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둔

외통궤적 2008. 7. 14.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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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의 넓은 한밭으로 만들려고 허물어 제친 인간의 작품인가?! 낙원의 도시를 새로 조성하기 위한 조물주의 조화인가?! 시가는 반듯한 건물하나 없는 유령의 놀이터가 된 저주의 도시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달을 이고 별을 몰아 깡그리 부서진 대전시가지를 꿰뚫어 쓸어가고 있다.

 

여전히 무슨 까닭으로 한 밤중에 걸어야하는지 모르면서 줄지어서 걸어가고 있다. 이미 남쪽 깊숙이 내려와 있는 나를 의식하는 것 외엔 아는바가 없다.

 

 

대전. 영 호남행 기차선로의 분기점, 곡창 호남의 복판을 가로지르며 깊숙이 파서 흘러내리는 물받이 도수로처럼, 미곡을 빨아들이는 흡입(吸入)관처럼 호남선을 잇대놓고 문물이 교류되는 '한밭'이다. 대륙에로의 진출을 꾀하여 인문의 넘나들이 가교의 역할로 그 많은 산하의 허리를 잘라서 놓은 경부선이 이어진 한밭이다. 사람이 흘러드는 경부선, 곡물이 흘러 나가는 호남선의 갈고리가 여기 한밭에 걸려있다.

 

 

목포항을 통해 일본으로 이어진 동아줄, 당기는 동아줄에 어쩔 수없이 빨려 나가는 호남의 기름진 들판이 열리려는 길목에 서서 곡물수송의 이득을 노린 일본의 철도부설 목적을 일깨운 지난날의 배움이 잠깐 떠올랐다.

 

그 분기점에서 치열한 낙동강 전투가 벌어지는 왜관으로 갈 수도 있고 이미 퇴각의 흔적이 완연한 목포로 갈 수도 있는, 어쩌면 생사의 운명을 가르는 내 삶의 분기점이 되기도 했다.

 

잠시 세월의 망각에서 나를 찾고, 경험하지 못한 지나간 날을 쭈그려서 내 앞에 놓아 그 위에 서서 생각해본다. 모든 이가 이미 있는 그대로를 자기중심에서 생각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의 교만을 생각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타버린 변전소는 헝클어져 죽어버린 우리 인간의 뇌 세포를 연상케 하고 산기슭을 돌아 흘러가는 냇물은 죽은 자의 육신을 빠져 흘러가는 영혼의 강물같이, 오히려 신선하여 구슬같이 맑다.

 

‘서 대전’ 변전소를 지나 산언덕을 끼고 깔려있는 마을 입구에 다다랐다. 텃밭에 심은 들깻잎이 밤을 새워가며 그만의 냄새를 달빛에 실어서 진하게 풍기고 있다. 드문드문 서있는 전봇대가 좁은 길목을 더욱 비좁게 하고 있다. 몇 채 되지 않는 기와집과 양철집이 이 마을의 세를 가늠하게 한다. 좁은 골목 작은 초가집이 다닥다닥 이어진 마을이다.

 

마을은 길게 산으로 뻗어 올라가는 우마차 길을 따라서 왼쪽으로만 이어지고 오른쪽은 텃밭으로 이어져있다. 집들의 앉은자리로 보아서 동네는 서향 언덕 밑에 남향으로 길게 이어 앉힌 어느 일족의 뿌리박힌 동네 같다. 초입의 몇몇 집에 들러서 사랑채를 점령(?)하고 더러는 동네의 이장 집의 사랑에 머무는 기식(寄食)꾼이 됐다.

 

당초의 많은 무리는 이 밤을 기해서 삼지 사방으로 어디론지 모르게 흩어져서 사라졌는데, 아마도 다른동네로 배속(?)받았을 것이다.

 

 

‘인민을 위한 군대’가 인민을 괴롭히는 군대로, 생존을 위해 명분을 외면해야하는 군대로 되었다. 생명을 담보로 얻은 군복만이 입에 풀칠할 수 있는 거지의 체면을 유지할 수가 있게 했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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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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