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들이 보자기로 덮은 함지박을 이고 연신 밥과 국을 나르며 행주치마를 매만진다. 저들끼리의 소리 없는 말이다. 또 동네의 ‘구장 반장’은 행여나 불상사라도 나면 어쩌나 싶은지 종일 윗말 아랫마을로 하릴없이 오르내리며 그들만이 아는 눈짓으로 정보를 교환하며 스쳐 지나 다닌다.
우리가 이 동네에서 머무는 비용 일체를 문서로 증명해 주며 어르더래도, 언제 아무 데에 가서 신청하면 틀림없이 밥값과 고깃값을 받을 수 있다고 보장해도, 종이쪽지만을 믿고 밥을 주고 잠을 재워주며 시중을 들어줄 마을 사람들이 아니다.
이 동네 사람들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어떤 화가 자기들에게 미칠지 모를 판국이니 이 판이 걷어지기 전에는 손해가 나든, 덕이 있든 함께 따라 움직이는 시늉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익히 아는 터이다.
그래서 묵묵히 대세의 향방을 지켜보며 훗날에 어떤 경우에 처하더라도 순탄하고 무리 없기를 바라며 이렇게 고분고분하리라.
그렇다면 흰옷 입은 사람끼리 통하고 누렇게 바랜 ‘군복’을 입은 우리끼리 통하는, 어쩌면 숙적의 오월(吳越)이 배 아닌 ‘같은 동네 같은 집’에 머물면서 다음 기회를 기약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엊저녁에 다섯, 오늘 오전에 셋, 해서 모두 여덟 명의 ‘중이 적삼’ 무리가 배속되어 나와 함께 산머리 작은 집 사랑채에서 먹고 자는 ‘식객 노릇’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먼 산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내가 그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나이와 용모를 섞어서 눈 여기고 이름을 덧붙여서 그들의 신상을 가늠해 보려고 묻는 몇 마디뿐이다.
그들의 옷은 맞춘 듯이 바지저고리요 고무신이다. 어느 고을의 부잣집 머슴인지 몰라도, 꽤 정갈하게 지어 입힌 열두 새 삼베 중이 적삼이 돋보이고 그 위에 황포(黃布) 조끼까지 입고 있는, ‘나주’에서 왔다는 아저씨는 모름지기 주인의 각별한 부탁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기도 하다.
집집이 뽑아 가는 ‘의용군’, 지역의 ‘열성 당원’의 성화에 못 이겨 면피용으로 아들 대신 보낼 요량으로 사랑방에 마주 앉아서 호롱불 심지 돋아가며 저녁 내내 타일렀을 것이다.
‘갔다, 오랑께? 그때 잊지 않을 것일세. 왜 있지 않은가 이? 쬐 꾐 멀긴 해도 잉? 저어기 수로 끄트막시 팍 꺼져버린 논 한 배미 말일 씨, 죄다 줄 것잉께 가서, 니 재주를 부려버려! 아, 그러면 자네가 갈든 땅인디, 어째피 남한테 갈텐 께로 그전에 자네가 갖이믄 쓰지 않겠는가뵈?, 쓸만한 논이랑깨.’
난 상상의 살촉에 깃 날개를 달아 순식간에 ‘전라도 나주’ 고을로 가서 이 머슴의 주인 집안을 둘러보고 왔다. 건장하고 훤칠한 키가 고을의 머슴 중에 상머슴임을 알 수 있다. 이 머슴은 다른 머슴들보다 유독 말이 없었다. 그는 조카 같기도 하고 아들 같기도 한 나이의 나를 상전으로 모셔야 하는 자기모순에 빠져서 고뇌하고 있을 것이다.
이 머슴 아저씨와는 정반대 입장자도 있다. 꾀죄죄 때 묻고 축축 늘어져서 실룩거리는 올 새 중이 적삼을 입은 한패의 다른 이들은 신이 난 듯이 알아듣지 못할 사투리로 떠들며 진종일을 신나게 보내고 있다. 그들은 생각하리라. 지금쯤 주인집에 있거나 품팔이로 하루살이 하는 우리네가 이 바쁜 철에 이렇게 한가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들일도 아랑곳없고 소먹이도 외면하고 비가 온들 새끼꼴 일이 어디 있으며 주인집 아들 거드름 거리고 대문 심부름시키는 꼴 보지 않아서 살이 절로 찔 것 같다며 희희낙락하고 있으리라.
