손이 녹고 팔다리가 녹고 볼이 녹으면서 마침내 몸뚱이가 녹았다. 가마니 안에 동그랗게 말아 넣은 몸 언저리에 훈기가 돌면서 가마니 속은 안방같이 아늑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발을 뻗어야하는 또 다른 고통이 기다렸다. 까칠한 벼 짚의 억새 같은 이음새도 솜털 같이 보드랍고 따사로워서 한 장을 더 얻을 양 나갔지만 이미 동나버린 뒤였다. 다시 웅크리고 가마니 속으로 들어가서 잠을 청했지만 달빛은 점점 차가워서 얼음보다 시렸다.

 

한기는 몸을 더욱 조였고 거적을 뚫고 비친 달빛이 한낮의 햇빛보다 눈부시게 밝아왔다.  눈은 뜬 채로, 몸은 더욱 가마니 속을 파고들었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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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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