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오솔길엔 개미의 행렬이 가느다란 줄을 긋고 아른거리고 있다. 이따금 첨벙거리는 개구리의 소리가 들릴 뿐, 인적은 우리네뿐이다. 우리는 이제 말이 없어도 행동은 하나같다. 산골의 신작로 길을 벗어 난지 오랜 시간이 벌써 지났다. 이젠 햇빛이 얼굴을 맞바로 쬐어대는 저녁때가 되었지만, 쉴 수가 없다. 길은 이미 들어선 길이다. 끝까지 가보아야 한다.
개고기를 외면한 우리 둘이 점심을 먹고 오다가 의논하는 소리를 옆에서 듣던 다른 둘이 내 말이 옳음을 알아차리고 합류했기 때문에 넷이 되어 버렸다. 우리가 농군으로서 행세하며 이동하기란 외견상 틀린 것이지만 피차에 한 가지 목적, 북으로 가는 길을 모색하는 데는 아무런 이견이 없으니, 그들의 판단에 맡겨서 떨어져 간다든지 아니면 합류해서 더 큰 무리가 되든지 할 것이다. 또 내가 싫으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우물거리거나 버티고 있으면 또한 그들이 나름의 판단으로 행동할 것이니까! 그다지 신경 쓸 일 못 된다. 이들이 나를 따르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내가 주장하고 우기는 고집에 그럴듯한 신뢰가 갔기 때이다.
‘우리는 필사적으로 달려와서 이제 청주를 외곽으로 벗어난 것을 인근의 주민을 통해서 알았다. 이곳에서 방향을 틀어서 동쪽으로 가서 소백산맥을 타고 태백산맥에 들어서 북으로 가는 길이 있을 것이고, 다른 길은 이대로 서북(西北)쪽을 향해서는, 줄이어 다가오는 많은 마을과 대도시를 관통하면서 북으로 가는 길이 있을 것이다. 나는 당연히 내 집이 태백산 줄기에 붙어있으니, 산맥을 찾아가는 것이 순리이겠고, 그렇지 않은 너희들도 일단은 산맥을 타야 이동하기가 수월할 테니 그렇게 하려면 나와 같이 갈 것이고 아니면 오든 길을 따라서 그대로 서북쪽의 평야 지대를 택하는 수, 밖에 없다. 이제 나는 여기서 길을 벗어나서 청주에서 천안으로 이르는 주도로를 횡단하여 강원도를 향해서, 동북(東北) 방향으로 전환하여 벗어나서 간다. 그러면 조심해 가라.’ 한마디 남기고 활개를 저으며 뒤돌아보지도 않고 홀로 걸었다. 그런데 내 뒤를 ‘중의적삼’들이 주르르 따라붙었다.
중의 바짓가랑이 실룩거리며 바람에 펄럭일 때마다 지난 몇 달 동안 땀이 배어 굳어진 광목 내의와 스치며 살짝살짝 소리를 내어 발걸음에 장단 맞춘다. 일행 중에는 밀짚모자를 얻어 쓴 바지저고리도 있어서 그나마 멀리서 우리를 바라보는 그림이 그럴듯할 것 같아 적이 위안이 되지만, 산비탈 오솔길을 가는 동안 또 둘이 따라붙어서 이렇게 여섯이 간다는 건 어쩐지 꺼림직하다. 우리는 군복을 그대로 입고 갈 것이냐, 사복으로 변장할 것이냐를 판단하는데 최우선이 생명 보존이었다. 군인이 생명을 보존함을 우선 한다는 것이 내놓을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지만 비무장일 바엔 비무장대로 최선의 방안을 강구 해야 한다는 것을 합리화해서 처한 행동이었다.
한편 백색의 옷은 이미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는, 군인이기를 포기한 행동이지만 이 생존의 엄숙한 명제 앞에서는 모든 게 의미 없는, 허울뿐이다. 그리하여 백색의 옷으로 갈아입음으로써 생존보장을 받으려는 본능이 발동한 최소한의 자위 수단이었다. 해서 나는 부끄러울 수가 없다. 만약 무장한 전투부대가 내 눈에 띄었다면 나는 아마 그 부대에 합류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우리의 피가 이미 짙게 물들여져 있어서 일 것이다.
이날이 어둡기 전에 대로를 뚫고 건너가야만 산악지대로 들어설 수 있다.
우리가 넘어야 하는 산 넘어서 바람을 타고 작게 들리다가 크게 울리는 정찰기 소리가 들린다. 이 소리는 우리가 오르는 야산 아래의 작은 골짝을 내려다보며 뒤편에 우뚝 선 높은 산에 메아리로 골짝을 높게 낮게 울리고 있다.
우리는 등과 뒤통수에 햇볕을 받으며 동쪽으로 움직이고 있다./외통-