이들은 모두가 진실로 변화를 갈구하는, 사막에서 길 잃고 방황하며 목마르든 차에 빗줄기를 만난 기쁨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일단의 저항 의식의 배아가 묻어 있는 한계(限界)인이다. 해서 그들은 오히려 떨어진 발싸개와 광목 쪼가리 속옷에다가 누렇게 바래서 흰빛마저 비치는 나의 군복을 보고 반겼을 것이고, 한 줌도 안 되는 작은 체구의 ‘소년병’에게 오히려 연민의 정을 느끼고 도우려 하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동병상련의 자기 위안에 쾌재 하는지도 모른다.
긴 여름날 점심 후의 일과는 당연히 각자의 취향에 따라서 집안이나 집 언저리 마루에서 자거나 골목 어귀 그늘진 곳에다 금 긋고 풀잎과 조약돌로 고누 놀이 하거나 두런두런 이야기 이어가는, 실로 자유로운 시간을 갖는다. 그 밖의 낮 한때 시간에는 군가를 배우는 것이 일과의 전부이다. 나도 한숨 자고 일어났다. 늘 휘하(?)의 ‘중이 적삼 대원’을 살피고 파악하는 무의식이 발동하여 두리번거리는 데 아니나 다를까! 예의 말끔한 중이 적삼 위에 황포 조끼를 입은 이가 보이질 않는다. 변고가 있음을 직감했다.
‘나주 아저씨’가 아예 사라졌는지 무슨 연유로 잠깐 어디에 들렀는지 알아야 하겠기에, 상황을 파악해야 대처가 되겠기에, 다 같이 조용한 수색을 한답시고 샅샅이 뒤져 올라갔다. 소나무 숲속과 잔솔포기마다 헤집고 뒤졌으나 찾아낼 수가 없다. 수색 범위는 점점 넓어져 갔다. 우리가 묵고 있는 마을에서 한참을 벗어나서 철길이 내려다보이는 등성이까지 올라가 보았으나 허사였다.
대원들을 되돌리며 한참 침묵했다. 풀죽은 나를 보고 무슨 위안이라도 하고 싶어서 멈칫거리는 그들에게 난 아무 말도 하질 않았다. 그들은 자원해서 그들의 한을 대신 풀어줄 대리만족 대상으로 우리를 찾은 것을 내가 알고 있다. 그렇게 믿고 있기에 행동을 통제하질 않았다. 내 과실을 엄히 문책당하리라는 생각을 하니 오금이 저리고 가슴이 답답했다.
이미 해는 서산에 뉘엿거리고 있다. 한시라도 빨리 알리는 것이 상책이란 것을 깨닫는 순간 발길은 동네 어귀에 있는 ‘중대 본부’로 향했다. 달은 몸은 날듯이 다리를 저었다. 달음질로 마을 어귀에 닿았다.
직속상관에게 보고하는 내 자세는 진지했다. 어떠한 처벌도 받겠다는 자세이니 말이다. 하긴 다른 묘책이 없고 외곬의 길이다. 그런데 그냥 알았다는 것으로 나를 되돌려보낸다.
이상도 하여라! 아무리 ‘오합지졸’ 같은 군대지만 사람이 없어졌대도 그만인 군대는 작은 내 머리의 상식으로라도 이해되질 않는, 무언가 조짐이 이상한 예감마저 들었다.
이후, 나의 임무는 다했으니, 이번에는 처벌이든 면책이든 무슨 기별이 있으리라는 초조함만이 온통 나를 압박해서 숨 막힌다.
저녁은 먹는 듯 마는 듯, 밥맛이 없었다. 이것이 전선에서 겪는 최초의 경험이다. 독자적 판단과 독자적 행동으로 시간과 공간과 자원을 재단하는 일대 파격이었다.
달은 가득하여 천하를 구석구석 밝히는 초저녁에 전령이 왔다. 나를 부르는 연락병의 얼굴이 암울했고, 서둘렀다.
나는 긴장을 풀 수가 없었고 무서웠다. 그와 함께 제재의 칼날이 목젖을 겨누는 짜릿함이 있었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