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외통궤적 2008. 7. 1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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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6.010627 사투리 아저씨

낌새를 알아차린 참새떼의 울부짖음, 마을의 아침을 열고 있다. 하나둘씩 날아다니며 그 작은 눈으로 익어가는 풀씨를 정확히 가려서 쪼아 먹는 천부의 재주를 가진 저들이었지만 철을 맞은 오늘엔 집단으로 행사하려고 떼를 지어 오늘새벽을 열고 있다. 그러나 익어가는 들녘의 논배미는 지켜보는 부락민들의 눈길에 쉬이 점령되지는 않을 것이다.


알 수 없다.
논배미의 주인은 지금 한 눈을 팔고 있지 않는가?  군중집회로 궐기하여 익어 가는 가을 들판을 초토화하려고 제가끔 지껄이며 의견을 모아내는 참새의 집단이련만 그들의 움직임을 우리인간은 알지는 못하리라. 참새무리의 지휘자는 아무리 보아도 나타나지를 않건만 일시에 우박 쏟아지듯 날아서 건너편 개울가 키 큰 버드나무 행렬에 포진하여 다음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어떤 명령을 내렸는지 알 수 없다. 사람들은 오늘 참새 떼의 집단행동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저들의 이기심을 저울에 올려놓고 셈하고 있을 뿐이다.

 

나를 에워싼 인간무리도 매 한가지다. 마을은 전쟁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다. 예부터 외지의 성 바지를 들이지 않고 그들 일가끼리만 촌수를 늘려나갈 것처럼 울을 낮추고 지붕을 잇대어 다닥다닥 붙여놓았다. 발길은 울안에 들일 수 없지만 서로의 얼굴을 언제나 맞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되어 지극히 평화롭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였다. 잔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뒷동산으로 이어지는 길은 이 마을의 중심 통로로써 언제든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도록 휑하게 틔어있다. 들일을 하면서도 드나드는 객과 마을 사람을 분별해서 알아볼 수 있고 제집골목을 드나드는 강아지 한 마리까지라도 눈여겨보며 제집 일을 언제든지 알아차릴 수 있도록 되어있다.

 

 

우리가 머무는 곳은 이렇게 전형적인 자연부락의 형태를 갖춘 마을이다. 길바닥 흙 색깔조차 황토가 아니고 굳어진 모래 같아서 내 고향마을길 같고, 키 작은 소나무가 모래 섞인 바위에서 숨 가쁘게 해를 이겨가며 뿌리내려서 마디와 마디사이가 짧고 옹이진 것조차도 내 고향 뒷동산 것과 같다. 척박한 토양에 자라나는 나무이니 키는 작고 하나같이 꼬불꼬불한 것이 우리고향 매봉산 소나무 같아서, 애처롭지만 그래서 더욱 정겹다. 내 고향, 그곳에서 엉덩이를 끌면서 미끄럼 탔고 내리굴렀던 생각이 새롭다.

 

 

밥 때가 되었다. 머슴의 밥그릇처럼 사발에 고봉으로 담은 이밥을 끼마다 얻어먹는 우리가 전쟁을 치르는 군인인가 싶어 내 아래위를 훑어보게 한다. 그렇게 한가롭고 느긋했다. 간밤엔 신발은 신은 채로 잤지만 모처럼 잠은 제대로 잤다.

 

불을 집혔을 것이다. 훈훈한 방안에서 하룻밤을 보낸 내 몸은 고무공 같이 연해졌고 튀겨 올라갈 듯 부드럽고 상쾌했다. 어제의 하루는 이제까지 겪은 불확실성의 모든 어두운 그림자를 떨쳐버리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비록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오늘의 삶, 언제 뒤에서 들려올지 모르는 군령을 기다리며 벽을 바라보고 막힌 하루를 지내고 있건만 마을의 평화로움에 녹아서, 그냥 주저앉는 인간본연의 자태로써 평온하고 아늑했다.

 

 

파란 하늘을 쳐다보며 진종일을 무료하다 싶게 보낼 수가 있었다. 이렇게 하루가 더 지난 오후에 우리를 모아들인 소대장은 핫바지를 입은 일단의 아저씨들을 마을 어귀로 인솔하고 들어와서는 우리에게 배속시키고 한집씩을 따로 배정해주었다.


우리는 그들과 완연히 구분되는 색깔의 옷, 그래도 군복을 걸친 부랑아였지만 그들과 합류함으로써 이제부터는 완연한 핫바지 비럭질 부대로 한층 격하되었다.

 

이름 하여 분대장. 나는 분대규모로 행동하는 분대의 책임자로 둔갑했으나 오히려 그들보다 정세가 어둡고 지리에 까막눈인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은 모두 어느 쪽인지는 모르지만 호남사투리를 진하게 쓰고 있어서 처음 맞는 내가 통역이 있어야 할 정도로 불편했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잘 이해하고 우리에게 통역도 해주었다.

 

우리가 주둔해 있는 마을, 갖추어야 할 기본, 군 장비하나 없는 우리를 보는 그들의 눈빛은 적잖이 실망하고 당황하는 눈빛이다. 허긴 내가 봐도 엉터리 군대이니 그들의 눈에는 오죽했으랴? 그래도 그들의 결의가 대단했기에, 새로운 장소와 환경이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실낱같은 한 오리 희망을 버리지 않는 듯 했다.

 

머슴살이 지겨워서 움치고 뛸 작정으로 손 번쩍 들고 자원 ‘의용군’에 쾌거 했건만 머슴살이 할 때 쓰던 외양간 곁에 딸린 방만도 못한 방에서 자려니 한숨인들 오죽이나 컸겠는가?

 

허나 숨소리하나 기침소리하나 눈 한번 굴리는 일 없이 그들의 거동은 나름의 결의에 몸을 묶어 굳어있었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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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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